대부호부터 렉시오까지: 클라이밍 카드게임의 세계와 전략
이 글은 Claude Opus 4.8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손패를 먼저 비우는 자가 이긴다#
카드게임에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포커처럼 좋은 조합을 만들어 겨루는 게임, 브리지나 스페이드처럼 정해진 수의 트릭을 따내는 게임, 그리고 손에 든 카드를 가장 먼저 다 털어내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 있습니다. 마지막 유형을 보드게임 용어로 셰딩 게임(shedding game) 이라 부르고, 그중에서도 “이전 사람이 낸 것보다 더 센 조합을 내야만 한다"는 규칙을 가진 하위 갈래를 클라이밍 게임(climbing game) 이라고 부릅니다. 국내에서는 가장 널리 알려진 게임의 이름을 따 대부호류(大富豪類) 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대부호는 클라이밍 게임의 여러 갈래 중 하나입니다.
이 글에서는 클라이밍 게임이 공통으로 가진 특징과 계보를 살펴보고, 원조 격인 일본의 대부호(大富豪), 리처드 가필드가 디자인한 달무티(The Great Dalmuti), 그리고 국산 타일 게임 렉시오(Lexio) 를 소개한 뒤, 이 계열 전체를 관통하는 전략을 정리하겠습니다.
클라이밍 게임이란 무엇인가#
핵심 메커니즘#
클라이밍 게임은 이름은 제각각이어도 뼈대는 거의 같습니다.
- 선(先)이 조합을 낸다. 한 명이 싱글(1장), 페어(같은 숫자 2장), 트리플(3장) 같은 조합을 바닥에 냅니다.
- 더 세게 받거나, 패스한다. 다음 사람은 같은 장수의 더 높은 조합만 낼 수 있습니다. 못 내거나 안 내면 “패스"입니다. 페어에는 페어로, 트리플에는 트리플로 받아야 하며, 장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 모두 패스하면 판이 리셋된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낸 사람이 승자가 되어, 다음 판을 새로 시작하는 리드권(control) 을 가져갑니다.
- 손패를 먼저 비운 순서대로 등수가 정해진다. 가장 먼저 턴 사람이 1등,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꼴찌입니다.
보드게임긱(BoardGameGeek)에서는 이 “더 센 조합으로 받아 올라간다"는 메커니즘을 Ladder Climbing(사다리 오르기) 이라고 분류합니다. 사다리를 한 칸씩 밟고 올라가듯 조합의 세기가 점점 높아지는 모습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신분과 카드 교환은 ‘대부호 계열’의 장치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 둘 것이 있습니다. 신분 시스템은 클라이밍 게임 전체의 공통 요소가 아닙니다. 빅투(Big Two), 티츄(Tichu), 해기스(Haggis)처럼 계급도 조공도 없이 순수하게 손패 털기만 겨루는 클라이밍 게임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신분과 카드 교환은 대부호 / President 계열 을 다른 클라이밍 게임과 갈라놓는 고유한 장치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Climbing Game
├─ President / Daifugo 계열 ── 신분 + 카드 교환 있음
├─ Big Two
├─ Tichu
└─ Haggis
그 대부호 계열에서는 한 판이 끝나면 등수에 따라 신분이 부여됩니다. 1등은 부자(대부호), 꼴찌는 빈민이 되는 식입니다. 그리고 다음 판을 시작하기 전에 가난한 쪽이 부유한 쪽에게 가장 좋은 카드를 상납(조공) 하고, 부자는 대신 필요 없는 카드를 내려줍니다.
이 규칙 때문에 대부호 계열은 단순한 운 게임이 아니라 “이긴 사람은 계속 유리해지고, 진 사람은 계속 불리해지는” 계급 재생산의 구조를 갖게 됩니다. 여기에 판을 흔드는 혁명(revolution) 장치가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게임 안에 작은 사회 풍자가 담기게 됩니다.
다만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호의 혁명은 카드의 강약 서열을 뒤집을 뿐, 신분 자체를 즉시 바꾸지는 않습니다. 신분은 어디까지나 그 판의 등수로 정해지고, 혁명은 “그 판을 이길 확률"을 바꿔 다음 판의 신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뿐입니다. 신분표를 그 자리에서 통째로 갈아엎는 규칙은 뒤에서 볼 달무티의 대혁명(Greater Revolution) 처럼 따로 명시된 경우에 한합니다.
