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션 드러머 계보 Part 5: 4세대 — 1990년대, A급 세션의 시대
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Part 4의 1980년대 세션 드러머들이 편곡가의 사단 안에서 일했다면, 1990년대의 드러머들은 개인의 이름 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음반 뒷면의 크레디트가 당연해졌고, 가수의 공연 밴드에 고정 드러머가 생겼으며, 2000년대에는 방송의 하우스밴드가 그 이름들을 화면에 내보냈습니다. 서울경제는 2019년 이 세계의 정점을 “A급 세션” 이라고 부르며 두 사람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기타의 함춘호, 드럼의 강수호 입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 개관 — 세션 드러머의 조건, 세대 지도 |
| Part 2 | 1세대 — 미8군 무대와 재즈 |
| Part 3 | 2세대 — 1970년대 그룹사운드의 드러머들 |
| Part 4 | 3세대 — 1980년대 녹음실 세션의 황금기 |
| Part 5 (이 글) | 4세대 — 1990년대, A급 세션의 시대 |
| Part 6 | 5세대 — 2000년대 이후 |
| Part 7 | 유파 분석 — 계보도와 세대별 음반 |
1. ‘A급 세션’ 의 시장#
서울경제의 2019년 기사는 세션 연주자의 경제를 숫자로 적었습니다. 세션들의 꿈은 업계에서 ‘A급’ 으로 인정받는 것이고, A급이란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럼연주자 강수호처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과 라이브 연주실력을 보유해 인정받은 연주자들” 입니다. A급 세션은 3시간 30분 녹음에 대략 30만~50만 원을 받고, 콘서트와 음반 녹음 의뢰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들어옵니다. 같은 기사는 자우림, 정용화 등과 연주한 드러머 염성길의 말도 전했습니다. 아이돌 세션으로 있을 때 팬들이 세션의 얼굴까지 그려진 텀블러를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에는 음반 뒷면에서나 찾을 수 있던 이름이, 2010년대에는 팬이 얼굴을 그리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1990년대가 있습니다. 서울신문의 2006년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나온 대중음악 음반을 무작위로 뽑아 표지를 펼쳐 보면, 이 사람의 이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2. 강수호 — 무대 맨 뒤의 자리#
2.1 부산에서 LA 로#
강수호는 1962년 12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한국어 위키백과). 서울신문 2006년 기사(대중문화평론가 강헌 집필)에 따르면 그는 부산의 그룹 평균율 에서 출발했고, 1989년 가을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LA 의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에서 드럼을 공부 했습니다. 손톱이 부서지고 물집이 잡혀 스틱에 피가 묻는 일이 다반사였고, 부러뜨린 스틱만 수십 개였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그가 “혜성처럼 나타난 것은 1995년, 도미 6년 만의 귀국 직후” 였습니다.
귀국 이듬해 그는 이적과 김동률의 프로젝트 카니발 2집 의 드럼 세션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고, 1997년 그룹 쿠바 1집의 객원 드러머이기도 했습니다. 기사는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가수 이승철의 공연 무대 제일 뒤쪽을 지키고 서 있던 이가 이승환, 이문세, 심수봉 같은 톱 뮤지션의 공연장에서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육중한 북소리, 예리한 심벌소리가 인상적이라면 이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는 것입니다.
2.2 크레디트와 방송#
한국어 위키백과가 정리한 세션 참여 음반은 M.C the Max 1집(2002), 김건모 10집 『Be Like…』(2005), 이선희 14집 『사랑아…』(2009), 영화 『국가대표』(2009)와 드라마 『공부의 신』(2010)의 OST 등입니다. 방송에서는 MBC 『나는 가수다』 시즌 1(2011~2012)부터 시즌 3(2015)까지 하우스밴드의 드럼을 맡았고, 2021년 10월부터 『복면가왕』의 드럼 세션을 맡고 있습니다. 2015년 배재대 실용음악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었고(뉴스1), 2021년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의 온라인 아카데미 「인필드」에서 베이시스트 이태윤과 함께 멘토를 맡았습니다(서울신문).
서울신문 기사 끝에 그의 말이 있습니다. 심수봉의 공연장 대기실 한구석에서 스틱을 쥔 채 손을 놀리고 있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부적 자질? 연습 없이는 그것도 다 무용지물이라니깐.”
