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어제까지 이 블로그에 죄수의 딜레마 시리즈를 썼습니다. 서바이벌이 참가자에게 “협력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를 묻는 장면의 이론적 뿌리였습니다. 이번에는 서바이벌과 게임이 묻는 또 하나의 질문,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의 뿌리입니다. 윤리학의 사고실험1,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 입니다.

두 딜레마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죄수의 딜레마트롤리 딜레마
누가 고르나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선택을 모른 채한 사람이 혼자
무엇이 어려운가각자의 이익과 모두의 이익이 어긋난다결과(살린 사람 수)와 행위(누군가를 죽이는 것)가 어긋난다
어떤 학문의 질문인가게임 이론·경제학 — “합리적인 사람은 무엇을 고르는가”윤리학·도덕심리학 — “옳은 선택은 무엇이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느끼는가”
정답이 있나조건(보수의 순서)이 정해지면 균형이 정해진다이론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직관이 비슷한 상황에서 갈린다

이 시리즈는 여섯 편입니다.

편주제
Part 1 (이 글)트롤리 딜레마란 무엇인가 — 원형, 이름, 세 개의 답, 역사
Part 2변형들 — 육교, 고리, 장기 이식, 그리고 무엇이 직관을 바꾸는가
Part 3실험과 현실 — 뇌 영상, 모럴 머신, 자율주행차, 법정
Part 4「아마겟돈의 광차」 — 쯔꾸르 게임이 트롤리 딜레마를 뒤집은 방법
Part 5서바이벌·예능의 트롤리 딜레마
Part 6다른 게임과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속 트롤리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시리즈처럼 앞의 세 편이 이론, 뒤의 세 편이 사례입니다.


1. 원형 — 필리파 풋의 전차 운전사 (1967)#

트롤리 딜레마를 처음 글로 쓴 사람은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Philippa Foot) 입니다. 1967년 논문 「낙태 문제와 이중 효과의 원리(The Problem of Abortion and the Doctrine of the Double Effect)」에서였습니다. 이 논문은 전차 이야기를 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당시 뜨거웠던 낙태 논쟁에서, 가톨릭 윤리학의 오래된 원칙인 이중 효과의 원리2 가 정말 쓸모 있는지를 따지는 글이었습니다.

풋은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판사의 이야기. 어떤 범죄의 범인을 내놓지 않으면 폭도들이 한 집단에게 피의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진범은 모른다. 판사는 무고한 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하면 유혈을 막을 수 있다.

운전사의 이야기. 폭주하는 전차의 운전사가 있다. 그는 전차를 좁은 선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만 돌릴 수 있다. 한 선로에는 일하는 사람이 다섯, 다른 선로에는 한 명이 있다. 들어선 선로의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두 이야기 모두 한 사람의 목숨과 다섯 사람의 목숨 을 바꾸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판사가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은 끔찍하다고 느끼면서도, 운전사가 전차를 한 명 쪽으로 돌리는 것은 괜찮거나 오히려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숫자가 같은데 왜 판단이 갈리는가. 풋이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풋의 답은 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의 차이 였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을 의무(소극적)가 남을 도울 의무(적극적)보다 무겁다. 판사는 다섯을 돕기 위해 한 사람을 해쳐야 합니다. 운전사는 어느 쪽으로 가든 누군가를 해치게 되는 처지이고, 그렇다면 덜 해치는 쪽을 고르는 것입니다. 운전사에게는 “해치지 않는다” 는 선택지가 처음부터 없습니다.


2. 이름을 붙인 사람 — 주디스 자비스 톰슨 (1976·1985)#

2.1 운전사에서 방관자로#

이 문제에 “트롤리 문제(the trolley problem)” 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자비스 톰슨(Judith Jarvis Thomson) 입니다. 1976년 논문 「죽이기, 죽게 내버려 두기, 그리고 트롤리 문제(Killing, Letting Die, and the Trolley Problem)」에서였고, 1985년 『예일 법학 저널』에 실은 「트롤리 문제(The Trolley Problem)」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영문 위키백과는 톰슨의 1976년 논문이 트롤리 문제를 독립된 주제 로 다루는 방대한 문헌의 출발점이 됐다고 적습니다.

톰슨은 풋의 이야기에서 한 사람을 바꿨습니다. 운전사를 선로 옆의 방관자로.

