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게임과 공정성 Part 2: 거절권을 빼면 — 독재자 게임과 신뢰 게임
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Part 1에서 최후통첩 게임의 제안자들은 평균 40% 를 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정해서인지, 거절당할까 봐 계산한 것인지는 가릴 수 없었습니다. 이번 편은 그 둘을 떼어 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응답자의 거절권을 빼면 됩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 최후통첩 게임 — 1원이라도 받는 게 이득인데 왜 거절하는가 |
| Part 2 (이 글) | 거절권을 빼면 — 독재자 게임과 신뢰 게임 |
| Part 3 | 공정성은 어디서 오는가 — 불평등 회피, 뇌, 침팬지와 아이들, 그리고 분류 흐름도 |
| Part 4 | 서바이벌·예능의 분배 — 더 커뮤니티2 에서 러브 아일랜드까지 |
| Part 5 | 영화·문학·게임 속 분배와 해적 게임, 그리고 유형 분류표 |
1. 독재자 게임 — 받는 쪽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 의 규칙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한 줄을 지운 것입니다. 한 사람(독재자)이 돈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얼마를 줄지 정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받는 쪽은 수락도 거절도 할 수 없습니다.
게임 이론의 답은 더 단순합니다. 받는 쪽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돈만 생각하는 독재자는 한 푼도 주지 않습니다. 거절당할 걱정이 없으니 최후통첩 게임에서처럼 “계산된 후함” 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주는 돈은 순수하게 남을 생각하는 마음 을 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생각의 시작은 1986년 대니얼 카너먼, 잭 네치, 리처드 세일러의 「공정성과 경제학의 가정들」입니다. 20달러를 18 대 2 로 나누거나 10 대 10 으로 나누는 두 가지 가운데 고르게 했더니, 대다수가 10 대 10 을 골랐습니다. 다만 이 실험은 참가자 가운데 일부만 실제로 돈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형태, 곧 한 사람이 정해진 돈을 원하는 대로 나누는 게임은 1994년 포사이스 등이 정리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조건에서 최후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을 함께 해 보고, 두 게임의 분배가 유의하게 다르다 는 것을 보였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의 넉넉한 제안을 공정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는 뜻입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2. 그래도 나눠 준다 — 평균 약 28%#
그렇다고 독재자들이 모두 한 푼도 주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2011년 크리스토프 엥겔은 25년 동안 발표된 100건이 넘는 독재자 게임 실험을 모아 메타분석을 했습니다. 독재자가 준 돈은 평균 약 28% 였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의 40% 보다는 확실히 적지만, 0 과도 거리가 멉니다.
| 게임 | 받는 쪽의 힘 | 이론의 예측 | 실제 평균 |
|---|---|---|---|
| 최후통첩 게임 | 거절할 수 있다 | 가장 작은 단위 | 약 40% |
| 독재자 게임 | 아무것도 못 한다 | 0 | 약 28% |
두 숫자의 차이, 약 12%p 가 거절이 무서워서 더 준 몫 이고, 28% 가 그래도 주는 몫 이라고 거칠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28% 를 순수한 이타심으로 읽어도 될까요. 이어지는 실험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3. 보는 눈이 사라지면 — 64% 가 한 푼도 주지 않았다#
1994년 엘리자베스 호프먼, 버넌 스미스 등은 독재자 게임을 이중 맹검 으로 바꿨습니다. 받는 사람은 물론이고 실험자조차 어느 독재자가 얼마를 줬는지 알 수 없게 설계한 것입니다. 결과는 극적이었습니다. 10달러를 받은 독재자의 64% 가 한 푼도 주지 않았고, 4달러 이상 준 사람은 8% 에 그쳤습니다. 이들은 1996년의 후속 연구에서 독재자와 받는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 가 멀어질수록 주는 돈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독재자 게임의 28% 가운데 상당 부분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 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4. 빼앗을 수도 있다면 — 71% 에서 10% 로#
2007년 존 리스트는 선택지를 바꿨습니다. 기본 독재자 게임에서는 독재자가 0 에서 자기 몫 전부까지 줄 수만 있습니다. 리스트는 여기에 상대의 몫에서 가져오는 선택지를 더했습니다.
| 조건 | 무엇이든 준 독재자의 비율 |
|---|---|
| 기본 (줄 수만 있다) | 71% |
| 1달러까지 빼앗을 수 있다 | 35% |
| 5달러까지 빼앗을 수 있다 | 10% |
빼앗을 수 있게 되자, 주는 사람이 확 줄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많이 빼앗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이 글의 해석으로는, 많은 사람이 선택지의 가장 이기적인 끝 을 피하려 했고, 선택지가 “빼앗기” 쪽으로 넓어지자 “조금 준다” 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 그 안전한 중간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는 돈은 받는 사람에 대한 마음만이 아니라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에 크게 좌우됩니다.