계보: 중국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
이 계열의 뿌리는 중국의 쟁상유(争上游, Zheng Shangyou) 계열 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먼저 위로 올라간다"는 뜻 그대로, 손패를 먼저 비우는 것을 겨루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여러 지역으로 분화하며 투지주(斗地主, Dou Dizhu), 빅투(大老二, Big Two), 일본의 대부호(大富豪) 같은 가지가 뻗어 나왔고, 서양에는 20세기 후반 President / Scum / Asshole 등의 이름으로 퍼졌습니다.
상업 보드게임 쪽에서는 갱 오브 포(Gang of Four, 1990) 와 우르스 호스테틀러의 티츄(Tichu, 1991) 가 쟁상유를 비교적 직접 옮겨 온 사례입니다. 반면 달무티(1995) 는 일본의 대부호를 그대로 리메이크했다기보다, President 계열의 구조를 리처드 가필드식 테마와 전용 덱으로 재해석한 쪽에 가깝습니다. 렉시오 역시 포커 족보를 얹는 방식에서 빅투 계열의 감각이 짙게 묻어납니다.
민속 카드게임의 계보가 대개 그렇듯 정확한 전파 경로가 문헌으로 확정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아래 그림도 “대략 이런 갈래"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graph TD
A["중국 클라이밍 게임<br/>争上游(쟁상유) 계열"] --> B["斗地主<br/>(투지주, 中)"]
A --> C["大老二 / Big Two<br/>(빅투, 中·港·臺)"]
A --> D["大富豪 / 大貧民<br/>(대부호, 日)"]
A --> E["Gang of Four (1990)<br/>Tichu (1991)"]
D --> F["President / Scum<br/>(西)"]
F -. 영향 .-> G["달무티 (1995)"]
C -. 영향 .-> H["렉시오"]
style A fill:#FFD700,color:#000000
style B fill:#87CEEB,color:#000000
style C fill:#87CEEB,color:#000000
style D fill:#90EE90,color:#000000
style E fill:#DDA0DD,color:#000000
style F fill:#FFB6C1,color:#000000
style G fill:#F5DEB3,color:#000000
style H fill:#F5DEB3,color:#000000
원조 격, 대부호(大富豪)#
일본에서 국민 카드게임 수준으로 널리 즐기는 대부호는 대빈민(大貧民) 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시작점을 부자에 두느냐 빈민에 두느냐의 차이일 뿐, 같은 게임입니다.
기본 규칙#
- 구성: 표준 52장 트럼프(조커 포함하는 변형도 많음), 보통 3~7명이 즐깁니다.
- 카드 세기: 기본적으로 3이 가장 약하고 2가 가장 강합니다. 즉
3 < 4 < ... < K < A < 2순서입니다. - 낼 수 있는 조합: 싱글, 페어, 트리플, 포카드(4장), 그리고 지역 룰에 따라 계단(階段, 같은 무늬 연속 숫자) 을 냅니다.
- 목표: 손패를 가장 먼저 비우면 그 판의 1등입니다.
대부호를 대부호답게 만드는 로컬 룰#
대부호의 진짜 재미는 지역·모임마다 다르게 채택하는 로컬 룰 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 혁명(革命): 포카드(같은 숫자 4장)를 내면 이후 카드의 강약 순서가 통째로 뒤집힙니다. 약했던 3이 가장 세지고, 강했던 2가 가장 약해집니다. 강한 카드를 잔뜩 쥐고 있던 부자에게는 재앙 같은 규칙입니다. 다만 뒤집히는 것은 카드 서열뿐 이고, 이미 정해진 신분과 자리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 8 자르기(8切り): 8을 내면 그 즉시 판이 리셋되고, 낸 사람이 다시 리드권을 가집니다. 위기 탈출용 카드로 요긴합니다.
- 묶기(縛り, 시바리): 같은 무늬가 연달아 나오면 그 판 동안 그 무늬로만 받을 수 있게 무늬가 고정됩니다.
- 스페이드 3 반칙(スペ3返し): 가장 강한 조커 싱글을, 가장 약한 카드인 스페이드 3으로 되받을 수 있는 예외 규칙입니다.
신분과 조공#
한 판이 끝나면 순서대로 대부호 / 부호 / (평민) / 빈민 / 대빈민 의 신분이 붙습니다. 다음 판 시작 전:
- 대빈민 → 대부호: 가장 강한 카드 2장 을 바치고, 대부호는 필요 없는 카드 2장을 내려줍니다.