폭주하는 전차가 선로 위의 다섯 사람을 향해 달린다. 당신은 선로 옆 전환기 앞에 서 있다. 전환기를 당기면 전차는 옆 선로로 들어가 그곳의 한 사람을 죽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섯이 죽는다.

flowchart LR
    T["폭주하는 전차"] --> SW{"선로 옆의 당신<br/>전환기를 당길 것인가"}
    SW -- "그대로 둔다" --> A["본선의 다섯 명이 죽는다<br/><br/>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SW -- "당긴다" --> B["옆 선로의 한 명이 죽는다<br/><br/>내가 방향을 바꿨다"]
    style T fill:#D3D3D3,color:#000000
    style SW fill:#FFD700,color:#000000
    style A fill:#FF9999,color:#000000
    style B fill:#87CEEB,color:#000000

이 작은 변경이 문제를 훨씬 날카롭게 만듭니다. 풋의 운전사는 어느 쪽이든 자기가 누군가를 친다는 점에서 “죽이기 대 죽이기” 였습니다. 톰슨의 방관자는 “죽게 내버려 두기(다섯)” 대 “죽이기(하나)” 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습니다. 풋의 답(해치지 않을 의무가 더 무겁다)을 그대로 쓰면, 방관자는 전환기를 당기면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당겨도 된다고, 혹은 당겨야 한다고 느낍니다.

2.2 육교 위의 남자#

그리고 톰슨은 짝이 되는 이야기를 하나 더 붙였습니다. 오늘날 육교(footbridge) 또는 뚱뚱한 남자(fat man) 라고 불리는 판본입니다.

전차가 다섯 사람을 향해 달린다. 당신은 선로 위의 육교에 서 있다. 옆에 몸집이 아주 큰 사람이 있다. 그를 밀어 선로로 떨어뜨리면 그의 몸이 전차를 멈춰 다섯이 산다. 그는 죽는다.

숫자는 똑같이 하나 대 다섯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밀면 안 된다 고 느낍니다. MIT 가 2020년 톰슨의 부고에서 요약한 그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방관자는 전환기를 당겨도 되는데, 육교의 남자는 밀면 안 되는 것 같다. 왜인가?

이것이 트롤리 문제의 진짜 문제 입니다. “전환기를 당길 것인가” 는 질문의 겉이고, 속은 “결과가 같은 두 상황에서 왜 우리의 판단이 정반대인가, 그 차이를 설명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입니다. 영문 위키백과도 트롤리 문제를 “특정 사례에서 왜 서로 다른 판단에 이르는가” 에 관한 메타 문제 로 설명합니다.


3. 세 개의 답#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가. 윤리학의 큰 전통들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3.1 공리주의 — 숫자를 세라#

18~19세기 영국의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로 대표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3 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결과 로 판단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오는 선택이 옳습니다. 영문 위키백과의 표현으로는, 고전적 공리주의에서 한 명 쪽으로 돌리는 것은 허용될 뿐 아니라 의무 입니다.

공리주의의 답은 일관됩니다. 전환기도 당기고, 육교의 남자도 밉니다. 숫자가 같으니 답도 같습니다. 문제는 이 일관성이 장기 이식 외과의 (Part 2)처럼, 건강한 사람 한 명을 죽여 장기 다섯 개로 다섯 환자를 살리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끔찍하게 여깁니다.

3.2 의무론 — 사람을 수단으로 쓰지 마라#

18세기 독일의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로 대표되는 의무론(deontology)4 은 결과보다 행위 자체의 성격 을 봅니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칸트의 정언명령5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사람을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

육교의 남자를 미는 것은 그의 몸을 전차를 멈추는 도구 로 쓰는 일입니다. 의무론은 여기서 분명히 “안 된다” 고 말합니다. 전환기의 경우는 조금 미묘합니다. 옆 선로의 한 사람은 다섯을 구하는 수단 이 아니라, 전차를 돌린 결과 우연히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그가 없었어도 다섯은 삽니다. 그래서 많은 의무론자는 전환기를 당기는 것은 허용하고 미는 것은 금지합니다. 다만 Part 2 에서 보겠지만, 이 구분을 정확히 긋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3.3 이중 효과의 원리 — 의도했는가, 예견했는가#

풋이 원래 따지려던 이중 효과의 원리 는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칙으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함께 낳는 행위를 언제 해도 되는지를 다룹니다. 핵심은 나쁜 결과를 의도했는가, 아니면 예견했지만 의도하지는 않았는가 입니다.