5. 모른 척할 수 있다면 — 74% 에서 47% 로#
2007년 제이슨 대나, 로베르토 웨버, 제이슨 쾅은 두 가지만 고를 수 있는 독재자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 A: 나 6달러, 상대 1달러
- B: 나 5달러, 상대 5달러
두 사람의 몫을 다 보여 주자 74% 가 B, 곧 1달러를 포기하고 공정한 쪽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상대의 몫을 가려 두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공짜로 볼 수 있게 하자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확인 버튼을 누른 사람은 56% 에 그쳤고, 확인한 뒤 후한 쪽을 고른 사람은 47% 였습니다.
상대가 얼마를 받는지 몰라도 되는 길이 열리자, 많은 사람이 그 길로 갔습니다. 연구진은 이것을 도덕적 여지(moral wiggle room) 라고 불렀습니다. 공정하게 행동하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공정한 결과라기보다, 불공정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않는 것 일 수 있습니다.
6. 조용히 떠날 수 있다면 — 3분의 1 이 9달러를 택했다#
2006년 대나, 데일리언 케인, 로빈 도스의 실험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독재자에게 10달러짜리 독재자 게임을 하는 대신 9달러를 받고 조용히 빠져나가는 선택지를 줬습니다. 빠져나가면 받는 사람은 0원이지만, 자기가 독재자 게임의 상대였다는 사실조차 영원히 모릅니다.
계산으로는 이상한 선택입니다. 10달러짜리 게임에서는 10달러를 다 가질 수도 있고(10, 0), 1달러를 줄 수도 있습니다(9, 1). 어느 쪽이든 조용한 퇴장(9, 0)보다 낫거나 같습니다. 그런데도 두 차례의 실험에서 약 3분의 1 이 9달러를 받고 떠났습니다. 반대로 받는 사람이 처음부터 게임의 존재를 모르는 “비밀 독재자 게임” 에서는 빠져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들은 돈을 아끼려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기대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1달러를 낸 것입니다. 나눠 주는 행동의 상당 부분은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는 불편함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7. 신뢰 게임 — 먼저 믿고 맡기면 세 배가 된다#
지금까지는 한 사람이 나누는 게임이었습니다. 1995년 조이스 버그, 존 딕하우트, 케빈 매케이브는 순서를 하나 더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투자 게임” 이라고 불렸고, 지금은 신뢰 게임(trust game) 으로 불립니다.
- 두 사람이 10달러씩 받습니다.
- 첫 번째 사람(투자자)이 그 가운데 원하는 만큼을 두 번째 사람에게 보냅니다. 보낸 돈은 세 배 가 됩니다.
- 두 번째 사람(수탁자)은 받은 돈 가운데 원하는 만큼을 돌려보냅니다. 끝.
두 번째 단계는 정확히 독재자 게임입니다. 돈만 생각하는 수탁자는 한 푼도 돌려주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아는 투자자는 처음부터 한 푼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게임 이론의 답은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서로를 믿고 10달러를 다 보내면 30달러가 되어, 둘이 나눠도 처음보다 많습니다.
실험에서는 두 조건을 합쳐 투자자 60명 가운데 55명 이 얼마라도 보냈습니다. 수탁자들도 상당수가 돈을 돌려보냈습니다. 다만 강의 자료들의 정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돌려받은 돈은 보낸 돈의 약 90% 수준이어서, 믿음 자체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믿었습니다.
2011년 존슨과 미슬린은 신뢰 게임 실험 162건, 참가자 2만 3천여 명 을 모은 메타분석을 했습니다. 투자자가 보내는 돈은 지역에 따라 달라서, 예를 들어 북미보다 아프리카에서 적게 보냈습니다. Part 1에서 본 15개 소규모 사회처럼, 믿음의 기준도 사회가 사는 방식을 따라갑니다.
