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한국 대중음악에는 가수와 작곡가의 역사는 많아도 그 뒤에서 박자를 지킨 연주자의 역사는 드뭅니다. 특히 드러머는 1980년대까지 음반에 이름조차 적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이름들을 자료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모아, 일곱 편에 걸쳐 세대별로 적습니다.

주제는 세션 드러머의 계보 입니다. 가수의 음반과 공연에서 드럼을 친 사람들이 어떤 무대에서 왔고, 누구에게 배웠거나 누구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앉았으며, 어떤 음반에 이름을 남겼는지를 세대별로 정리합니다. 밴드의 드러머도 함께 다룹니다. 한국에서는 밴드 드러머와 세션 드러머의 경계가 처음부터 흐렸기 때문입니다.

편주제
Part 1 (이 글)개관 — 세션 드러머의 조건, 세대 지도
Part 21세대 — 미8군 무대와 재즈에서 온 사람들
Part 32세대 — 1970년대 그룹사운드의 드러머들
Part 43세대 — 1980년대 녹음실 세션의 황금기
Part 54세대 — 1990년대, A급 세션의 시대
Part 65세대 — 2000년대 이후, 학교와 교회와 유학
Part 7유파 분석 — 계보도와 세대별 음반

1. 세션 드러머의 조건 — 관문의 변천#

세션 드러머가 되려면 어딘가에서 실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관문 이 시대마다 달랐고, 관문이 달라지면 드러머의 출신도 달라졌습니다. 이 시리즈의 세대 구분은 태어난 해보다 이 관문을 기준으로 합니다.

flowchart LR
    G1["1950~60년대<br/>미8군 쇼 무대<br/>미군 심사관의 오디션과 등급"]
    G2["1970년대<br/>그룹사운드<br/>밴드의 음반에 이름이 적힘"]
    G3["1980년대<br/>녹음실<br/>편곡가의 사단, 제작사의 연주자군"]
    G4["1990년대<br/>가수의 공연 밴드<br/>'A급 세션' 의 이름값"]
    G5["2000년대 이후<br/>실용음악과·교회·유학<br/>방송 하우스밴드와 세션상"]
    G1 --> G2 --> G3 --> G4 --> G5
    style G1 fill:#FFD700,color:#000000
    style G2 fill:#90EE90,color:#000000
    style G3 fill:#87CEEB,color:#000000
    style G4 fill:#D3D3D3,color:#000000
    style G5 fill:#FFB6C1,color:#000000
  • 미8군 쇼 무대 (Part 2): 1957년 무렵부터 용역업체가 한국 연예인을 미군 클럽에 보냈고, 미군 쪽 심사관의 오디션으로 AA 부터 D 까지 등급과 출연료가 정해졌습니다. 1세대 드러머는 이 심사 앞에서 미국의 스윙과 로큰롤을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 그룹사운드 (Part 3): 1970년대에 처음으로 음반 뒷면에 드러머의 이름이 적힙니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두 드러머, 산울림의 김창익, 사랑과 평화의 김태흥이 그 이름들입니다.
  • 녹음실 (Part 4): 1980년대의 편곡가들은 자기 연주자들을 데리고 다녔고, 잘 나가는 연주자는 반년치 일정이 미리 차 있었습니다. 동아기획 같은 제작사도 자기 연주자군을 가졌습니다.
  • 가수의 공연 밴드 (Part 5): 1990년대에는 드러머가 가수의 무대 맨 뒤를 자기 이름으로 지켰고, 업계는 이들을 ‘A급 세션’ 이라고 불렀습니다.
  • 학교, 교회, 유학 (Part 6): 2000년대 이후 미8군 무대의 자리를 실용음악과와 교회의 찬양팀, 해외 유학이 나눠 가졌습니다. 방송의 하우스밴드와 시상식의 세션상이 그 이름을 화면에 올렸습니다.