- 빈민 → 부호: 가장 강한 카드 1장 을 바치고, 부호는 아무 카드 1장을 내려줍니다.
조공은 계급을 고착화하는 쪽으로 작동하고, 혁명과 8 자르기 같은 로컬 룰은 그 고착을 흔드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혁명이 신분표를 직접 갈아엎지는 않지만, 조공으로 강한 카드를 잔뜩 받아 든 대부호를 그 판 안에서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계급 재생산에 제동을 겁니다. 이 두 힘의 줄다리기가 대부호라는 게임의 골격입니다.
달무티 (The Great Dalmuti)#
달무티 는 매직 더 개더링을 만든 리처드 가필드(Richard Garfield)가 디자인해 1995년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에서 출시한 게임입니다. President 계열의 뼈대에 중세 계급 사회 라는 테마를 입히고, 그 테마를 카드 매수 자체에 녹여 넣은 전용 덱으로 재해석한 게임입니다. 4~8명일 때 특히 잘 굴러갑니다.
전용 80장 덱#
일반 트럼프가 아니라 80장 전용 카드 를 씁니다.
- 숫자 1부터 12까지 있는데, 숫자가 곧 장수 입니다. 1은 1장, 2는 2장, … 12는 12장. (1+2+…+12 = 78장)
- 여기에 광대(Jester) 2장 을 더해 총 80장입니다.
- 숫자가 작을수록 강합니다. 1이 최강(대달무티), 12가 최약(농노)입니다. 즉 세상에서 가장 높은 신분(1)은 세상에 하나뿐이고, 가장 낮은 신분(12)은 흔합니다. 계급 사회를 카드 매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 광대 는 단독으로 낼 때는 언제나 가장 약한 카드(서열상 13)이고, 다른 숫자와 함께 낼 때는 그 숫자의 와일드카드 가 됩니다.
신분과 세금(taxation)#
플레이어들은 등수에 따라 대달무티 → 소달무티 → 상인 → … → 소농노 → 대농노 순으로 자리에 앉습니다. 매 판 시작 전 세금(taxation) 이 부과됩니다.
- 대농노 는 자기 손에서 가장 좋은(숫자가 낮은) 카드 2장 을 대달무티에게 바치고, 대달무티는 아무 카드 2장을 내려줍니다.
- 소농노 는 가장 좋은 카드 1장 을 소달무티에게 바치고, 소달무티는 1장을 내려줍니다.
혁명(Revolution)#
달무티에서 가장 극적인 장치는 혁명 규칙입니다.
- 혁명: 어떤 플레이어가 광대 2장을 모두 손에 쥐면, 세금 징수를 취소 시킬 수 있습니다. (모임에 따라 광대 1장만으로도 농노가 혁명을 외칠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 대혁명(Greater Revolution): 하필 그 광대 2장을 대농노 가 쥐고 있으면, 자리를 통째로 뒤집을 수 있습니다. 대농노가 대달무티가 되고, 대달무티가 대농노로 굴러떨어집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던 사람이 광대 두 장으로 판을 엎는 순간이야말로 달무티라는 게임이 노리는 카타르시스입니다.
렉시오 (Lexio)#
렉시오 는 카드 대신 플라스틱 타일 로 즐기는 국산 클라이밍 게임입니다. 마작처럼 손맛 좋은 타일을 쓰면서, 포커 족보를 클라이밍 규칙에 얹은 독특한 게임입니다.
구성과 숫자 서열#
- 타일: 숫자 1~15가 4가지 색(빨강·노랑·초록·파랑) 으로 각각 존재해 총 60개입니다. 색마다 해·별·달·구름 같은 고유 문양이 있습니다.
- 인원별 사용 범위: 3명이면 1~9, 4명이면 1~13, 5명이면 1~15까지 씁니다.
- 숫자 서열: 여기서 렉시오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가장 약한 것이 3이고,
3 < 4 < ... < 15 < 1 < 2순으로 강해집니다. 2가 최강, 1이 그다음 입니다. - 머니(칩): 점수 정산에 쓰는 머니 칩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조합과 족보#
낼 수 있는 조합은 1장, 2장, 3장, 5장 입니다. (4장은 낼 수 없습니다.) 5장짜리 조합을 메이드(made) 라 부르며, 포커와 똑같은 족보를 쓰되 강약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약한 것부터 강한 것 순입니다.