8. 세 게임 한눈에 보기#
| 최후통첩 게임 | 독재자 게임 | 신뢰 게임 | |
|---|---|---|---|
| 누가 정하나 | 제안자가 나누고, 응답자가 받거나 판을 엎는다 | 독재자 혼자 | 투자자가 맡기고, 수탁자가 혼자 돌려준다 |
| 받는 쪽의 힘 | 거절 (모두 0) | 없음 | 없음. 대신 판을 키워 준 사람 |
| 이론의 예측 | 가장 작은 단위 | 0 | 아무도 보내지 않는다 |
| 실험 결과 | 평균 약 40%, 20% 아래는 자주 거절 | 평균 약 28%. 보는 눈, 선택지, 모를 권리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 | 대부분 보낸다. 돌려받는 돈은 대체로 보낸 돈 언저리 |
| 무엇을 재나 | 공정 + 거절에 대한 두려움 | 나누려는 마음 + 남의 눈 | 믿음과 보답 |
세 게임을 함께 놓으면 사람의 공정함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거절이 무서워서 주는 몫, 남의 눈이 있어서 주는 몫, 상대가 기대하고 있어서 주는 몫,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빼도 남는 몫이 따로 있습니다. 서바이벌의 분배 장면도 이 가운데 어느 몫이 움직이고 있는지 보면 읽힙니다. 상금을 혼자 정할 수 있는 우승자가 동료에게 돈을 나눠 주는 장면은 독재자 게임이고, 그 장면이 카메라 앞 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3절의 실험과 겹칩니다. Part 4에서 보는 영국 『러브 아일랜드』 결승의 상금 봉투가 정확히 그 장면입니다.
마치며#
이번 편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사람은 나누지만,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있다” 입니다. 거절권을 빼자 나누는 돈은 40% 에서 28% 로 줄었고, 실험자의 눈까지 빼자 64% 가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모른 척할 길이 열리자 공정한 선택이 줄었고, 상대가 모르게 떠날 수 있게 하자 3분의 1 이 1달러를 내고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남는 몫이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10달러를 맡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음 편은 이 행동들이 어디서 오는지를 봅니다. 남과의 차이를 싫어하는 마음, 상대의 의도를 읽는 마음, 불공정 앞에서 켜지는 뇌의 영역, 자기 돈을 써서 남의 불공정을 벌하는 제3자, 그리고 공정에 둔감한 침팬지와 여덟 살이 되면 달라지는 아이들입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 최후통첩 게임 |
| Part 2 (이 글) | 독재자 게임과 신뢰 게임 |
| Part 3 | 공정성은 어디서 오는가 |
| Part 4 | 서바이벌·예능의 분배 |
| Part 5 | 영화·문학·게임 속 분배와 해적 게임 |
References#
- Daniel Kahneman, Jack L. Knetsch, Richard H. Thaler, “Fairness and the Assumptions of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59(4) pt.2: S285–S300 (1986)
- Robert Forsythe, Joel L. Horowitz, N. E. Savin, Martin Sefton, “Fairness in Simple Bargaining Experiments”, Games and Economic Behavior 6(3): 347–369 (1994)
- Christoph Engel, “Dictator games: a meta study”, Experimental Economics 14(4): 583–610 (2011)
- Elizabeth Hoffman, Kevin McCabe, Keith Shachat, Vernon Smith, “Preferences, Property Rights, and Anonymity in Bargaining Games”, Games and Economic Behavior 7(3): 346–380 (1994) — 이중 맹검 결과는 EconPort 정리
- John A. List, “On the Interpretation of Giving in Dictator Game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15(3): 482–493 (2007)
- Jason Dana, Roberto A. Weber, Jason Xi Kuang, “Exploiting moral wiggle room: experiments demonstrating an illusory preference for fairness”, Economic Theory 33(1): 67–80 (2007)
- Jason Dana, Daylian M. Cain, Robyn M. Dawes, “What you don’t know won’t hurt me: Costly (but quiet) exit in dictator game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00(2): 193–201 (2006)
- Joyce Berg, John Dickhaut, Kevin McCabe, “Trust, Reciprocity, and Social History”, Games and Economic Behavior 10(1): 122–142 (1995) — EconPort 의 투자 게임 해설, 반환 비율은 UCSD 강의 자료
- Noel D. Johnson & Alexandra A. Mislin, “Trust games: A meta-analysis”, Journal of Economic Psychology 32(5): 865–889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