2. 세대 지도#

이 시리즈가 다루는 이름들을 세대별로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 생년은 기사의 나이에서 역산한 것이 많아 한 해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세대관문주요 드러머 (생년)
1세대미8군 무대, 재즈 클럽최세진 (1931), 김대환 (1933), 조상국 (1939), 권순근 (1940 무렵), 윤항기 (1943), 명정강 (1940)
2세대그룹사운드김호식·권용남 (엽전들), 문영배 (1952), 김태흥 (?~1983), 배철수 (1953), 주찬권 (1955), 김창익 (1958), 오승동
3세대녹음실이건태 (1953 무렵), 백천남 (1950 무렵), 김희현 (1952 무렵), 안기승 (1954 무렵), 유영수, 배수연, 전태관 (1962)
4세대공연 밴드, A급 세션강수호 (1962), 남궁연 (1967), 장혁 (1968), 김민기 (1968 무렵), 신석철 (1971), 이상민 (1979)
5세대학교·교회·유학김선중, 임용훈 (1983), 김승호 (1985), 최신권 (1986), 장원영 (1992), 신이삭 (1992), 최기웅, 김태현, 김종국, 최현진

2세대와 3세대는 같은 나이대 입니다. 문영배, 김희현, 이건태, 안기승, 주찬권은 모두 1950년대생이고 1970년대 초에 같은 무대에서 시작했습니다. 두 세대를 나누는 것은 이름이 남은 자리가 밴드의 음반인가, 가수의 음반인가입니다. 그래서 Part 3 과 Part 4 는 한 세대를 두 편으로 나눠 읽는 것에 가깝습니다. 언론은 1950년대생인 김희현과 안기승도 관례적으로 “1세대 드러머” 로 부르곤 하는데, 이 시리즈의 “1세대” 는 1930년대에 태어나 미8군 무대에서 출발한 사람들로 한정합니다.

3. 이 시리즈가 쓰는 자료와 쓰지 않는 것#

이 시리즈는 세 종류의 자료에 기댑니다.

종류자료
음반 크레디트음반 데이터베이스 Discogs 에 전사된 LP·CD 의 연주자 크레디트. 유재하 1집은 이 블로그의 앞선 시리즈에서 속지 이미지를 직접 판독한 결과
당사자와 동료의 증언부고 기사, 인터뷰, 회고. 신현준의 김대환 기사(한겨레21), 최이철의 김태흥 회고(채널예스), 김종진의 전태관 평(월간조선), 스포츠한국 「드러머기행」 연재 등
실명 비평과 연구경향신문·한겨레의 명반 해설, 이용우·박성서의 미8군 연구, 김학선의 편곡가 글

반대로 이 시리즈가 하지 않는 것은 이렇습니다.

  • 음원을 듣고 연주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연주의 특징은 당사자와 평론가가 글로 남긴 범위에서만 씁니다.
  • 크레디트가 없는 음반의 드러머를 추정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의 중요한 음반 가운데 상당수(조용필 1·2·3·5·8집, 김현식 2~5집, 봄여름가을겨울 1·2집, 변진섭 1집 등)는 Discogs 에 연주자 크레디트가 전사되어 있지 않고, 이 시리즈는 그 음반들의 드러머를 쓰지 않았습니다.
  • 한 곳에서만 확인되는 서술은 쓰지 않습니다. 특히 나무위키에만 있는 연표와 숫자는 교차 확인이 될 때만 썼습니다.
  • 유파는 사실과 분석을 나눕니다. 사제·추천·계승 관계는 기사에 적힌 것만 사실로 쓰고, 연주 성향이나 출신으로 묶는 유파는 Part 7 에서 “이 시리즈의 분석” 이라고 밝힌 채 그립니다.

이 원칙 때문에 글이 비어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1960년대 가요 음반의 드러머, 1970년대 지구·오아시스 레코드 전속 악단의 드러머, 1980년대 후반 발라드 가수 대부분의 음반 드러머가 그렇습니다. 그 자리는 LP 속지를 직접 보거나 당사자를 만나야 채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이 시리즈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드러머가 실력을 증명해야 했던 관문이 미8군의 심사관에서 실용음악과의 교수로 바뀌는 동안, 그 사이를 거쳐 간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 일” 입니다. 첫 편은 지도를 그렸고, 다음 편부터 그 지도의 첫 칸으로 들어갑니다. 1947년 중학교 3학년 때 데뷔한 재즈 드러머와, 공군 군악대에서 호른을 불다가 조용필의 첫 밴드를 만든 드러머의 이야기입니다.

편주제
Part 1 (이 글)개관
Part 21세대 — 미8군 무대와 재즈
Part 32세대 — 1970년대 그룹사운드
Part 43세대 — 1980년대 녹음실 세션
Part 54세대 — 1990년대
Part 65세대 — 2000년대 이후
Part 7유파 분석

References#

각 편의 끝에 그 편의 자료를 적었습니다. 이 편에서 요약한 사실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