- 스트레이트 (색 무관 연속된 5개 숫자)
- 플러시 (같은 색 5개)
- 풀하우스 (트리플 + 페어)
- 포카드 + 1 (같은 숫자 4개 + 아무 1개)
-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색 연속 5개)
여기서 처음 접하는 분들이 자주 헷갈리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포카드는 독립된 조합이 아니라 5장 메이드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같은 숫자 4개를 모았더라도 그것만 내려놓을 수는 없고, 반드시 아무 타일 1개를 얹어 5장으로 만들어야 냅니다.
싱글에는 싱글, 페어에는 페어로 받되, 메이드끼리는 종류가 달라도 족보 서열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풀하우스든 어떤 플러시든 이깁니다.
정산과 승리 조건#
한 명이 타일을 모두 털면 그 판이 끝납니다. 그러면 남은 타일 개수 차이만큼 다른 모든 플레이어에게 머니를 지불합니다. 특히 손에 강력한 2 타일 이 남아 있으면 2 한 장당 남은 타일 개수를 2배로 간주 합니다. 5개를 남겼는데 그중 2가 두 장이면 20개를 남긴 것으로 계산되는 식입니다. 강한 타일을 못 털고 남기는 것이 이렇게 뼈아픈 손해가 됩니다. 공식 규칙은 5라운드를 진행한 뒤 남은 머니로 최종 순위를 정합니다.
렉시오의 매력은 “손패를 먼저 비운다” 는 목표와 “강한 타일을 남기면 손해” 라는 정산 구조가 맞물려, 단순히 오래 버티기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잘 털어내는 것 을 요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클라이밍 게임을 관통하는 전략#
게임마다 이름과 소품은 달라도, 이기는 원리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1. 카드의 세기보다 ‘패 구조’를 먼저 본다#
패를 받으면 초보자는 곧장 강한 카드가 몇 장인지부터 셉니다. 하지만 이 계열에서 먼저 봐야 하는 것은 패 구조(hand structure), 즉 “내 패가 몇 번의 턴으로 나뉘어 나가는가"입니다.
렉시오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다음 두 패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A] 2 2 1 15 15 14 13 ← 강한 타일 투성이
[B] 5 5 6 6 7 7 8 8 ← 페어 덩어리
A는 서열상 최상위 타일이 잔뜩 있지만, 대부분 싱글로 한 장씩 흘려보내야 합니다. 싱글 판이 계속 돌아야 겨우 털리는데, 상대가 페어나 메이드로 판을 몰면 강한 타일을 손에 쥔 채 그대로 굳어 버립니다. 렉시오라면 남은 2 때문에 배수 정산까지 얻어맞습니다.
반면 B는 카드 하나하나는 평범해도 리드권만 잡으면 페어 판을 계속 돌려 네 턴 만에 다 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수들은 패를 받자마자 “강한 카드가 몇 장인가"가 아니라 “내 패는 최소 몇 턴이 필요한가” 를 셉니다. 이 최소 턴 수를 줄이는 방향이 곧 좋은 플레이입니다.
2. 리드권(control)은 ‘조합을 강제하는 권리’다#
모두를 패스시키고 새 판을 여는 리드권은 이 계열에서 가장 값진 자원입니다. 그런데 리드권의 가치는 “한 번 더 낸다"에 있지 않습니다.
리드권은 내가 원하는 조합으로 게임의 형태를 바꾸는 권리 입니다.
싱글이 많은 사람, 페어가 많은 사람, 메이드가 많은 사람은 각자 원하는 판의 모양이 다릅니다. 페어 덩어리를 든 사람에게 싱글 판이 계속 도는 것은 재앙이고, 메이드를 쥔 사람에게는 5장 판이 열리는 것이 곧 승리입니다. 리드권을 잡는다는 것은 내 패 구조에 맞는 판으로 갈아 끼운다 는 뜻이고, 반대로 리드권을 내준다는 것은 남의 패 구조에 내 패를 맞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개념이 클라이밍 게임의 정수입니다.
3. 나온 카드를 세라 (카드 카운팅)#
이 계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이 이미 나왔는가” 뿐입니다. 강한 카드(대부호의 2, 렉시오의 2, 달무티의 1)가 몇 장 나왔는지 추적하면, 내 손의 카드가 지금 사실상 최강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최강 카드를 쥐고 있다는 확신은 곧 “원하는 시점에 리드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보증이고, 그 보증이 있어야 앞의 두 가지를 계산에 넣을 수 있습니다.
