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컴의 역설 Part 1: 상자 하나인가, 둘 다인가 — 예측자가 이미 정해 둔 상금
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이 블로그의 딜레마 시리즈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시작해 트롤리 딜레마, 달러 경매, 투표의 역설, 몬티 홀 문제, 최후통첩 게임, 공유지의 비극까지 왔습니다. 여덟 번째 주제는 이 가운데 철학적으로 가장 머리가 아픈 문제, 뉴컴의 역설(Newcomb’s paradox) 입니다.
지금까지의 딜레마에는 상대가 있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의 공범, 최후통첩 게임의 응답자, 몬티 홀의 사회자입니다. 뉴컴의 역설에서 상대는 당신의 선택을 미리 아는 존재 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당신이 고르기 전에 이미 움직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네 편입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이 글) | 두 상자 — 규칙, 두 논증, 그리고 반으로 갈린 사람들 |
| Part 2 | 두 결정 이론 — 증거냐 원인이냐, 쌍둥이 죄수, 서로의 코드를 읽는 프로그램 |
| Part 3 | 예측자는 가능한가 — 뇌, 키보드, 칼뱅주의자, AI, 그리고 분류 흐름도 |
| Part 4 | 영화·문학·게임 속 예측자 — 사마라의 약속에서 데스노트까지 |
1. 규칙#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은 1969년 「뉴컴의 문제와 선택의 두 원리」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당신의 선택을 예측하는 능력을 당신이 엄청나게 신뢰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 존재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선택을 예측해 왔고,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이번에도 그 예측이 거의 틀림없이 맞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상자가 두 개 있습니다. 상자 1 은 투명하고, 안에 1,000 달러 가 보입니다.
- 상자 2 는 불투명하고, 안에 100만 달러 가 있거나 아무것도 없습니다.
- 당신은 상자 2 만 가져가거나, 두 상자 모두 가져갈 수 있습니다.
- 예측자는 당신이 고르기 전에 이미 상자 2 를 채웠습니다.
- 당신이 두 상자 모두 가져가리라 예측했다면, 상자 2 를 비워 두었습니다.
- 당신이 상자 2 만 가져가리라 예측했다면, 상자 2 에 100만 달러 를 넣었습니다.
노직은 각주에 한 줄을 더 붙였습니다. 동전을 던져 고르는 식으로 일부러 무작위로 고를 것 이라고 예측되면, 예측자는 상자 2 를 비워 둡니다. 운에 맡기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 예측: 상자 2 만 (100만 달러 들어 있음) | 예측: 둘 다 (비어 있음) | |
|---|---|---|
| 상자 2 만 가져간다 | 100만 달러 | 0 달러 |
| 둘 다 가져간다 | 100만 1,000 달러 | 1,000 달러 |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고르겠습니까. 답을 정하고 다음 절로 넘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2. 두 개의 논증#
노직은 두 가지 논증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둘 다 그럴듯하고, 정반대의 답을 냅니다.
첫 번째 논증 — 기댓값. 내가 둘 다 가져가면, 예측자는 거의 틀림없이 그것을 예측했을 것이고 상자 2 는 비어 있을 것입니다. 나는 1,000 달러를 받습니다. 내가 상자 2 만 가져가면, 예측자는 거의 틀림없이 그것을 예측했을 것이고 상자 2 에는 100만 달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상자 2 만 가져가야 합니다. 노직은 이것을 기대 효용 원리 라고 불렀습니다. 할 수 있는 행동 가운데 기대 효용이 가장 큰 것을 하라는 원리입니다.
두 번째 논증 — 지배. 예측자는 이미 예측했고, 상자 2 는 이미 채워졌거나 비워졌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고르든 상자 안의 돈은 바뀌지 않습니다. 상자 2 에 100만 달러가 있다면 둘 다 가져갈 때 100만 1,000 달러로 1,000 달러 더 많습니다. 비어 있다면 둘 다 가져갈 때 1,000 달러로 역시 1,000 달러 더 많습니다. 어느 경우든 둘 다 가져가는 쪽이 1,000 달러 더 받습니다. 위 표에서 아래 줄이 위 줄보다 모든 칸에서 큽니다. 노직은 이것을 지배 원리 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더 나은 행동이 있으면 그것을 하라는 원리입니다.
두 원리는 보통 같은 답을 냅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이 “상대가 무엇을 하든 나에게 낫다” 고 할 때 쓴 것이 지배 원리이고, 상대의 행동이 내 선택과 무관하다면 기댓값으로 따져도 같은 답이 나옵니다. 뉴컴의 문제가 특별한 것은 상자 안의 돈(상태)이 내 선택과 확률적으로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자 2 만 고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상자 2 에 돈이 있을 가능성을 높입니다. 그런데 내가 고르는 행동이 상자에 돈을 넣지는 않습니다.