  • 전환기를 당길 때, 옆 선로의 한 사람이 죽는 것은 예견 되지만 의도 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이 거기 없었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것입니다. 죽음은 다섯을 구하는 행위의 부작용 입니다.
  • 육교의 남자를 밀 때, 그가 전차에 부딪혀 멈추게 하는 것 자체가 계획의 일부 입니다. 죽음(또는 적어도 몸이 부딪히는 것)이 다섯을 구하는 수단 입니다.

영문 위키백과는 이 설명이 “본질적으로 이중 효과의 원리를 적용한 것” 이라고 쓰고, 철학자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은 이 논리를 검토한 끝에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덧붙입니다.

flowchart TD
    Q["다섯을 살리려 한 명이 죽는 선택"] --> U["공리주의<br/>살린 수 − 죽은 수"]
    Q --> D["의무론<br/>그 사람을 수단으로 썼나"]
    Q --> E["이중 효과<br/>죽음을 의도했나, 예견만 했나"]
    U --> U1["전환기: 당긴다<br/>육교: 민다"]
    D --> D1["전환기: 허용 (많은 경우)<br/>육교: 금지"]
    E --> E1["전환기: 허용 (부작용)<br/>육교: 금지 (수단)"]
    style Q fill:#FFD700,color:#000000
    style U fill:#87CEEB,color:#000000
    style D fill:#90EE90,color:#000000
    style E fill:#90EE90,color:#000000
    style U1 fill:#D3D3D3,color:#000000
    style D1 fill:#D3D3D3,color:#000000
    style E1 fill:#D3D3D3,color:#000000

4. 사람들은 어떻게 답하는가#

이론과 별개로, 실제 사람들의 답에는 뚜렷한 패턴이 있습니다.

영문 위키백과는 여러 설문에서 방관자 판본에 약 90% 가 한 명을 희생해 다섯을 살리겠다고 답했고, 희생될 한 사람이 가족이나 연인 으로 바뀌면 그 비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정리합니다.

철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부르제(David Bourget)와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가 전문 철학자들에게 물은 필페이퍼스 설문(PhilPapers Survey) 결과입니다.

질문2009년2020년
방관자: 전환기를 당긴다68%63%
방관자: 당기지 않는다8%13%
육교: 민다—22%
육교: 밀지 않는다—56%

(나머지는 다른 견해이거나 답하지 않음. 2020년 수치는 대상 집단 전체 기준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환기는 다수가 당기고, 육교는 다수가 밀지 않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서 2020년 사이 “당기지 않는다” 쪽이 늘었습니다. 이 변화의 한 원인일지도 모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6절에서 다룹니다.


5. 풋 이전의 전차들#

트롤리 딜레마가 1967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영문 위키백과가 정리한 앞선 원형들입니다.

해누가무엇을
1905미국 위스콘신대의 프랭크 채프먼 샤프(Frank Chapman Sharp)학부생 도덕 설문에 넣은 판본. 선로 전환수가 전환기를 쥐고, 희생될 한 사람이 전환수 자신의 아이 다
1930독일 법철학자 카를 엥기슈(Karl Engisch)교수 자격 논문에서 비슷한 딜레마를 다룸
1951독일 법학자 한스 벨첼(Hans Welzel)같은 계열의 사례
1953랍비 아브로홈 예샤야 카렐리츠(Avrohom Yeshaya Karelitz)탈무드 주석에서, 많은 사람을 향하는 발사체를 적은 사람 쪽으로 돌려도 되는지를 다룸
1954미국 TV 극 『더 스트라이크(The Strike)』 (6월 7일 방송)한국전쟁 의 지휘관이 다가오는 적에게 공습을 요청할지 고민한다. 공습하면 자기 정찰대 20명이 죽고, 취소하면 본대 500명이 위험해진다

1905년 판본은 Part 2 에서 볼 “희생될 사람이 나와 가까울수록 판단이 바뀐다” 를 이미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독자에게는 1954년 판본이 눈에 띕니다. 트롤리 딜레마의 원형 하나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텔레비전에 방송됐습니다.