4. 강한 조합을 언제 쪼갤 것인가#
포카드나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강한 조합은 든든하지만, 끝까지 통째로 들고 있으면 정작 손패가 안 줄어드는 함정에 빠집니다. 특히 렉시오처럼 남은 타일이 그대로 손해로 이어지는 게임에서는, 조합을 적절히 쪼개어 흘려보내며 손패를 꾸준히 줄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5. 최강 카드는 엔드게임 자원이자 ‘리드권 확보용’이다#
“강한 카드는 끝까지 아껴라"는 조언은 절반만 맞습니다. 대부호의 2·8·조커, 달무티의 광대, 렉시오의 2처럼 판을 끊는 카드를 종반의 원턴 마무리용으로 남겨 두는 것은 분명 정석입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초반에 최강 카드를 써서 리드권부터 확보하는 것 이 더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페어·메이드가 두툼한 패라면, 2 한 장을 던져 리드권을 사 온 다음 페어와 메이드를 연달아 정리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강한 카드를 끝까지 쥐고 있다가 판의 흐름이 내 패 구조와 어긋난 채로 흘러가면, 그 카드는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정리하자면 최강 카드는 엔드게임 전용 결제 수단이 아니라 “리드권을 사는 화폐” 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지금 리드권을 사서 몇 턴을 벌 수 있는지 계산해 보고, 그 이득이 종반에 남겨 둘 가치보다 크면 초반이라도 던집니다.
6. 신분에 맞는 운영: 부자와 빈민의 셈법#
- 부자(대부호·대달무티) 일 때는 조공으로 받은 강한 카드를 리드권 자원으로 관리하고, 내려줄 카드는 “쪼개져 있어 어차피 안 쓸 약한 카드"로 최소한만 손해 보게 고릅니다.
- 빈민(대빈민·대농노) 일 때는 최강 카드를 상납하고 시작하므로 정면 승부로는 불리합니다. 대신 혁명 가능성(포카드·광대 수집) 에 판돈을 걸거나, 페어·트리플 등 장수 싸움 으로 강한 싱글 위주 상대의 리듬을 흐트러뜨리는 편이 낫습니다.
7. 혁명은 양날의 검이다#
혁명은 판을 뒤집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내 손패가 혁명 이후 정말 유리해지는지 를 먼저 계산해야 합니다. 약한 카드가 많아 혁명 후 강해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을 살려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질 것 같을 때, 약패가 두터울 때” 터뜨리는 것이 혁명의 정석입니다.
게임별 심화 전략#
렉시오: 메이드는 자산이 아니라 ‘유동성’이다#
렉시오에서 승률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메이드 관리 입니다. 초보자가 가장 흔하게 겪는 패배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포카드 완성 → 아까워서 안 깬다 → 5장 판이 안 열린다
→ 끝내 못 낸다 → 타일 5개 남기고 패배
강한 메이드를 들고도 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5장 판은 내가 리드권을 잡거나 남이 열어 줄 때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즉 메이드의 실질 가치는 족보의 세기가 아니라 “낼 기회가 실제로 몇 번 오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메이드는 쌓아 두는 자산이 아니라, 필요할 때 현금화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유동성(liquidity) 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렉시오에서는 다음 두 가지 판단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깰 것인가: 스트레이트와 플러시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타일 구성이라면, 보통 플러시를 남기고 스트레이트를 깨는 쪽이 낫습니다. 스트레이트는 렉시오 메이드 중 가장 약해 받히기 쉽고, 구성 타일이 숫자별로 흩어져 있어 페어·싱글로 재활용하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플러시는 같은 색 타일이 모여야 해서 한 번 깨면 복구가 어렵습니다.
- 언제 분해할 것인가: 남은 타일이 6~7개 아래로 떨어졌는데 5장 판이 열릴 조짐이 없다면, 그 시점이 메이드를 깰 마지막 타이밍입니다. 포카드를 페어 둘로 쪼개서라도 손패를 흘려보내는 편이, 강한 메이드를 손에 쥔 채 배수 정산을 맞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달무티: 숫자보다 ‘몇 장을 낼 수 있는가’#
달무티는 숫자가 곧 장수인 덱 구조 때문에, 카드의 세기보다 한 번에 몇 장을 낼 수 있는가 가 압도적으로 중요합니다. 12는 가장 약하지만 12장이나 있어서 4장·5장 뭉치를 만들기 쉽고, 1은 최강이지만 세상에 한 장뿐이라 싱글로밖에 못 냅니다. 12장짜리 판을 열 수 있는 사람과 싱글밖에 못 내는 사람 중 손패가 빨리 비는 쪽은 명백합니다.
