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앨범의 서사는 세 번째 곡에서 이별로 넘어갑니다. 「텅빈 오늘밤」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둘 다 현악도 관악도 없는 곡입니다. 앞의 「그대 내 품에」가 친구들의 플루트와 현악에 기댔다면, 이 두 곡은 다시 유재하의 건반과 기타, 그리고 드러머 안기승 의 리듬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두 곡이 이별을 다루는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빠르게 밀어붙이고, 다른 하나는 안으로 가라앉습니다.

편주제
Part 1앨범이 만들어진 방법
Part 2「우리들의 사랑」·「그대 내 품에」
Part 3 (이 글)「텅빈 오늘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Part 4「Minuet」·「가리워진 길」
Part 5「지난 날」·「우울한 편지」
Part 6「사랑하기 때문에」
Part 7유산, 그리고 1년 전 리뷰와의 비교

1. 텅빈 오늘밤 (A3, 4:58)#

1.1 크레디트#

악기연주자
피아노유재하
신시사이저유재하
기타유재하
베이스조원익
드럼안기승

편성은 첫 곡 「우리들의 사랑」과 같습니다. 다른 것은 드러머입니다. 유영수 대신 안기승이 앉았고, 안기승은 이어지는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과 B면의 「우울한 편지」도 맡았습니다.

1.2 빠른 이별#

IZM 의 지운은 유재하의 “흐느적거리는 목소리” 가 「텅빈 오늘밤」이나 「지난 날」 같은 빠른 템포의 곡에서도 슬픔을 자아낸다 고 썼습니다. 그가 예로 든 가사는 이 곡의 첫머리입니다. “싸늘한 눈빛으로 / 한마디 말도 없이 / 그대는 떠나가고.” 떠나는 장면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가사를 빠른 밴드 사운드 위에 얹은 곡입니다. 이별 노래가 느려야 한다는 당시의 관습과 다른 선택이었습니다.

1.3 토토의 그림자, 그리고 기타 솔로#

이 곡의 편곡에 대해 평론가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이름은 미국의 록 밴드 토토(Toto) 입니다.

  • 오마이뉴스의 김상화는 이 곡을 토토 같은 분위기의 팝 록 으로 분류하고, 곡 중간을 장식하는 기타 솔로 를 「우리들의 사랑」의 기타 유니즌과 함께 1980년대 국내 가요 녹음에서 “단연 발군” 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기타도 유재하의 연주입니다.
  • 박은석은 2018년 명반 100 해설에서 이 곡을 따로 추천곡으로 골랐습니다. 그는 이 곡이 「우리들의 사랑」과 함께 앨범에서 “세월의 그늘이 가장 짙은 작품” 이고, 그 이유가 전적으로 뉴웨이브1 풍의 사운드 프로덕션 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박은석의 글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이 곡을 들으면 유재하의 세련된 편곡이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매그넘 오퍼스” 를 상상하게 된다고 썼습니다. 그가 계속 음악을 했다면 “재즈의 농도를 희석한 스틸리 댄 혹은 클래식의 터치를 가미한 토토” 정도의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재하가 이 노래로 브루스 혼스비 앤 더 레인지 에까지 다가갔다고 덧붙였습니다. 피아노가 이끄는 미국식 팝 록의 세련됨에 1987년의 한국 가요가 닿아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1.4 그가 듣던 음악#

이 곡의 소리는 유재하가 즐겨 듣던 음악과 겹칩니다. 장기호는 밤새 함께 음악 이야기를 하던 시절 유재하가 퀸시 존스, 마이크 스턴, 제임스 잉그램, 마이클 프랭크스, 필 콜린스에 관심을 가졌다고 회고합니다. 김상화는 유재하가 제임스 잉그램, 배리 매닐로, 필 콜린스 같은 팝 스타들의 곡에서 영향을 받은 세련된 화성 을 썼고, 그것이 그의 곡이 지금도 촌스럽게 들리지 않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가수 한동준이 「우리들의 사랑」과 함께 이 곡에서 들은 “리듬에 대한 시도” 도 그런 팝과 퓨전의 감각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2.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A4, 4:52)#

2.1 크레디트#

악기연주자
신시사이저유재하
베이스조원익
드럼안기승

이 곡의 크레디트에는 피아노가 없습니다. 기타도 없습니다. 유재하는 노래와 신시사이저만 맡았습니다. 노래가 있는 여덟 곡 가운데 피아노가 적혀 있지 않은 곡은 이 곡과 「사랑하기 때문에」(원판 기준) 둘뿐입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한 작곡가가 자기 앨범에서 가장 내성적인 노래를 피아노 없이 신시사이저 하나로 감쌌다는 점이 이 곡의 편성에서 가장 눈에 띕니다.

