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앨범의 마지막 곡은 앨범의 이름이 된 곡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가 가장 먼저 남에게 건넨 곡 가운데 하나였고, 가장 마지막에 자기 목소리로 되찾은 곡이었습니다. Part 1에서 보았듯 이 곡은 앨범에서 가장 큰 편성 으로 녹음된 곡이기도 합니다. 리듬 섹션과 목관, 금관, 현악이 처음으로 모두 함께 연주합니다.

편주제
Part 1앨범이 만들어진 방법
Part 2「우리들의 사랑」·「그대 내 품에」
Part 3「텅빈 오늘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Part 4「Minuet」·「가리워진 길」
Part 5「지난 날」·「우울한 편지」
Part 6 (이 글)「사랑하기 때문에」
Part 7유산, 그리고 1년 전 리뷰와의 비교

1. 사랑하기 때문에 (B4, 6:15)#

1.1 크레디트#

악기연주자
기타유재하
베이스조원익
드럼유영수
플루트김애란
클라리넷이광훈
호른이지원
현악“친구들” — 바이올린 10, 비올라 3, 첼로 2
피아노원판 속지에는 없음. 2012년 재발매 부클릿에는 유재하

앨범에서 가장 긴 곡이고, 가장 많은 연주자가 이름을 올린 곡입니다. 「그대 내 품에」와 「우울한 편지」의 플루트·현악 편성에 클라리넷과 호른 이 더해졌습니다. 클라리넷과 호른은 「가리워진 길」의 목관 5중주에서 온 두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큰 편성의 한가운데에 유재하의 기타 가 있습니다.

피아노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립니다. 1987년 원판 속지의 이 곡 칸에는 피아노가 적혀 있지 않고, 2012년 재발매 부클릿에는 유재하의 피아노가 적혀 있습니다. 이 글은 두 기록을 모두 남겨 둡니다.

1.2 조용필에게 건넨 첫 번째 악보#

Part 2에서 유재하가 위대한 탄생의 밴드 마스터 송홍섭에게 두 곡을 건넸다고 했습니다. 조용필이 고른 것이 이 곡입니다. 송홍섭은 이 곡을 처음 받은 조용필의 반응을 두 번에 걸쳐 회고했습니다.

  • 조용필은 처음에 이 곡을 “상당히 낯설어했다” 고 합니다(네이버뮤직 2014 특집에 인용된 회고).
  • 그러면서도 “당시에는 메이저 장조의 발라드가 거의 없던 시절이기에 생소한 노래들이지만 꽤 흥미를 가졌다” 고 합니다(2013 특집).

Mnet 「레전드 100」의 소승근은 같은 증언을 옮기며 이 곡을 당시로서는 생경했던 장조와 단조가 융합된 발라드 로 소개했습니다. 송홍섭의 말대로 당시에는 장조 발라드가 거의 없었습니다. 장조의 밝은 화성 위에 단조의 그늘을 섞는 방식은 조용필에게도 새로웠던 것입니다.

조용필은 이 곡을 1985년 4월 7집 의 B면 둘째 곡으로 실었습니다. Discogs 의 기록에 따르면 그보다 앞서 1984년 11월 일본 CBS/Sony 에서 나온 조용필의 한국어 앨범 『아시아의 불꽃』에도 이 곡이 실렸습니다. 7집은 「여행을 떠나요」, 「그대여」 같은 곡이 큰 인기를 얻은 앨범이었지만, 오마이뉴스의 김상화에 따르면 「사랑하기 때문에」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3 “정서가 다르다”#

유재하는 조용필의 판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송홍섭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전합니다. “재하는 본인의 정서와 조용필이 부른 노래의 정서가 많이 달라서 아쉬워했고 이후 본인 앨범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부르게 되었다.”

두 판본은 이렇게 다릅니다.