이 구조에서 나오는 판단은 세 가지입니다.
- 광대를 단독으로 버릴 것인가, 아껴 둘 것인가. 광대는 단독으로 내면 최약체라 사실상 버리는 카드이지만, 와일드카드로 쓰면 3장 뭉치를 4장으로, 4장 뭉치를 5장으로 늘려 줍니다. 손패에 4장짜리 뭉치가 있다면 광대는 절대 단독으로 버리지 않습니다.
- 뭉치를 깨서 장수를 맞출 것인가. 5장짜리 판이 열렸는데 내 손에 6장 뭉치가 있다면, 1장을 남기고 5장만 냅니다. 이때 남는 1장이 나중에 짐이 될지, 다른 뭉치에 붙일 수 있을지를 미리 봐 두어야 합니다.
- 세금 이후의 패 구조 변화. 대농노가 되어 좋은 카드 2장을 바치면 단순히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1과 2 같은 카드를 뺏기면 애초에 뭉치가 아니었으니 장수 손실은 크지 않지만, 대달무티가 내려주는 카드 2장이 기존 뭉치에 붙느냐 아니냐로 판이 갈립니다. 세금 교환 직후에는 반드시 패를 다시 정렬해 최소 몇 턴짜리 패가 되었는지 부터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대부호: 8과 시바리로 판의 모양을 바꾼다#
대부호에서 8 자르기와 묶기(시바리)는 단순한 로컬 룰이 아니라 판의 모양을 강제로 바꾸는 도구 입니다. 8은 “지금 이 판을 끝내고 내가 원하는 조합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므로, 앞의 2번 원칙(리드권 = 조합 강제권)이 가장 순수하게 구현된 카드입니다. 그래서 8은 위기 탈출용으로만 쓰기보다, 페어나 계단을 연달아 털어야 할 때 판을 열어 주는 열쇠 로 쓰는 편이 효율이 좋습니다. 시바리는 반대로 남의 선택지를 좁히는 도구라, 내가 그 무늬를 여유 있게 들고 있을 때 의도적으로 걸어 두면 상대를 통째로 묶어 둘 수 있습니다.
왜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가#
운의 비중이 커 보이는데도 클라이밍 게임에서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유는, 초보와 고수가 매 턴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상황 | 초보의 판단 | 고수의 판단 |
|---|---|---|
| 강한 카드를 쥐었을 때 | 강한 카드부터 낸다 | 지금 리드권을 사는 값어치가 있는지 계산한다 |
| 조합이 완성됐을 때 | 아까워서 끝까지 들고 간다 | 언제 깨야 하는지를 먼저 정한다 |
| 낼 수 있는 카드가 있을 때 | 낼 수 있으니까 낸다 | 낼 수 있어도 패스해서 카드를 아낀다 |
| 목표 시점 | 지금 이 턴을 이긴다 | 세 턴 뒤에 리드권을 가져온다 |
| 패를 평가할 때 | 카드가 세면 좋은 패 | 적은 턴에 털 수 있으면 좋은 패 |
정리하면 초보는 카드의 세기 를 보고, 고수는 턴의 흐름 을 봅니다. 이 차이 하나가 승률에서 큰 격차를 만듭니다.
마치며#
대부호, 달무티, 렉시오는 카드냐 전용 덱이냐 타일이냐, 그리고 조공이냐 세금이냐 머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더 센 조합으로 받아 올라가며 손패를 먼저 비운다” 는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사촌들입니다. 여기에 대부호와 달무티는 신분과 혁명이라는 사회 풍자를, 렉시오는 남은 타일을 돈으로 물어내는 정산 구조를 각자의 개성으로 얹었습니다. 규칙 감각 하나를 익혀 두면 나머지는 금방 손에 익습니다.
셋 중 무엇으로 입문하든, 오늘 정리한 일곱 가지 원칙(패 구조 읽기, 리드권 확보, 카드 세기, 조합 쪼개기, 최강 카드 운용, 신분별 운영, 혁명 타이밍)을 떠올리며 한 판 돌려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즉 “내 패는 몇 턴이 필요한가"와 “리드권으로 어떤 판을 만들 것인가"만 의식해도 체감 승률이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