3. 장혁 — 7천 곡의 세션#
장혁은 1968년생입니다. 스포츠한국의 「드러머기행」 연재(2024, 조성진)는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신승훈, 김건모, 이승철, 김현철, 이소라, 박완규, 박상민 등 7천 곡 넘게 세션을 쳤고, 「오 필승 코리아」,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김건모의 「미안해요」, 이소라의 「제발」이 그의 드럼이며, 이선희 밴드의 밴드마스터이고, 성시경의 드럼을 오래 맡았으며, 홍익대 실용음악과 교수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임영웅과 이찬원의 음반 세션과 TV조선 『미스터트롯』 시즌 1 의 하우스밴드 드럼도 맡았습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그는 1980년대 후반 헤비메탈 밴드로 출발했고, 이후 세션으로 독립했습니다. 기사 제목이 요약한 그의 연주관은 두 문장입니다. “드러머는 곧 지휘자, 밴드의 흐름을 리드한다.” 그리고 “어려운 거보다 쉬운 거 잘하는 게 더 어렵다.” 한 음 한 음 세게 치며 큰 음폭의 공간감을 만든다는 것이 기사가 적은 그의 연주 특징입니다.
4. 신석철 — 신중현의 막내아들#
신석철은 1971년생으로, 신중현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입니다. 형은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신윤철이고, 어머니 명정강은 Part 2에서 본 1960년대 여성 밴드 블루리본의 드러머였습니다. 한 집안에 한국 록의 아버지와 최초의 여성 드러머, 그리고 1990년대의 세션 드러머가 있는 셈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는 1990년 서울고를 졸업하고(스쿨밴드 센세이션) 1992년 서울예술전문대학 실용음악과를 졸업했습니다. 1996년부터 이소라, 윤종신, 토이, 성시경, god, 신승훈, 김광진 등 여러 가수의 공연과 녹음에 세션으로 참여했고, 서울전자음악단의 드럼을 맡다가 2010년 탈퇴했습니다. 2020년 멜론뮤직어워드 세션상 드럼 부문 을 받았는데, 같은 해 건반 홍소진, 베이스 최훈, 코러스 김현아, 기타 적재가 함께 받은 이 상은 대중음악 시상식이 세션 연주자에게 이름을 붙여 준 드문 사례입니다. 2025년에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에서 가르치며 싱어송라이터로 첫 싱글을 냈습니다(일간스포츠).
5. 밴드에서 세션으로 — 김민기와 남궁연#
5.1 김민기#
김민기는 1980년대 후반 시나위 의 멤버로 데뷔한 드러머입니다. 뉴시스의 2013년 기사는 “‘시나위’ 멤버로 데뷔한 김민기는 ‘카리스마’, ‘H2O’ 등을 거쳤다” 고 적었고, 그해 베이시스트 신현권(당시 61세), 기타리스트 이근형(47세)과 프로젝트 밴드 S.L.K 를 만들어 EP 『The Original Mindset』을 냈습니다. 기사 기준 45세이니 1968년생 무렵입니다. 헤럴드경제는 같은 음반을 소개하며 그를 “수많은 세션 작업을 맡았던 정상급 드러머” 로 불렀습니다. 메탈 밴드의 드러머가 가요 세션이 되고, 다시 베테랑 연주자들과 밴드를 꾸린 경로입니다.
5.2 남궁연#
남궁연은 1967년생으로,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986년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로 대중음악계에 나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자기 이름을 건 「남궁연 악단」을 이끌었고, 방송인과 공연 연출가로도 활동했습니다. 2009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의 제목은 그의 말을 그대로 땄습니다. “드러머가 제일 무식해 보이고 듣기 좋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 을 “나의 스승이자 음악계의 간디” 라고 불렀습니다. 드러머가 피아니스트를 스승으로 꼽은 사례입니다.
6. 이상민 — 17세의 클럽에서 뉴욕으로#
이상민은 1979년생입니다. 이데일리가 2015년 뉴욕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소개됩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7세부터 국내 클럽에서 드럼을 쳤고, 또래들과 결성한 밴드로 시나위의 오프닝 공연을 맡는 등 이른 나이에 이름을 얻었으며, 2002년 뉴욕으로 가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지만 졸업할 생각은 없었다 는 것입니다. 그저 뉴욕이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막상 가 보니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과 머물며 도전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뉴욕에 살면서도 한 해에 서너 번 한국을 오가며 김동률, 박정현, 이소라, 박효신 의 음반에 참여했고, 2015년 13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이유를 묻자 그는 “그저 드러머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내 음악을 꿈꾸게 됐다” 고 답했습니다.
