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션 기타리스트 계보 Part 1: 조건과 세 세대
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2015년 가을, 임진모가 함춘호에게 물었습니다. 세션 연주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요. 돌아온 답이 이랬습니다.
연주인으로서 기능만 가지고 있다고 세션을 시작할 순 없어요. 클라이언트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유, 나아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세션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다들 건축공이라 생각합니다. 음악가라는 개인이 정말 살고 싶은 집을 지을 때 그 집을 지어주는 시공자 역할이죠.
기타를 치는 사람으로서 이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기타는 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악기인데, 세션 기타리스트는 눈에 띄지 않는 쪽을 직업으로 고른 사람들이거든요. 같은 인터뷰에서 함춘호는 일주일에 15건 넘게 세션 요청이 들어오는데 물리적으로 2~3곡밖에 못 한다고 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이문세와 이영훈의 음반 전부, 김광석 3집 전체, 신승훈의 「미소속에 비친 그대」가 그 손을 거쳤고요.
이 시리즈는 그런 손들의 이름을 적습니다.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를 먼저 썼고, 기타까지 오면 한국 대중음악의 리듬 섹션 세 자리가 한 장으로 보일 것 같았습니다. 다섯 편입니다. 이 편에서는 기타리스트들이 스스로 말한 세션의 조건을 듣고, 세대를 어떻게 나눴는지를 적습니다. 다음 세 편이 세대별 이름이고, 마지막 편에서 세 시리즈의 크레디트를 맞춰 드럼·베이스·기타가 한 녹음실에 같이 있었던 순간들을 표로 만듭니다.
세션 기타리스트의 조건, 당사자들의 말로#
드럼과 베이스 때와 달리 기타리스트들은 말을 많이 남겼습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의 「기타신공」 연재가 2016년부터 10년 동안 기타리스트만 수십 명을 인터뷰했고, 채널예스와 연합뉴스, 영남일보 같은 곳에도 긴 인터뷰가 있습니다. 읽으면서 같은 말이 다른 입에서 되풀이되는 것을 봤는데요, 그걸 묶으면 조건이 됩니다.
노래를 따라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함춘호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노래하듯이 기타를 치면 좋겠다” 였습니다. 결국 공연장에서 세션은 노래를 따라가니까, 그 노래가 주는 느낌을 기타가 살려 줘야 한다는 거죠. 학창 시절 성악을 했던 사람의 말이라 더 그렇게 들립니다. 2023년 이성렬은 “제가 만일 이 곡을 썼으면 이런 식으로 해서 풀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충분히 고민하고 연주에 임하려고” 한다고 했고, 내슈빌에 사는 정수완은 2022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보컬과 악기 트랙을 듣고, 그 곡의 컨셉을 빨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연주 스킬보다 현재 이 음악에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연주를 하는 게 가장 좋은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은 기술자라는 자의식인데요. 홍준호는 2021년 인터뷰에서 “세션맨은 아티스트보단 기술자라는 명칭에 더 가깝습니다” 라고 했어요. 조금만 연습하지 않아도 금방 티가 나니 운동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요. 노경환은 녹음을 많이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주에서 ‘잡티’ 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리듬과 연주로 작곡가를 만족시키는 것, 그게 일이라는 겁니다.
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도 조건에 들어갑니다. 이 대목에서는 최희선의 말이 제일 세게 들렸어요. “아무리 연주가 뛰어나도 그걸 듣는이에게 배달하는 음향 전반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말짱 꽝입니다.” 그는 1993년 위대한 탄생에 들어간 뒤로 공연이 끝나면 반드시 그날의 사운드와 연주를 ‘복기’ 했고, 1990년대에는 믹싱 담당자가 CD 를 들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었다고 합니다. 2013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이렇게도 말했어요. “그냥 기타만 잘 치는 것과 음악을 잘하는 건 다른 문제에요. 기타를 아무리 잘 쳐도 동료와 호흡이 안 맞으면 음악을 잘한다고 할 수 없죠.”
