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Part 1에서 앨범의 크레디트를 한 장으로 모았습니다. 이번 편부터는 곡을 하나씩 듣습니다. 첫 두 곡은 앨범의 서사에서 사랑의 시작 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두 곡의 편성은 정반대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유재하의 기타가 앞에 선 밴드 곡이고, 「그대 내 품에」는 기타가 아예 없는 플루트와 현악의 발라드입니다.

편주제
Part 1앨범이 만들어진 방법
Part 2 (이 글)「우리들의 사랑」·「그대 내 품에」
Part 3「텅빈 오늘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Part 4「Minuet」·「가리워진 길」
Part 5「지난 날」·「우울한 편지」
Part 6「사랑하기 때문에」
Part 7유산, 그리고 1년 전 리뷰와의 비교

1. 우리들의 사랑 (A1, 4:35)#

1.1 크레디트#

악기연주자
피아노유재하
신시사이저유재하
기타유재하
베이스조원익
드럼유영수

현악도 관악도 없습니다. 노래와 건반, 기타가 모두 유재하이고, 리듬 섹션만 세션 연주자입니다. 앨범에서 유재하 본인의 연주 비중이 가장 높은 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1.2 조용필에게 건넨 두 번째 악보#

이 노래에는 앨범보다 먼저 쓰인 악보가 남아 있습니다. 위대한 탄생 시절 밴드 마스터였던 베이시스트 송홍섭은 2013년 네이버뮤직 특집에서, 유재하가 자기 집으로 그를 데려가 조용필이 부를 수 있도록 소개해 달라며 두 곡을 내밀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하나가 「우리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조용필은 「사랑하기 때문에」만 7집에 실었고, 「우리들의 사랑」은 유재하 자신의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송홍섭이 보관해 온 그 친필 악보는 2013년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송홍섭의 기억으로는 연인과 함께 극장을 다니던 즐거운 시절에 쓴 곡으로, 유재하가 악보를 그 자리에서 뜯어 건넸다고 합니다. 악보의 가사는 앨범과 조금 다릅니다.

친필 악보앨범
보고픈 마음 달랠 수 없어 / 제가 먼저 전화했대요보고픈 마음 가눌 수 없어 / 큰 맘먹고 전화했대요

“제가 먼저” 가 “큰 맘먹고” 로 바뀐 것처럼, 같은 장면을 두고 표현을 다듬은 흔적이 악보와 앨범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1.3 기타 — 두 대의 유니즌#

이 곡의 연주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기타 입니다.

  • IZM 의 지운은 이 곡의 감각이 브리지와 끝부분의 자유로운 기타 애드리브 에서 잘 드러난다고 썼습니다.
  • 오마이뉴스의 김상화는 그 애드리브가 오버더빙1 한 일렉트릭 기타 두 대의 유니즌2 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두 대의 기타가 같은 선율을 겹쳐 연주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텅빈 오늘밤」의 기타 솔로와 함께 이 연주를 “1980년대 국내 가요 녹음에서도 단연 발군” 이라고 평했습니다.
  • 텐아시아의 권석정은 이 곡에 흐르는 기타 솔로를 “퓨전 스타일” 로 묘사하며 유재하의 연주라고 밝혔습니다.

유재하는 피아노 전공자로 알려져 있지만,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는 먼저 기타리스트였습니다. 김종진은 1983년 무렵 정원영의 집에서 처음 만난 유재하와 마주 앉아 래리 칼턴의 「Room 335」 같은 곡을 함께 따라 쳤다고 회고합니다. 다음 날까지 곡을 카피해 오자고 하면 유재하는 늘 제대로 해 왔고, 자기보다 기타를 더 능숙하게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장기호는 경희대 밴드 연습실에 처음 나타난 유재하가 캔자스의 「Carry On Wayward Son」 리프를 치기 시작했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의 기타는 그 방에서 쌓인 퓨전 기타 어법이 앨범에 남은 자리입니다.

1.4 리듬과 시대의 소리#

가수 한동준은 유재하의 음악에서 받은 충격을 이야기하며 이 곡과 「텅빈 오늘밤」에서 들리는 “리듬에 대한 시도” 가 기존 가요와 달랐다고 말했습니다(Mnet 「레전드 100」). 2018년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이 앨범을 1위로 소개한 박은석은 반대쪽에서 같은 지점을 짚었습니다. 「우리들의 사랑」과 「텅빈 오늘밤」이 앨범에서 “세월의 그늘이 가장 짙은” 곡이라는 것입니다. 당대의 유행을 가장 잘 반영한 사운드였기 때문입니다.

두 평가는 모순되지 않습니다. 1987년의 귀에는 새로웠던 리듬과 신시사이저가, 40년 가까이 지난 귀에는 가장 1980년대답게 들린다는 뜻입니다. 지운은 이 곡이 “경쾌한 분위기로 첫 포문을 여는” 노래이면서도 유재하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함께 배어난다고 썼습니다. 밝은 밴드 사운드와 담담한 목소리의 대비가 앨범 전체의 첫인상이 됩니다.