2.2 “사실상 앨범 최고의 곡”#

IZM 의 지운은 이 곡을 “사실상 앨범 최고의 곡” 이라고 불렀고, 그 편곡을 “풍요로운 신디사이저 위주” 라고 표현했습니다. 크레디트와 정확히 들어맞는 묘사입니다. 박은석은 이 곡을 「그대 내 품에」, 「사랑하기 때문에」와 함께 모던 발라드의 어법을 완성형으로 제시한 노래로 꼽았습니다. 김상화는 유재하의 세련된 화성을 보여 주는 예로 이 곡의 엔딩 처리 를 들었습니다.

세 평론가의 평가가 모이는 지점은 하나입니다. 피아노와 현악이라는 “클래식 발라드” 의 도구를 쓰지 않고도, 신시사이저와 리듬 섹션만으로 발라드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지운이 이 곡의 편곡에서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다채로운 색의 전조” 를 느꼈다고 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2.3 ‘내 모습’ 과 ‘네 모습’#

이 곡의 제목에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습니다. 지운에 따르면 당시 음반 사전 심의를 맡던 공연윤리위원회(공윤)2 가 제목의 ‘내 모습’ 을 ‘네 모습’ 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재하는 바꾸지 않았고, 제목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 일화는 가사의 주제와 묘하게 겹칩니다. 이 노래는 떠난 사람이 아니라 떠나보낸 뒤의 자기 자신 을 들여다보는 노래입니다. 이별 노래라면 마땅히 ‘너’ 를 노래해야 한다는 관습에 맞추라는 요구를, 노래의 제목 자체가 거절한 셈입니다.

2.4 유일한 TV 무대#

유재하가 TV 에 나온 것은 KBS 『젊음의 행진』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때 부른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이 갈립니다.

기록출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한국일보 2014 (출연 영상 링크와 함께)
「지난 날」문화일보 2003

출연 영상이 남아 있다고 소개한 한국일보 쪽이 더 구체적이지만, 이 글에서는 두 기록을 함께 적어 둡니다. 가수 한영애는 출연이 정해졌을 때 유재하가 전화를 걸어 “누나! 나 드디어 TV에 나가! 난 대중음악가가 될 거야!” 라며 기뻐했다고 회고합니다. 한영애는 그 말이 단지 유명해지겠다는 뜻이 아니라, 음악으로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치며#

A면의 이별 두 곡은 같은 편성 재료로 정반대의 결과를 냅니다. 「텅빈 오늘밤」은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기타를 모두 써서 빠르게 밀어붙이는 팝 록이고,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그 가운데 신시사이저 하나만 남겨 안으로 가라앉는 발라드입니다. 두 곡 모두 드럼은 안기승, 베이스는 조원익입니다. 리듬 섹션이 같아도 편곡자가 무엇을 덜어내느냐에 따라 곡의 온도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다음 편은 A면과 B면이 맞닿는 두 곡입니다. 현악 3중주만으로 된 「Minuet」, 그리고 목관 5중주와 현악 4중주, 피아노로만 짠 「가리워진 길」입니다. 둘 다 드럼도 베이스도 없는 곡입니다.

편주제
Part 1앨범이 만들어진 방법
Part 2「우리들의 사랑」·「그대 내 품에」
Part 3 (이 글)「텅빈 오늘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Part 4「Minuet」·「가리워진 길」
Part 5「지난 날」·「우울한 편지」
Part 6「사랑하기 때문에」
Part 7유산, 그리고 1년 전 리뷰와의 비교

References#



  1. 뉴웨이브(new wave): 1970년대 말~1980년대에 펑크 이후 등장한 록·팝의 흐름입니다.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쓰고, 날카롭게 다듬은 드럼과 반짝이는 건반 음색이 특징입니다. 당대에는 가장 새로운 소리였지만, 지금은 1980년대를 가장 뚜렷하게 떠올리게 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

  2. 공연윤리위원회(공윤): 1976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로 세워져 1986년 이름을 바꾸고, 1997년 10월 폐지될 때까지 영화·음반·공연물의 사전 심의를 맡았던 기구입니다. 가사와 제목을 고치게 하거나 발매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