3. 반으로 갈린 사람들#
노직은 논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문제를 친구와 학생 등 많은 사람에게 내 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완벽하게 분명하고 당연하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거의 정확히 반으로 갈린다 는 것이고, 많은 사람이 반대편 절반은 그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뒤 반세기 넘게 모은 숫자도 그 말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1973~1974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독자 편지. 수학 퍼즐 칼럼니스트 마틴 가드너는 1973년 7월 칼럼에서 이 문제를 소개했고, 이듬해 3월호에는 노직이 객원 필자로 독자 반응을 정리했습니다. 노직이 읽은 편지는 650 쪽이 넘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편지 148 통의 분포는 이랬습니다.
| 의견 | 편지 수 |
|---|---|
| 상자 2 만 가져가야 한다 | 89 |
| 둘 다 가져가야 한다 | 37 |
| 조건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모순이다 | 13 |
| 속임수를 써야 한다 | 5 |
| 그런 예측자는 존재할 수 없다 | 4 |
노직은 이것을 “약 2.5 대 1” 이라고 적었습니다(정확히는 2.41 대 1).
2009년과 2020년, 철학자 설문. 철학 논문 데이터베이스 필페이퍼스(PhilPapers)는 전문 철학자들에게 여러 철학 문제의 입장을 묻는 대규모 설문을 두 번 했습니다.
| 설문 | 두 상자 | 한 상자 | 그 밖 |
|---|---|---|---|
| 2009년 (주요 학과 교수진 931 명) | 31.4% | 21.3% | 47.4% |
| 2020년 (응답자 1,785 명 가운데 이 문항 응답자) | 39.0% | 31.2% | 30.2% |
두 해의 숫자는 응답자 범위와 집계 방식이 달라 그대로 비교할 수 없다고 연구진이 밝혔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맞춰 보면 11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한 상자 21.3% → 20.1%, 두 상자 31.4% → 31.2%). 그리고 결정 이론을 전공한 철학자일수록 두 상자 쪽으로 강하게 기울었습니다.
2016년, 『가디언』 독자 투표. 영국 『가디언』의 수학 칼럼니스트 알렉스 벨로스는 2016년 11월 독자 투표를 열었습니다. 한 상자 쪽 변론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철학자 아리프 아메드가, 두 상자 쪽 변론은 철학 저술가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맡았습니다. 3만 1,854 표 가 모였고, 결과는 한 상자 53.5%, 두 상자 46.5% 였습니다. 아메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컴의 문제가 합리적인 것과 부자가 되는 것 사이의 선택이라면, 나는 언제든 돈을 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반 독자는 한 상자 쪽으로 근소하게, 철학자는 두 상자 쪽으로 근소하게 기웁니다. 어느 쪽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4. 문제를 만든 사람#
이 문제의 이름은 노직이 아니라 윌리엄 뉴컴(William Newcomb) 에게서 왔습니다. 노직은 논문 첫 각주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문제는 캘리포니아 리버모어 방사선 연구소의 물리학자 윌리엄 뉴컴 박사가 만든 것이고, 자신은 1963년 뉴컴의 친구인 프린스턴의 마틴 크러스컬 교수에게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아름다운 문제다.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가드너의 칼럼에 따르면 뉴컴은 1960년, 죄수의 딜레마를 생각하다가 이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이 시리즈가 죄수의 딜레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Part 2의 일입니다.
정작 만든 사람과 소개한 사람의 답은 달랐습니다. 가드너에 따르면 뉴컴과 크러스컬은 한 상자 쪽이었습니다. 노직은 1969년 논문에서 “나는 두 상자 모두 가져가야 한다고 믿는다” 고 썼습니다. 가드너는 노직이 “마지못해” 두 상자를 권했다고 표현했습니다. 노직은 1993년 『합리성의 본성』에서는 한쪽을 고르는 대신, 인과적 효용과 증거적 효용(그리고 상징적 효용)을 가중해 합치는 절충안으로 옮겨 갔습니다.
가드너 자신은 세 번째 편에 섰습니다. 그는 그런 예측자는 존재할 수 없다 는 쪽에 공감한다고 썼고, 실제로 이런 상황에 놓이면 사기극이나 허술한 실험의 피해자라고 의심하며 두 상자를 가져가겠다 고 했습니다.
5. 예측자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가#
노직은 예측자가 “거의 틀림없이” 맞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정확해야 상자 2 만 고르는 것이 기댓값으로 유리해질까요. 예측자가 정확도 p 로 맞힌다고 두고 계산해 보겠습니다.