귀국 뒤 그는 이소라 콘서트 밴드의 드러머가 되었습니다. 2018년 공연의 라인업은 피아노 이승환, 기타 홍준호와 김동민, 드럼 이상민, 베이스 구본암이었습니다(쿠키뉴스). 1990년대 후반의 클럽에서 출발한 그는 이 시리즈에서 4세대와 5세대의 경계에 서 있고, 다음 편에서 볼 젊은 드러머들이 그를 롤모델로 꼽습니다.
7. 1990년대의 밴드 드러머들#
세션과 별개로, 1990년대에 결성된 밴드의 드러머 몇 사람을 적어 둡니다.
| 밴드 | 드러머 | 기록 |
|---|---|---|
| 자우림 | 구태훈 (1972) | 1993년 군 복무 시절 김윤아를 만나 풀카운트에서 함께 활동. 이벤트 회사에 취직했다가 1996년 김윤아·김진만·이선규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밴드로 돌아옴 (한국어 위키백과) |
| 부활 | 채제민 | 부활의 드러머 |
| 시나위 | 김민기 → 이후 여러 드러머 | 5절 |
1980년대의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이 그랬듯, 밴드 드러머와 세션 드러머의 경계는 이 세대에서도 흐립니다. 장혁과 김민기, 남궁연이 모두 밴드에서 세션으로 갔습니다.
8. 4세대 정리#
| 드러머 | 생년 | 출발 | 주된 자리 | 확인된 기록 |
|---|---|---|---|---|
| 강수호 | 1962 | 부산 평균율 → LA MI (1989~95) | 이승철·이승환·이문세·심수봉 공연, 『나는 가수다』 | 카니발 2집 (1996), 김건모 10집 (2005), 이선희 14집 (2009) |
| 장혁 | 1968 | 헤비메탈 밴드 | 신승훈·김건모·성시경 세션, 이선희 밴드마스터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미안해요」, 「제발」 |
| 신석철 | 1971 | 서울예전 (1992) | 이소라·윤종신·토이 세션, 서울전자음악단 | 2020 멜론뮤직어워드 세션상 |
| 김민기 | 1968 무렵 | 시나위 | 세션, S.L.K | 『The Original Mindset』 (2013) |
| 남궁연 | 1967 | 백두산 (1986) | 남궁연 악단, 방송 | 오마이뉴스 2009 인터뷰 |
| 이상민 | 1979 | 17세 클럽 | 뉴욕 13년, 김동률·박정현·이소라 음반 | 2018 이소라 밴드 |
마치며#
4세대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세션” 입니다. 1980년대의 드러머가 편곡가의 사단 안에 있었다면, 1990년대의 드러머는 가수의 무대 맨 뒤를 자기 이름으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에서 두 가지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강수호가 간 유학 의 길과, 신석철이 간 실용음악과 의 길입니다. 다음 편의 드러머들은 대부분 이 두 길 가운데 하나를 걸었고, 거기에 세 번째 길인 교회 가 더해집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 개관 |
| Part 2 | 1세대 — 미8군 무대와 재즈 |
| Part 3 | 2세대 — 1970년대 그룹사운드 |
| Part 4 | 3세대 — 1980년대 녹음실 세션 |
| Part 5 (이 글) | 4세대 — 1990년대 |
| Part 6 | 5세대 — 2000년대 이후 |
| Part 7 | 유파 분석 |
References#
- 서울경제, 「[문화계 뒷담화] ‘A급’ 세션 맨을 향해」 (2019)
- 서울신문, 강헌, 강수호 기사 (2006-11-29) · 강수호 (드러머) — 위키백과 · 뉴스1, 배재대 초빙교수 임용 (2015) · 서울신문, 「국가대표 세션맨 이태윤, 강수호의 음악 멘토링」 (2021-04-30)
- 스포츠한국, 조성진, 「[드러머기행] 장혁, 성시경 드럼 및 이선희 밴드마스터」 (2024)
- 신석철 — 위키백과 · 멜론 뮤직 어워드 — 위키백과 (2020년 세션상) · 일간스포츠, 신석철 싱글 발매 기사 (2025-04-25)
- 뉴시스, S.L.K 결성 기사 (2013-08-04) · 헤럴드경제 (2013-07-31)
- 남궁연 — 위키백과 · 오마이뉴스, 「드러머 남궁연 “드러머가 제일 무식해 보이고 듣기 좋다”」 (2009)
- 이데일리, 「“창작자로 커가겠다”…9년만에 韓복귀하는 드러머 이상민」 (2015-04) · 쿠키뉴스, 2018 이소라 콘서트 기사 (2018)
- 구태훈 (드러머)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