마지막은 사람과의 관계. 함춘호는 의견이 충돌할 때 “가장 편한 방법은 의견을 무시하는 것” 이라고 웃고는, 자신은 ‘관계의 미학’ 을 염두에 두고 힘들더라도 맞춰 주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제작자가 요구하는 것에 맞추면 그게 공부가 된다고요. 정재필은 세션 기타리스트의 덕목을 “대화가 잘 돼야 하는 사람” 이라고 했고, 역량이 안 돼 못하는 부분은 솔직하게 못 한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건들을 다 채우고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신대철은 2011년 방송에서 시나위가 해체된 뒤 생계 때문에 세션을 시작했고 하루에 세 군데에서 연주할 만큼 잘 팔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자기가 친 기타가 나오는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주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내가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한 것이었다. 그 순간에 희의감이 들었다. 그날부터 세션 활동을 안 했다.” 이근형도 공연 세션은 “가수 뒤에 병풍처럼 서서 연주한다는 게 싫어서” 줄곧 고사한다고 했습니다. 세션의 조건 뒤에 이 두 사람의 말을 같이 두고 싶었습니다. 기타는 앞에 서라고 만든 악기이기도 하니까요.
왜 1970년대부터인가, 그리고 신중현#
베이스 시리즈는 1970년대를 1세대로 잡았습니다. 기타도 같은 틀을 쓰는데, 한 사람 때문에 그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신중현입니다.
신중현은 1955년 용산 미8군 연예단에 들어가 1957년 악단 기타리스트로 데뷔했고, 1964년 애드포의 첫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최규성이 한겨레에 쓴 글에 따르면 그 녹음에 참여한 사람이 “리드기타 신중현, 보컬 서정길, 드럼 권순근, 베이스기타 한영현” 이었죠. 1960년대 그룹사운드의 다른 뿌리인 키보이스의 김홍탁(1944~2024)도 있습니다. 2024년 부고에서 윤항기는 그를 “신중현과 함께 쌍벽을 이룬 출중한 1세대 그룹사운드 기타리스트”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1960년대를 통째로 도입 두 문단으로 접고 1970년대부터 시작하면 신중현이 빠집니다. 그런데 음반 뒷면에 이름이 적히기 시작하는 건 1970년대부터예요. 1973년 이장희 『그건 너』 의 강근식,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신중현, 1977년 산울림의 김창완, 1978년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이게 Discogs 에 전사된 첫 기타 크레디트들입니다. 신중현의 1960년대 음반은 크레디트가 없지만 1974년 엽전들 1·2집과 1980년 뮤직파워부터는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1세대는 1970~1980년대로 두되 신중현을 1세대 본문에 넣고, 1960년대는 Part 2 첫머리에서 두 문단으로만 짚습니다. 신중현이 2019년 동아일보에 한 말이 이 결정을 도왔습니다. 주법 개발에 몰입한 지 20년 됐다면서 “손가락이 아니라 몸에서 뱉어 내는 소리다. 나의 새로운 주법이다” 라고 했거든요. 1938년생이 2019년에 새 주법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한 연대에 가둘 수 없습니다.
세 세대#
세대는 태어난 해보다 이름이 남은 자리로 나눴습니다. 드럼·베이스와 같은 기준이에요.
flowchart LR
G1["1세대 1970·80년대<br/>그룹사운드에서 녹음실로<br/>신중현·최이철·함춘호·최희선"]
G2["2세대 1990·2000년대<br/>A급 세션과 밴드 출신<br/>홍준호·이근형·이성렬·김세황"]
G3["3세대 2010년대 이후<br/>학교·유튜브·가수 밴드<br/>적재·정수완·김동민·이신우"]
G1 --> G2 --> G3
style G1 fill:#FFD700,color:#000000
style G2 fill:#87CEEB,color:#000000
style G3 fill:#FFB6C1,color:#000000
1세대는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녹음실의 기타리스트가 된 사람들입니다.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은 송창식과 김현식의 음반에서 세션 기타를 쳤고, 시인과 촌장의 함춘호는 동아기획 녹음실의 기타가 됐으며, 1977년 데뷔한 최희선은 1980년대 중반부터 하루 20시간씩 녹음실에 있다가 1993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들어갔습니다. 신중현의 두 아들과, 그 집 안방에 드나들던 손무현도 이 세대 끝에 있습니다.
