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션 베이시스트 계보 Part 1: 개관 — 세션 베이시스트의 조건과 세 세대의 지도
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들어가며#
이 블로그는 어제 한국 세션 드러머 계보 7부작을 올렸습니다. 드럼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세대별로 적는 일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옆자리, 베이스 로 옮겨 갑니다.
베이스는 드럼보다 더 이름이 남지 않는 악기입니다. 1978년 사랑과 평화 1집의 크레디트에는 밴드의 베이시스트 이남이 대신 외국인 세션 ‘사르보’ 의 이름이 적혀 있고, 1980년대의 수많은 음반에는 베이스 크레디트 자체가 없습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은 2024년 프레시안 글에서 “과거엔 앨범 크레디트에 이름 한 줄 올리기가 어려웠고, 그마저도 틀리게 표기되는 일이 잦았다” 고 썼습니다. 그런데도 베이시스트들은 서로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2024년 세션 베이시스트 최훈은 “어릴 때 신현권, 이태윤, 송홍섭, 조동익 등을 많이 카피했습니다. 대한민국 베이스 세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분들”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렇게 연주자들의 입과 음반의 뒷면에 남은 이름들을 모아, 다섯 편에 걸쳐 세대별로 적습니다.
주제는 세션 베이시스트의 계보 입니다. 가수의 음반과 공연에서 베이스를 친 사람들이 어떤 무대에서 왔고, 누구의 연주를 듣고 배웠거나 누구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앉았으며, 어떤 음반에 이름을 남겼는지를 세대별로 정리합니다. 밴드의 베이시스트도 함께 다룹니다.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들국화, 어떤날의 베이시스트가 곧 녹음실의 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션 녹음에 이름을 남긴 재즈 베이시스트와, 베이스에서 편곡·프로듀서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도 포함합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이 글) | 개관 — 세션 베이시스트의 조건, 세대 지도 |
| Part 2 | 1세대 — 1970~1980년대, 그룹사운드에서 녹음실로 |
| Part 3 | 2세대 — 1990~2000년대, 삐삐 다섯 개의 시대 |
| Part 4 | 3세대 — 2010년대 이후, 학교와 교회와 세션상 |
| Part 5 | 유파 분석 — 계보도, 드럼–베이스 짝, 세대별 음반 |
1. 세션 베이시스트의 조건 — 당사자들의 말#
드러머 시리즈는 “관문의 변천” 으로 시작했습니다. 베이스 시리즈는 조금 다르게, 베이시스트들이 스스로 말한 세션의 조건 으로 시작합니다. 베이스는 드럼과 달리 그 조건을 말로 남긴 사람이 많습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의 「기타신공」 연재, 채널예스의 김현성 칼럼, OSEN 의 인디살롱 인터뷰가 그 말들을 받아 적었습니다. 네 가지로 추립니다.
악보와 타이밍#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 이태윤은 2024년 인터뷰에서 세션의 첫 조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보를 잘 봐야 합니다. 코드만 있는 악보는 물론 라인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는 악보도 빠른 속도로 잘 봐야 해요.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정확한 비트, 드럼머신을 틀어놓고 4분음표 8분음표를 정확하게 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이태윤, 스포츠한국 (2024-08-13)
초견(初見)의 무게는 신현권이 증언합니다. 1968년 동두천 미8군 클럽에서 시작해 1980년대 중반 서울스튜디오 전속 연주자가 된 그는 2016년 스포츠경향에 “처음 본 악보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는 일명 ‘초견’ 에만 20년이 걸렸다” 고 했습니다. 2016년 이승철이 신현권을 30주년 밴드에 영입하면서 한 준비가 그 무게를 보여 줍니다. 히트곡 30여 곡의 악보를 새로 사보해 스캔하고, 편곡을 리얼 베이스가 필요한 구성으로 바꾸고, 자동으로 악보를 넘기는 페이지터너를 구해 왔습니다.
음 하나의 선택#
세션 베이시스트들이 가장 자주 말하는 조건은 많이 치는 것이 아니라 덜 치는 것 입니다.