- 상자 2 만 가져가면: 확률 p 로 100만 달러, 확률 1-p 로 0 달러
- 둘 다 가져가면: 확률 p 로 1,000 달러(예측이 맞아 상자 2 가 빔), 확률 1-p 로 100만 1,000 달러
계산한 값과, 같은 조건으로 10만 판을 실제로 돌려 본 결과를 함께 보겠습니다.
package main
import (
"fmt"
"math/rand/v2"
)
const (
small = 1_000 // 투명한 상자 A
big = 1_000_000 // 불투명한 상자 B (예측자가 "한 상자" 를 예측했을 때만)
)
// 정확도 acc 인 예측자를 상대로 n 판을 했을 때 한 판 평균 상금.
func play(oneBox bool, acc float64, n int, r *rand.Rand) float64 {
total := 0
for range n {
// 예측자는 acc 의 확률로 맞히고, 나머지는 반대로 예측한다.
predictOne := oneBox
if r.Float64() >= acc {
predictOne = !oneBox
}
b := 0
if predictOne {
b = big
}
if oneBox {
total += b
} else {
total += small + b
}
}
return float64(total) / float64(n)
}
func main() {
r := rand.New(rand.NewPCG(1, 2))
const n = 100_000
fmt.Println("정확도 한 상자(계산) 두 상자(계산) 한 상자(모의) 두 상자(모의)")
for _, acc := range []float64{0.5, 0.5005, 0.51, 0.6, 0.9, 0.99, 1.0} {
one := acc * big
two := small + (1-acc)*big
fmt.Printf("%-8.4f %13.0f %14.0f %14.0f %14.0f\n",
acc, one, two, play(true, acc, n, r), play(false, acc, n, r))
}
// 두 선택의 기댓값이 같아지는 정확도: acc*big = small + (1-acc)*big
fmt.Printf("\n손익분기 정확도: %.4f\n", float64(big+small)/float64(2*big))
}
실행 결과입니다.
정확도 한 상자(계산) 두 상자(계산) 한 상자(모의) 두 상자(모의)
0.5000 500000 501000 499190 502050
0.5005 500500 500500 500290 502450
0.5100 510000 491000 510440 488300
0.6000 600000 401000 601660 400180
0.9000 900000 101000 899660 102350
0.9900 990000 11000 989650 10710
1.0000 1000000 1000 1000000 1000
손익분기 정확도: 0.5005
예측자가 50.05% 만 맞혀도 한 상자의 기댓값이 앞섭니다. 동전 던지기보다 아주 조금 나은 예측자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이 숫자는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가 1979년 논문에서 이미 계산해 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신뢰도가 (1 + r)/2 를 넘으면 두 원리가 충돌한다고 쓰고(r 은 1,000 달러와 100만 달러의 가치 비), 괄호 안에 “가치가 돈에 비례한다면 0.5005” 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높은 신뢰도 기준은 아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이 계산에는 조건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내가 한 상자를 고르면 예측자가 한 상자를 예측했을 확률이 p” 라는, 내 선택을 조건으로 한 확률을 썼다는 것입니다. 두 상자 쪽은 바로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측은 이미 끝났으니, 내가 무엇을 고르든 상자 2 에 돈이 있을 확률은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정확도가 0.99 든 1.0 이든 둘 다 가져가는 쪽이 늘 1,000 달러 많습니다. 시뮬레이션 표의 1.0 줄은 “예측자가 완벽하다면 한 상자가 100만 달러, 두 상자가 1,000 달러” 를 보여 주지만, 두 상자 쪽은 “그건 예측자가 두 상자를 고를 사람에게 처음부터 빈 상자를 준 것일 뿐, 그 자리에서 둘 다 가져가는 것이 손해라는 뜻은 아니다” 라고 답합니다.
노직도 이 점을 찔렀습니다. 그는 예측자의 정확도가 0.6 이라면 기대 효용은 한 상자를 권하지만(60만 대 40만 1,000 달러), “그래도 우리 모두는 두 상자를 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썼습니다. 반대로 예측자가 200억 번에 한 번 틀린다는 것을 알 때는 두 상자를 고르고,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만 한 상자를 고르겠느냐고 두 상자 지지자들에게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6. 세 개의 진영#
양자 컴퓨팅 연구자 스콧 애런슨은 2005년 블로그 글에서 이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을 세 진영으로 나눴습니다.
| 진영 | 입장 | 대표 논리 |
|---|---|---|
| 한 상자 | 상자 2 만 가져간다 | 한 상자를 고르는 사람이 실제로 부자가 된다 |
| 두 상자 | 둘 다 가져간다 | 상자는 이미 채워졌다. 지금 고르는 것이 돈을 넣거나 빼지 않는다 |
| “비트겐슈타인 파” |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 그런 예측자는 있을 수 없거나, 설정에 모순이 있다 |
애런슨은 자신이 원래 세 번째 진영이었다가 한 상자 쪽으로 옮겼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Part 3에서 다룹니다. 가드너에게 온 편지 가운데 “조건이 모순” 13 통과 “예측자는 존재할 수 없다” 4 통이 세 번째 진영입니다. 필페이퍼스 설문의 “그 밖” 30% 가운데 상당수도 아마 이쪽일 것입니다.