2세대는 1990년대의 ‘A급 세션’ 과, 밴드에서 왔다가 세션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에요. 홍준호는 1999년 김현철 앨범으로 시작해 2010년까지 “한국에서 가장 바쁘고 잘 나가는 세션맨” 이었고(2만5천 곡이라고 합니다), 작은하늘과 카리스마의 이근형은 1992년 신성우 음반 이후 임재범 「고해」, 김범수 「보고 싶다」, 이은미 「애인 있어요」 의 기타가 됐습니다. 1991년 밤무대에서 시작한 이성렬, N.EX.T 의 김세황, 버클리와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를 나온 정수욱도 여기 넣었습니다.
3세대는 학교와 유튜브에서 왔습니다. 적재는 열여덟에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가 이소라·김동률·박효신·아이유의 세션을 거쳐 싱어송라이터가 됐고, 정수완은 2016년 미국으로 건너가 내슈빌에서 BTS 라이브 밴드의 기타를 칩니다. 멜론뮤직어워드 세션상이 2020년 적재, 2021년 김동민, 2022년 이신우에게 갔고요. 이 넷은 제가 요즘 눈여겨보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합니다.
이름을 세대별로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 생년은 기사의 나이에서 역산한 것이 많아 한 해 정도 다를 수 있고, 물음표는 못 찾은 경우예요.
| 세대 | 주요 기타리스트 (생년) |
|---|---|
| 1960년대 (도입) | 신중현 (1938), 김희갑 (1936), 김홍탁 (1944~2024), 김명길 (1947 무렵~2020) |
| 1세대 | 신중현, 강근식 (1946 무렵), 이정선 (1950), 최이철 (1952 또는 1953), 엄인호 (1952), 조덕환 (1953~2016), 김창완 (1954), 유영선 (1957~2021), 최구희 (1958~2026), 한상원 (1960), 최희선 (1961), 함춘호 (1961), 김종진 (1962), 김도균 (1964), 김태원 (1965), 이병우 (1965), 이근형 (1966), 신대철 (1967), 손무현 (1968), 박청귀 (?~2002), 김석규 (?), 곽경욱 (?), 손진태 (?) |
| 2세대 | 신윤철 (1969), 이성렬 (1969), 김세황 (1971), 정수욱 (1971), 이정우 (1971~2026), 안성훈 (1972), 박창곤 (1974), 노경환 (1974), 이상순 (1974), 홍준호 (1975), 찰리정 (1977), 박주원 (1980) |
| 3세대 | 정재필 (1981), 장재원 (1982), 윤재원 (1983), 임헌일 (1983), 정수완 (1984), 적재 (1989), 권한얼 (1994), 김성현 (1996 무렵), 김동민 (?), 이신우 (?), 전달현 (?) |
겹침이 있습니다. 이근형은 1966년생이지만 세션 경력이 1992년에 시작하니 2세대 편에 더 많이 나오고, 최희선과 함춘호는 1세대의 나이로 2026년에도 현역이라 세 편에 다 나옵니다. 그리고 김도균·김태원·신대철은 세션보다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기억되는 사람들인데, 저는 이들이 계보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신대철은 1990년대 초에 세션으로 돈을 벌었고, 김도균은 이근형을 서라벌레코드에 소개해 작은하늘의 음반이 나오게 했으며, 세 사람이 1985년 한 무대에서 겨룬 일이 김태원을 작곡으로 돌려세웠다고 하니까요. 한국에서 밴드와 세션의 경계는 처음부터 흐렸고, 기타는 그 경계가 제일 흐린 악기였습니다.