저는 첫 음에 모든 게 다 있다는 걸 65살이 돼서야 알았습니다. (…) 악보에 나와 있는 대로 즉물적으로 치는 게 아니라 적은 음에 (최대한) 많은 걸 담아내려고 합니다. (…) 자신이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100개 이상 갖고 있다고 해도 실제 연주에서 써먹을 수 있는 건 1입니다. — 신현권, 스포츠한국 (2024-07-15)
송홍섭은 같은 이야기를 손가락을 떼는 동작으로 설명합니다. 2018년 스포츠한국 인터뷰에서 그는 “지판을 눌렀다 떼는 동작까지도 신경 써야 해요. 지판에서 손가락을 떼는 순간에도 고스트(비트)가 생깁니다. (…) 치는(누르는) 박자만큼 떼는 박자도 중요한 것입니다” 라고 했고, 좌우명이 “단순해지자” 라고 밝혔습니다. 2006년 2집을 내면서는 “요즘 음악은 너무 꽉 채워서 들려준다” 며 음반 재킷까지 여백으로 비웠습니다.
드럼과의 관계#
베이스는 혼자 평가받는 악기가 아닙니다. 송홍섭은 “베이스에겐 무엇보다 드럼이 특히 중요하다” 고 말하고 함께 연주하고 싶은 드러머로 에릭 할랜드를 꼽았습니다. 2026년 1월 인터뷰에서는 녹음의 기준을 합주에 두었습니다.
흔히 믹싱은 엔지니어의 몫이라고들 하죠. 그러나 사실상 합주하는 단계에서 이미 믹싱이 끝나는 것이라고 봐야 해요. 연주자들끼리 서로 반응하면서 가장 좋은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게 가장 잘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봅니다. — 송홍섭, 스포츠한국 (2026-01-17)
레니 크래비츠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된 최훈(1977년생)은 2026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베이스를 건축물의 기둥에 비유하며 “드러머 수준의 리듬에 대한 이해, 기타리스트나 키보디스트만큼의 화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전체를 받쳐줄 수 있는 기둥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승철은 2016년 신현권과의 합동 인터뷰에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밴드에서 드럼이 뛰어나면 ‘그 드러머 좋네’ 이렇게 말하는데, 베이스 연주자가 뛰어날 경우 ‘와 그 밴드 좋네’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는 크레디트로 확인되는 드럼–베이스 짝 의 표를 따로 둡니다.
의뢰인과의 관계#
세션은 자기 음악이 아닙니다. 이태윤은 세션 연주자를 “나를 필요로 하는 여러 뮤지션들에게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 내 음악이 아닌 것을 소정의 예술적 대가를 받고 그 사람이 원하는 최상의 연주를 해주는 것” 이라고 정의했고, 2021년에는 “세션을 하는 것은 연주라기보다는 반주에 가까워요. 반주도 잘할 수 있어야 오랫동안 베이스와 함께 할 수 있지요” 라고 했습니다. 아이유·박효신 밴드의 최인성은 발라드를 연주할 때 “가장 건강한 톤을 보내줘야 한다는 게 제 지론” 이라고 했고, 서영도는 베이스의 미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멋진 악기가 있지만 그 악기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이 바로 베이스가 지닌 겸손한 미덕입니다. — 서영도, 스포츠한국 (2021-02-08)
세션비에 관한 증언은 드럼 시리즈에서 인용한 서울경제 2019년 기사가 유일합니다. ‘A급’ 세션은 “3시간 30분 녹음에 대략 30만~50만원” 을 받고, 젊은 연주자는 “회당 불과 7만~10만원을 받고 클럽 공연” 에 나선다는 기사입니다. 그 기사에 베이시스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1980년대의 다른 제도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송홍섭에 따르면 조용필은 위대한 탄생 멤버들에게 월급제를 실시했고, “당시 수준에선 그 어떤 대기업 직원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습니다. 세션비 대신 월급을 받는 밴드 베이시스트, 이것이 1980년대 한국 베이스 연주자가 가질 수 있었던 가장 안정된 자리였습니다.