조용필 7집 (1985)유재하 (1987)
재생 시간4:126:15
편곡조용필·송홍섭·이범희 (앨범 편곡진)유재하
건반김광민 (앨범 크레디트)—
관현악—플루트·클라리넷·호른·현악 합주

(조용필 판의 편곡과 건반은 7집 앨범 전체의 크레디트입니다. 곡 단위 크레디트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박은석은 2018년 해설에서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지금 들으면 무미한 범작처럼 느껴진다며, 그것이야말로 작곡가 유재하가 다른 작곡가들과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한 반증이라고 썼습니다. 조용필의 노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 곡이 원래 유재하의 편곡을 전제로 쓰인 곡 이었다는 뜻입니다. 2분 넘게 길어진 재생 시간에는 그가 원했던 “방향” 이 들어 있습니다. 관현악의 전주와 간주, 그리고 기타 솔로입니다.

1.4 기타 솔로 — “니가 쳐라”#

이 곡의 기타 솔로에는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녹음실 일화가 얽혀 있습니다. 원래 이 솔로를 칠 사람은 유재하가 아니라 기타리스트 김종진 이었습니다. 2013년 네이버뮤직 특집에 실린 김종진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솔로를 부탁받고 서울스튜디오에 가서 연주를 하다가 왠지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재하에게 “나 이거 못 치겠다. 그냥 니가 쳐라” 라고 했습니다. 유재하는 계속 해 달라고 했지만 김종진은 “니가 치는게 멋있는 거야” 라며 물러섰고, 솔로는 결국 유재하가 연주했습니다.

이 일화는 전하는 사람에 따라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오마이뉴스의 김상화는 유재하가 김종진의 연주에 만족하지 못해 직접 쳤다고 썼습니다. 이 글은 당사자인 김종진의 회고를 따릅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습니다. 앨범에서 기타가 들어간 네 곡의 기타는 모두 유재하의 연주가 되었습니다.

김종진이 물러선 이유는 회고의 다른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유재하를 처음 만난 1983년 무렵부터 “재하는 항상 카피를 제대로 해왔고 나보다 기타를 능숙하게 연주했다” 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일화 바로 뒤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앨범의 모든 소리는 모두 재하의 소리였다.”

1.5 오케스트레이션#

김종진은 같은 회고에서 유재하의 천재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오케스트레이션 을 꼽았습니다. 그의 오케스트라는 “화법이 분명 달랐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유재하의 오케스트라는 냇 킹 콜, 웨스 몽고메리, 그리고 1970년대 오케스트라 팝 을 연구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재즈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와 가수 냇 킹 콜은 둘 다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편곡으로도 잘 알려진 음악가입니다.

이 곡의 편성은 그 계보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리듬 섹션과 일렉트릭 기타라는 팝·재즈의 골격 위에, 현악 합주와 목관, 호른이 넓게 깔립니다. 클래식 작곡을 공부한 사람이 미국 오케스트라 팝의 편곡 어법을 1987년의 한국 발라드로 옮겨 온 것입니다.

1.6 화성 — 부속화음과 모달 인터체인지#

이 곡의 화성을 다룬 학술 연구도 있습니다. 중앙대 이윤상의 2017년 석사 논문은 이 곡의 리메이크들을 원곡과 비교 분석했는데, 초록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원곡에서 화성적으로 가장 강조된 세컨더리 도미넌트1와 모달 인터체인지2 는 리메이크마다 리듬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화성 기법은 앞에서 본 평가들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세컨더리 도미넌트는 조성 안에서 잠깐씩 다른 화음으로 끌려가는 긴장을 만들고, 모달 인터체인지는 장조의 곡에 같은 으뜸음의 단조 화음을 빌려 와 그늘을 드리웁니다. 소승근이 말한 “장조와 단조가 융합된 발라드”, 작곡가 김형석이 유재하의 곡에서 느꼈다는 “단어 사이사이 자유롭게 코드를 변형하고 독특한 변조를 선보였지만, 과하지 않게 아름다운 소리” 가 이 기법들을 가리킵니다. MBC 라디오의 조정선 PD 는 이 앨범을 “다양하고 어려운 화성을 대중음악에 소화해낸 최초의 작품” 이라고 불렀습니다.