함춘호라는 기준점#
한 사람만 미리 말해 두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1980~90년대 한국 세션 기타의 얼굴은 함춘호입니다. 자료를 다 읽고 나서도 그 생각이 바뀌지 않았어요.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숫자. 서울경제가 2019년에 ‘A급 세션’ 을 설명하면서 든 이름이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럼연주자 강수호” 였고, Discogs 로 확인한 1980년대 기타 크레디트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이름도 함춘호입니다. 시인과 촌장 2집, 이문세 4집, 김현철 1집, 이원재 1집, 장필순 1집, 그리고 1996년 이소라 2집과 2001년 토이 『Present』, 박효신 『Second Story』. 다른 하나는 다음 세대가 한 말이에요. 2021년 홍준호 기사에 “윗세대엔 함춘호라는 거장이 있고 그 바로 아래 세대엔 홍준호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라는 문장이 있고, 정수완은 20대에 “함춘호 선생님과 투기타로 무대에 서며 영향을 받았” 다고 했어요. 2025년 9월 송홍섭 앙상블의 첫 공연에 게스트로 선 기타리스트도 함춘호였습니다.
이병우는 다른 길입니다. 어떤날의 기타리스트로 1980년대 후반 송홍섭 사단에서 세션을 했지만, 빈에서 클래식 기타를 공부하고 1996년부터 영화음악으로 갔죠. 그 길도 Part 2 와 Part 3 에서 따로 적습니다.
자료에 대해#
기댄 자료는 Discogs 에 전사된 음반 크레디트, 당사자와 동료의 인터뷰, 실명 비평입니다. 음원을 듣고 연주를 분석하지는 않았고, 크레디트가 없는 음반의 기타리스트를 추정하지도 않았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음반은 속지에 이름이 있어도 Discogs 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인터뷰에서 본인이 말한 곡은 “본인 진술” 이라고 적었습니다. 함춘호의 세션 음반 목록이나 김세황·신대철의 1990년대 세션 참여는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있어 그렇게 밝혔고, 나무위키에만 있는 이야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1인칭으로 쓴 의견은 제 것이고, 그 밖의 1인칭은 자료를 읽은 사람의 반응까지입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이 글) | 조건과 세 세대 |
| Part 2 | 1970년대와 80년대 |
| Part 3 | 1990년대와 2000년대 |
| Part 4 | 2010년대 이후 |
| Part 5 | 계보도와 리듬 섹션 |
References#
- 임진모·이기찬, 「기타리스트 함춘호 인터뷰」, 채널예스 (2015-11-17)
- 조성진, 「홍준호, ‘타고난 DNA’ 뼛속까지 세션맨」, 스포츠한국 (2021-03-05)
- 조성진, 「정수완, BTS밴드 기타·세션맨」, 스포츠한국 (2022-07-04)
- 조성진, 「이성렬, 최정상 세션맨…임영웅밴드 기타」, 스포츠한국 (2023-05-11)
- 조성진, 「노경환, 임재범·김종서 기타」, 스포츠한국 (2024-08-23)
- 조성진, 「정재필, (여자)아이들·정용화 밴드마스터」, 스포츠한국 (2024-07-06)
- 조성진,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리더 최희선」, 스포츠한국 (2019-10-17) · 이연정, 「‘가왕’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연합뉴스 (2013-03-22)
- 조성진, 「이근형, ‘작은하늘’ 리더·초일급 세션 기타리스트」, 스포츠한국 (2020-08-17)
- 방정훈, 「‘놀러와’ 신대철, “생계위해 세션 활동했지만 회의감 들어”」, 엑스포츠뉴스 (2011-10-04)
- 최규성, 「한국 첫 창작 록음반은 가정집에서 녹음됐다」, 한겨레 (2018-07-19)
- 이태수, 「‘기타의 개척자’ 키보이스 김홍탁 별세」, 연합뉴스 (2024-12-07)
- 임희윤, 「신중현 파워인터뷰」, 동아일보 (2019-07-09)
- 이재훈, 「신대철·김도균·김태원 그리고 이근형이 있었다」, 뉴시스 (2023-04-02)
- 한민구, 「‘A급’ 세션 맨을 향해」, 서울경제 (2019-07-27)
- 김아현, 「적재, 아버지에 시그니처 기타 선물」, 톱스타뉴스 (2026-05-08) · 전아람, 엑스포츠뉴스 (2020-12-05) · 텐아시아 (2021-12-04) · 이재훈, 뉴시스 (2022-11-27) — 멜론뮤직어워드 세션상
- Discogs, 이장희 『그건 너!』 · 신중현과 엽전들 · 산울림 1집 · 사랑과 평화 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