2. 왜 1970년대부터인가#
드러머 시리즈의 1세대는 1930년대생, 1950년대 미8군 무대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1세대는 1970~1980년대 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악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이 2018년 한겨레에 쓴 애드포 기사에 따르면, 1962년 신중현이 결성한 미8군 패키지쇼 악단 ‘클럽 데이트’ 에는 “이름을 모르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2명” 이 있었고, 1964년 애드포의 첫 녹음에 참여한 것은 “베이스기타 한영현” 이었습니다. 1950년대 미8군 빅밴드의 ‘포리듬’(기타·베이스·드럼·피아노)에서 베이스는 콘트라베이스였고, 1960년대 그룹사운드와 함께 일렉트릭 베이스가 들어왔습니다. 재즈 베이시스트 이판근(1934~2024)의 부고 기사도 같은 전환을 보여 줍니다. 그는 “1960년 전후 미8군 ‘뉴 스타 쇼’ 에서 색소폰을 연주했지만, 이후 전자 베이스로 악기를 바꿔” 재즈에 천착했습니다. 오늘날 세션 베이시스트의 악기인 일렉트릭 베이스가 한국 무대의 표준이 된 것이 1960년대이므로, 그 악기로 녹음실에 이름을 남기기 시작한 1970년대가 이 시리즈의 출발점입니다.
둘째는 기록입니다. 1960년대 그룹사운드의 베이시스트는 키보이스의 차도균, 애드포의 한영현, 히식스의 조용남처럼 이름은 남았지만 연주에 관한 증언이나 음반 크레디트가 거의 없습니다. 반면 1970년대에는 음반 뒷면에 이름이 적히기 시작합니다. 1973년 이장희 『그건 너』 의 조원익,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이남이, 1977년 산울림의 김창훈, 1979년 사랑과 평화 2집의 송홍섭이 Discogs 에 전사된 첫 베이스 크레디트들입니다. 1960년대의 이름들은 Part 2 의 도입에서 한두 문단으로만 적고, 본문은 1970년대부터 시작합니다.
3. 세대 지도#
드러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세대는 태어난 해가 아니라 이름이 남은 자리 를 기준으로 나눕니다. 베이스의 경우 그 자리는 세 번 바뀌었습니다.
flowchart LR
G0["1960년대<br/>미8군 무대·그룹사운드<br/>콘트라베이스 → 일렉트릭 베이스"]
G1["1세대 1970·80년대<br/>그룹사운드 → 녹음실<br/>사랑과 평화·위대한 탄생·동아기획"]
G2["2세대 1990·2000년대<br/>A급 세션과 밴드 출신<br/>'삐삐 다섯 개'의 시대"]
G3["3세대 2010년대 이후<br/>실용음악과·교회·유학<br/>가수 밴드와 세션상"]
G0 -.-> G1 --> G2 --> G3
style G0 fill:#FFFFFF,color:#000000,stroke:#333333
style G1 fill:#FFD700,color:#000000
style G2 fill:#87CEEB,color:#000000
style G3 fill:#FFB6C1,color:#000000
- 1세대, 그룹사운드에서 녹음실로 (Part 2): 1970년대의 베이시스트는 밴드의 멤버로 이름을 남겼고, 1980년대에 그 밴드가 곧 녹음실의 세션이 되었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베이스 자리가 이남이에서 송홍섭으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스 자리가 김택환에서 송홍섭으로 넘어가는 동안, 이장희의 밴드 ‘동방의 빛’ 출신 조원익은 조동진·노래를 찾는 사람들·유재하의 음반에 이름을 남겼고, 어떤날의 조동익은 동아기획 녹음실의 세션이자 편곡자가 되었습니다. 1984년 무렵 서울스튜디오 전속 연주자로 발탁된 신현권은 이 세대의 끝에서 다음 세대의 처음으로 이어집니다.
- 2세대, A급 세션과 밴드 출신 (Part 3): 신현권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삐삐를 다섯 개 차고 다녔고, 이태윤은 1989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세션으로 데뷔해 1993년부터 지금까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입니다. 무한궤도·015B 의 조형곤, N.EX.T 의 김영석, 재즈와 가요를 오간 서영도가 이 세대입니다. 1995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세션을 시작한 최훈(1978년생)은 이 세대의 막내입니다.