2. 그대 내 품에 (A2, 5:56)#

2.1 크레디트#

악기연주자
피아노유재하
베이스조원익
드럼유영수
플루트김애란
현악“친구들” — 바이올린 10, 비올라 3, 첼로 2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없습니다. 바로 앞의 「우리들의 사랑」에서 유재하가 맡았던 신시사이저와 기타를 모두 내려놓고, 그 자리를 플루트와 현악 합주로 채운 편성입니다. 피아노와 리듬 섹션이 바닥을 깔고, 클래식 악기가 그 위를 덮습니다.

IZM 의 지운은 이 곡과 「사랑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의 편곡을 “풍요로운 신디사이저 위주” 라고 묶어 표현했습니다. 원판 크레디트로는 이 곡에 신시사이저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현악 합주의 두터운 소리를 신시사이저로 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크레디트만 보면 이 곡의 “풍요로움” 은 열다섯 명의 현악 연주자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2.2 이문세가 먼저 부른 노래#

「그대 내 품에」가 처음 음반에 실린 것은 1983년 이문세의 1집 입니다. 서라벌레코드에서 나온 이 앨범의 A면 다섯째 곡이었습니다. 다만 그 LP 뒷면에는 이 곡의 작사·작곡이 이문세로 적혀 있습니다. 유재하의 곡이라는 것은 친형의 증언과 이후의 기록으로 전해집니다. 친형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유재하가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 무렵 에 만들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이 노래의 사연은 앨범 전체의 사연과 겹칩니다. 문화일보는 앨범의 노래들이 유재하가 사랑했던 한 여인과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고 쓰면서, 그녀를 쫓아다닐 무렵 쓴 곡이 「그대 내 품에」였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일보는 2014년 기사에서 두 사람이 음대 연합 동아리에서 만났고, 유재하가 노래로 고백했다가 완곡하게 거절당한 뒤에도 2년 동안 고백을 이어 갔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 노래의 플루트를 불었습니다. 플루트의 김애란은 당시 유재하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애하던 시절에 쓴 노래를, 몇 년 뒤 그 노래를 받은 사람이 직접 연주해 녹음한 것입니다.

2.3 가사 — 별과 꽃가루#

작곡가 김형석은 2017년 한국일보에 쓴 회고에서 유재하의 가사가 남달랐다며 이 곡의 한 구절을 꼽았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꽃가루 되어 / 그대 꽃 위에 앉고 싶어라.” 한겨레21 도 1997년 기사에서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으로 시작하는 같은 대목을 인용하며 그의 시적인 노랫말을 소개했습니다. 별 헤는 밤과 꽃가루 같은 이미지가 이어지는 이 가사는, 당시 발라드의 직설적인 고백과 다른 결을 가졌습니다.

2.4 모던 발라드의 견본#

박은석은 2018년 명반 100 해설에서 이 곡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사랑하기 때문에」와 함께 “모던한 발라드의 어법을 완성형으로 제시한” 노래로 꼽았습니다. 김형석이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받은 인상, “오케스트라 연주에 팝적인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메이저 발라드” 라는 표현도 이 곡에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로 된 팝 발라드의 골격 위에, 클래식 작곡을 공부한 사람이 직접 쓴 현악과 플루트가 얹힌 구조입니다.

2.5 이후의 「그대 내 품에」#

이 노래는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불렸습니다. 김현식은 1988년 4집에 이 곡을 추모의 의미로 실었습니다. 이 4집은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편곡을,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입니다. 송홍섭은 4집을 준비하며 유재하를 다시 만났을 때, 유재하와 김현식이 매일 함께 술을 마시며 지냈고 유재하가 노래를 만들어 김현식에게 선물했다고 회고합니다. 그 김현식도 1990년 11월 1일, 유재하와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치며#

첫 두 곡은 같은 “사랑의 시작” 을 정반대의 편성으로 노래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유재하 혼자 건반과 기타를 겹겹이 쌓은 밴드 곡이고, 「그대 내 품에」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친구들의 플루트와 현악에 맡긴 발라드입니다. 앨범의 문을 여는 두 곡이 곧 앨범의 두 얼굴, 팝 연주자 유재하와 클래식 편곡자 유재하 를 차례로 보여 주는 셈입니다.

다음 편은 이별의 두 곡입니다. 기타 솔로가 있는 「텅빈 오늘밤」, 그리고 피아노 대신 신시사이저 하나로 리듬 섹션 위를 채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입니다.

편주제
Part 1앨범이 만들어진 방법
Part 2 (이 글)「우리들의 사랑」·「그대 내 품에」
Part 3「텅빈 오늘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Part 4「Minuet」·「가리워진 길」
Part 5「지난 날」·「우울한 편지」
Part 6「사랑하기 때문에」
Part 7유산, 그리고 1년 전 리뷰와의 비교

References#



  1. 오버더빙(overdubbing): 이미 녹음된 트랙 위에 새로운 연주나 노래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악기를 차례로 녹음하거나, 같은 악기를 여러 번 겹칠 때 씁니다. ↩︎

  2. 유니즌(unison): 둘 이상의 악기나 목소리가 같은 선율을 같은 음높이(또는 옥타브 차이)로 함께 연주하는 것입니다. 같은 기타 솔로를 두 번 녹음해 겹치면 소리가 더 두텁고 선명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