6. 톰슨의 번복 (2008)#

이야기에는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방관자 판본을 만든 톰슨 자신이 2008년, 『철학과 공공 문제(Philosophy & Public Affairs)』에 실은 「전차 돌리기(Turning the Trolley)」에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방관자는 전환기를 당기면 안 된다 는 것, 즉 풋 쪽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톰슨이 근거로 든 새 판본은 이렇습니다. 방관자에게 선택지가 셋 입니다. 전환기를 오른쪽으로 당기면 옆 선로의 한 사람이 죽고, 왼쪽으로 당기면 그 선로에 서 있는 방관자 자신 이 죽고, 그대로 두면 다섯이 죽습니다. 다섯을 구하려고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은 훌륭하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기라면 내놓지 않을 목숨을, 옆 선로의 남에게는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가. 톰슨의 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내가 치를 의향이 없는 대가를 남에게 치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0년 가까이 “왜 당겨도 되는가” 를 설명하려던 사람이 “사실은 당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로 돌아선 것입니다. 4절의 설문에서 철학자들의 “당기지 않는다” 가 늘어난 것과 겹치는 시기입니다. 둘 사이에 인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롤리 딜레마가 끝난 문제가 아니라는 것 만은 분명합니다. 톰슨은 2020년 11월 20일 아흔한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7. 비판 — 이 문제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트롤리 딜레마에는 오래된 비판도 따라붙습니다.

  • 너무 극단적이다. 2014년 『사회·성격 심리학 컴퍼스』에 실린 논문은 이 시나리오가 너무 극단적이고 현실의 도덕적 상황과 동떨어져 교육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 산수만 남긴다.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러턴(Roger Scruton)은 2017년 책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이런 딜레마들이 도덕적으로 중요한 관계를 거의 다 지워 버리고 문제를 산수 로 만든다고 썼습니다.
  •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를 묻지 않는다. 일본 철학자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는 2017년 글에서 원자폭탄 투하를 트롤리 문제의 예로 놓고, 이 문제에는 다섯 가지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드물고, 피할 수 없다고 가정하며, 묻는 사람은 안전지대에 있고, 묻는 사람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우며, 선택할 자유를 빼앗긴 희생자의 관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비판은 이 시리즈의 사례 편과 이어집니다. 서바이벌과 게임은 바로 이 “안전지대” 를 없애는 장치입니다. 고르는 사람이 다음 판에는 선로 위에 묶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시청자 앞에서 그 선택을 해명해야 합니다. Part 4 의 「아마겟돈의 광차」가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나락 게임” 으로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치며#

트롤리 딜레마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하나를 희생해 다섯을 살리는 것이 옳은가, 그리고 왜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의 답이 정반대로 갈리는가” 입니다. 풋은 판사와 운전사로 질문을 열었고, 톰슨은 방관자와 육교로 질문을 날카롭게 만든 뒤 30여 년 뒤 스스로 답을 바꿨습니다. 공리주의는 숫자를, 의무론은 사람을 수단으로 쓰는지를, 이중 효과의 원리는 죽음을 의도했는지를 봅니다.

다음 편은 질문의 속, “왜 답이 갈리는가” 를 파고듭니다. 철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전차를 고리 선로에 올리고, 육교에 함정문을 달고, 외과 의사를 수술실에 세웠습니다. 그 변형들을 하나씩 늘어놓으면 우리의 직관을 움직이는 손잡이가 몇 개 보입니다.

편주제
Part 1 (이 글)트롤리 딜레마란 무엇인가
Part 2변형들 — 무엇이 직관을 바꾸는가
Part 3실험과 현실
Part 4「아마겟돈의 광차」
Part 5서바이벌·예능의 트롤리 딜레마
Part 6다른 게임과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References#



  1.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실제로 실험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설정해, 그 결과나 우리의 판단을 따져 보는 방법입니다. 물리학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윤리학의 트롤리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

  2. 이중 효과의 원리(doctrine of double effect):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함께 낳는 행위를 할 때, 나쁜 결과를 의도 하지 않고 예견 만 했으며, 그것이 좋은 결과를 얻는 수단 이 아니고, 좋은 결과가 나쁜 결과보다 충분히 크다면 그 행위가 허용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당방위 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3. 공리주의(utilitarianism): 행위의 옳고 그름을 그 결과가 가져오는 행복(또는 효용)의 총량으로 판단하는 윤리 이론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는 구호로 알려져 있고, 벤담과 밀이 대표 학자입니다. ↩︎

  4. 의무론(deontology): 행위의 옳고 그름을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가 의무나 규칙에 맞는지로 판단하는 윤리 이론입니다. 결과가 좋아도 해서는 안 되는 일(예: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 칸트가 대표 학자입니다. ↩︎

  5.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 칸트 윤리학의 최고 원칙으로, “~하고 싶다면 ~하라” 같은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무조건 적용되는 명령입니다. 여러 정식 가운데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 가 트롤리 문제와 가장 자주 연결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