- 3세대, 학교·교회·유학과 세션상 (Part 4): 2006년 서울예대 2학년으로 비(Rain)의 월드투어 세션이 된 최인성은 교회 반주, 서울재즈아카데미 입시반,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차례로 거쳤습니다. 동아방송대와 버클리를 나온 이훈형, 호원대 수석 입학생 박규태, 교회음악 CCM 을 카피하며 베이스를 익힌 장태웅이 같은 길의 변주입니다. 멜론뮤직어워드의 세션상(2020 최훈, 2021 고태영, 2022 최인성)이 이들의 이름을 화면에 올렸습니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이름들을 세대별로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 생년은 기사의 나이에서 역산한 것이 많아 한 해 정도 차이가 날 수 있고, 물음표는 출처를 찾지 못한 경우입니다.
| 세대 | 자리 | 주요 베이시스트 (생년) |
|---|---|---|
| 1960년대 (도입) | 미8군·그룹사운드 | 차도균 (키보이스), 한영현 (애드포), 조용남 (히식스), 이판근 (1934, 재즈) |
| 1세대 | 그룹사운드 → 녹음실 | 이남이 (1948), 조원익 (?), 신현권 (1952), 송홍섭 (1954), 최성원 (1954), 김창훈 (1956), 조동익 (1960), 장기호 (1961), 김택환 (?), 이수용 (?), 이수영 (?), 이원재 (?) |
| 2세대 | A급 세션, 밴드 출신 | 이태윤 (1964), 김영석 (1968), 조형곤 (1968~2020), 윤상 (1968), 서영도 (1969 무렵), 최원혁 (?), 최훈 (1977), 최훈 (1978) |
| 3세대 | 학교·교회·유학, 세션상 | 박순철 (1979), 장태웅 (1983), 이훈형 (1984 무렵), 최인성 (1986), 박규태 (1998 무렵), 고태영, 백승권·최희철, 이원술·황호규 (재즈) |
몇 가지 겹침을 미리 적어 둡니다. 신현권(1952)과 송홍섭(1954)은 1세대의 나이지만 가장 바쁜 시기는 1990년대였고, 조동익은 1980년대의 세션이자 1990년대의 프로듀서입니다. 이들은 두 편에 걸쳐 등장합니다. 또 베이시스트 최훈은 두 사람 입니다. 1977년생 최훈은 손무현 밴드와 유앤미블루에서 시작해 버클리 석사를 거쳐 2024년부터 레니 크래비츠 밴드의 정식 멤버가 되었고, 1978년생 최훈은 브라운아이드소울·박효신·god 의 세션입니다. 스포츠한국은 두 사람을 “최훈(77)” 과 “최훈(78)” 로 구분하며, 이 시리즈도 그렇게 씁니다.
4. 이 시리즈가 쓰는 자료와 쓰지 않는 것#
이 시리즈는 세 종류의 자료에 기댑니다.
| 종류 | 자료 |
|---|---|
| 음반 크레디트 | 음반 데이터베이스 Discogs 에 전사된 LP·CD 의 연주자 크레디트. 유재하 1집은 이 블로그의 앞선 시리즈에서 속지 이미지를 직접 판독한 결과 |
| 당사자와 동료의 증언 |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기타신공」 연재(송홍섭·신현권·이태윤·서영도·최훈·최인성·장태웅·이훈형·박순철·박규태), 김현성의 채널예스 칼럼 「600번의 초퍼」, OSEN 김관명의 「3시의 인디살롱」, 한국일보의 최훈(77) 인터뷰, 부고 기사 |
| 실명 비평과 연구 | 한겨레 「한국팝의 사건·사고 60년」(이용우·최지선), 최규성의 애드포 기사, 김학선의 편곡가 글(프레시안), 이코노미조선의 조동익 글(김작가) |
반대로 이 시리즈가 하지 않는 것은 이렇습니다.
- 음원을 듣고 연주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연주의 특징은 당사자와 평론가가 글로 남긴 범위에서만 씁니다.
- 크레디트가 없는 음반의 베이시스트를 추정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Discogs 로 확인한 결과, 김현식 3·4·5집, 봄여름가을겨울 1·2·3집, 이문세 5집, 변진섭·이승철·동물원의 1집, 조용필 3·8집, 빛과 소금 1~3집, 김현철 2·3집, 토이 1집, 김동률 1·2집, 015B 1~4집, 이소라 1·3·4집에는 연주자 크레디트가 전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사가 연주자를 특정하면 “기사 서술” 또는 “본인 진술” 이라고 밝혀 씁니다.