7. 왜 이렇게 어려운가#
뉴컴의 문제가 사람들을 반으로 가르는 이유는 두 가지 직관이 모두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 원인의 직관: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상자는 이미 정해졌다.
- 증거의 직관: 한 상자를 고르는 사람들은 백만장자가 되고, 두 상자를 고르는 사람들은 1,000 달러를 들고 집에 간다. 그 표를 보고도 두 상자를 고르는 것이 합리적인가.
두 상자 쪽 철학자들은 한 상자 쪽에게서 종종 이런 놀림을 듣습니다. “그렇게 똑똑하다면서 왜 부자가 아니야?” 이 문장은 루이스가 1981년에 쓴 짧은 논문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 논문에서 루이스가 어떻게 답했는지, 그리고 이 두 직관이 어떻게 두 개의 결정 이론으로 갈라졌는지가 다음 편의 이야기입니다.
마치며#
뉴컴의 역설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미 정해진 상자 앞에서, 나는 원인을 따를 것인가 증거를 따를 것인가” 입니다. 지배 원리는 둘 다 가져가라고 하고, 기댓값은 하나만 가져가라고 합니다. 예측자는 50.05% 만 맞혀도 기댓값의 저울을 기울이지만, 두 상자 쪽은 그 저울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973년 잡지 독자들은 2.4 대 1 로 한 상자를, 2020년 철학자들은 39 대 31 로 두 상자를 골랐고, 2016년 신문 독자 3만 명은 53 대 47 로 갈렸습니다.
다음 편은 이 갈림길을 이론으로 만듭니다. 증거적 결정 이론과 인과적 결정 이론, 담배를 피우게 만드는 유전자, 다마스쿠스에서 죽음을 만난 남자, 그리고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쌍둥이와 하는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마지막에는 서로의 소스 코드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끼리 죄수의 딜레마를 시켜 봅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이 글) | 두 상자 |
| Part 2 | 두 결정 이론 |
| Part 3 | 예측자는 가능한가 |
| Part 4 | 영화·문학·게임 속 예측자 |
References#
노직(1969)과 루이스(1979)는 원문 스캔으로, 가드너의 칼럼과 노직의 객원 칼럼은 두 칼럼을 실은 가드너의 단행본으로, 철학자 설문은 연구진의 논문으로 확인했습니다.
원전
- Robert Nozick, “Newcomb’s Problem and Two Principles of Choice”, in N. Rescher (ed.), Essays in Honor of Carl G. Hempel (Reidel, 1969), pp. 114–146
- Martin Gardner, “Mathematical Games: Free will revisited, with a mind-bending prediction paradox by William Newcomb”, Scientific American 229(1): 104–109 (1973년 7월)
- Robert Nozick, “Reflections on Newcomb’s problem: a prediction and free-will dilemma”, Scientific American 230(3): 102–109 (1974년 3월)
- Martin Gardner, Knotted Doughnuts and Other Mathematical Entertainments (W. H. Freeman, 1986), 13~14장 — 두 칼럼과 후기
- Robert Nozick, The Nature of Rational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 David Lewis, “Prisoners’ Dilemma Is a Newcomb Problem”, Philosophy & Public Affairs 8(3): 235–240 (1979) — 손익분기 0.5005
- David Lewis, "‘Why Ain’cha Rich?’", Noûs 15(3): 377–380 (1981)
설문과 투표
- David Bourget & David J. Chalmers, “What do philosophers believe?”, Philosophical Studies 170(3): 465–500 (2014) — 2009년 설문
- David Bourget & David J. Chalmers, “Philosophers on Philosophy: The 2020 PhilPapers Survey”, Philosophers’ Imprint 23 (2023)
- Alex Bellos, “Newcomb’s problem divides philosophers. Which side are you on?”, The Guardian (2016년 11월 28일); 결과 기사 (2016년 11월 30일)
- Scott Aaronson, “Dude, it’s like you read my mind”, Shtetl-Optimized (2005년 11월 11일) — 세 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