1.7 가사 — 오해에서 다짐으로#

노래는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내 도착하는 곳은 짝사랑의 아픔이 아니라 재회와 다짐 입니다. 김형석이 이 곡의 가사로 꼽은 구절이 그 다짐입니다.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김형석은 이 구절을 「그대 내 품에」의 시적인 표현과 대비되는 구어체 가사 의 예로 들며, 두 쪽 모두에서 짙은 서정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친형은 이 곡을 유재하가 스물두세 살 무렵 에 만들었다고 기억합니다. 문화일보는 앨범의 노래들을 한 사랑의 연대기로 읽으며, 이 곡을 사랑이 맺어진 순간에 쓴 곡으로 소개했습니다. 구애하던 시절의 「그대 내 품에」, 처음 받은 편지의 「우울한 편지」를 지나, 앨범은 이 다짐으로 끝납니다.

1.8 무덤의 악보#

이 곡은 지금 유재하의 무덤 앞에도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공원묘원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는 「사랑하기 때문에」의 악보를 새긴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문화일보는 2003년 기사에서 사소한 이야기라며 한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그 악보의 음표 가운데 두 개가 틀렸다 는 것입니다.

2. 진짜 마지막 곡 — 「정화의 노래」와 「Vincent」#

엄밀히 말하면 1987년 원판 LP 의 마지막 곡은 「사랑하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B면 다섯째 칸에는 당시 모든 대중음반이 의무적으로 실어야 했던 건전가요 「정화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유재하가 쓰지도 부르지도 않은 곡입니다. 이 곡은 1988년 재발매판부터 빠졌습니다.

2014년 원본 마스터로 다시 찍은 LP 에는 그 자리에 다른 곡이 들어갔습니다. 유재하가 가족들을 위해 집의 녹음기로 녹음한 돈 매클린의 「Vincent」입니다. 2014년 리마스터 특집의 설명에 따르면, 제작진은 전곡을 혼자 만든 싱어송라이터 앨범에 다른 사람의 곡을 넣는 것이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가족 대표가 팬들을 위한 선물로 생각하자고 해서 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원판의 사족이던 건전가요를 대체하는 트랙 으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판매용 음반에 싣기에 모자란 음질이지만, 노이즈를 감수하더라도 청년 유재하의 목소리 질감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고 합니다.

마치며#

「사랑하기 때문에」는 이 앨범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한 곡으로 보여 줍니다. 조용필에게 건넨 이 곡이 “정서가 다르다” 는 아쉬움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유재하는 자기 노래를 자기 편곡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되찾은 곡은 2분 넘게 길어졌고, 그 안에 목관과 호른, 현악 합주, 그리고 친구가 “니가 쳐라” 하고 넘긴 기타 솔로가 들어갔습니다.

다음 편은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그가 떠난 뒤의 이야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와 두 장의 헌정 앨범, 명반 순위와 후배들의 말을 정리하고, 1년 전 이 블로그에 실린 리뷰를 이번 시리즈의 자료와 하나씩 대조합니다.

편주제
Part 1앨범이 만들어진 방법
Part 2「우리들의 사랑」·「그대 내 품에」
Part 3「텅빈 오늘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Part 4「Minuet」·「가리워진 길」
Part 5「지난 날」·「우울한 편지」
Part 6 (이 글)「사랑하기 때문에」
Part 7유산, 그리고 1년 전 리뷰와의 비교

References#



  1. 세컨더리 도미넌트(secondary dominant): 으뜸화음이 아닌 다른 화음을 잠깐 으뜸처럼 여기고, 그 화음으로 끌어당기는 딸림화음을 앞에 놓는 기법입니다. 부속화음이라고도 합니다. 조를 바꾸지 않고도 진행에 순간적인 긴장과 색채를 더합니다. ↩︎

  2. 모달 인터체인지(modal interchange): 같은 으뜸음을 가진 다른 선법(예: 장조에 대해 단조)에서 화음을 빌려 오는 기법입니다. 차용화음이라고도 합니다. 장조의 곡에 단조의 화음 하나가 들어오면 밝은 진행에 갑자기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