- 한 곳에서만 확인되는 서술은 쓰지 않습니다. 방송 하우스밴드의 베이시스트 명단은 나무위키에만 있어 쓰지 않았고, 서영도의 프랑스 유학이나 신현권이 이태윤에게 미친 영향처럼 한 인터뷰나 한 위키에만 있는 이야기는 “단일 출처” 라고 적습니다.
- 유파는 사실과 분석을 나눕니다. 멘토·추천·후임 관계는 기사에 적힌 것만 사실로 쓰고, 출신과 자리로 묶는 유파는 Part 5 에서 “이 시리즈의 분석” 이라고 밝힌 채 그립니다.
이 원칙 때문에 비어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1980년대 동아기획 음반 대부분의 베이시스트, 1990년대 발라드 음반의 베이시스트, 조원익·김택환·이수용의 생년과 이력이 그렇습니다. 그 자리는 LP 속지를 직접 보거나 당사자를 만나야 채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이 시리즈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콘트라베이스가 일렉트릭 베이스로 바뀐 뒤, 그 네 줄로 가수의 뒤를 받친 사람들의 이름을 세 세대에 걸쳐 적는 일” 입니다. 첫 편은 조건과 지도를 그렸고, 다음 편부터 그 지도의 첫 칸으로 들어갑니다. 1973년 이장희의 녹음실에서 “잼(Jam)하는 형식으로” 곡을 완성해 가던 네 사람의 베이시스트와, 1967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베이스를 잡아 1978년 사랑과 평화에 들어간 열여섯 살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이 글) | 개관 |
| Part 2 | 1세대 — 1970~1980년대 |
| Part 3 | 2세대 — 1990~2000년대 |
| Part 4 | 3세대 — 2010년대 이후 |
| Part 5 | 유파 분석 |
References#
각 편의 끝에 그 편의 자료를 적었습니다. 이 편에서 인용한 발언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조성진, 「이태윤, 세션베이스 지존…방송DJ까지 ‘다재다능’」, 스포츠한국 (2024-08-13)
- 조성진, 「신현권, ‘레전드 현역’ 세션 베이스」, 스포츠한국 (2024-07-15)
- 조성진, 「송홍섭, “32비트 대세인 음악계…관건은 해상도”」, 스포츠한국 (2018-05-06) · 「송홍섭, 오랜만에 새 앨범 발매」, 스포츠한국 (2026-01-17)
- 조성진, 「최훈, ‘대세’ 세션 베이스 “올라운드 플레이어”」, 스포츠한국 (2024-12-01) · 「아이유밴드 최인성 “건강한 소리 지향”」, 스포츠한국 (2024-01-21) · 「서영도, 신작 ‘Otium’ 발매」, 스포츠한국 (2021-02-08)
- 고경석, 「“레니 크래비츠 밴드 오디션 제의, 처음엔 스팸인 줄 알았죠”」, 한국일보 (2026-02-19)
- 강수진, 「30주년 이승철, 40년 명연주자 신현권과 뭉쳤다」, 스포츠경향 (2016-06-10)
- 김현성, 「600번의 초퍼」, 채널예스 (2018-03-16)
- 박선양, 「안양대 김민주 교수의 실용음악 이야기 — 이태윤 편」, OSEN (2021-11-26)
- 최규성, 「한국 첫 창작 록음반은 가정집에서 녹음됐다」, 한겨레 (2018-07-19)
- 이태수, 「‘한국 재즈의 선구자’ 1세대 뮤지션·이론가 이판근 별세」, 연합뉴스 (2024-03-03)
- 김학선, 「80년대 한국 가요를 떠받친 위대한 편곡가 이호준」, 프레시안 (2024-03-09)
- 한민구, 「‘A급’ 세션 맨을 향해」, 서울경제 (2019-07-27)
- 전아람, 엑스포츠뉴스 (2020-12-05) · 텐아시아 (2021-12-04) · 이재훈, 뉴시스 (2022-11-27) — 멜론뮤직어워드 세션상
- Discogs, 사랑과 평화 1집 · 이장희 『그건 너!』 · 신중현과 엽전들 · 산울림 1집 · 사랑과 평화 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