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1978년 봄, 명동 퍼시픽호텔 지하 나이트클럽 ‘무겐’ 에서 재즈를 연주하던 최이철에게 이장희가 찾아왔습니다. “네가 스타 되는 걸 한 번 보고 싶다. 레코딩 해보지 않을래.” 그해 가을에 나온 음반이 사랑과 평화 1집 『한동안 뜸했었지』 고요. 2013년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최이철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1세대의 첫 장면으로 골랐습니다. 미8군과 고고클럽을 돌던 기타리스트가 녹음실로 불려 들어가는 순간이고, 그를 부른 사람이 5년 전 자기 녹음실에서 강근식의 기타로 「그건 너」 를 만든 이장희라서요.

그 앞에 1960년대가 있습니다. 두 문단만 적겠습니다.

1960년대, 두 문단#

신중현은 1955년 용산 미8군 연예단에 들어가 1957년 악단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했고, 1964년 애드포의 첫 음반을 가정집 응접실에서 녹음했습니다. 최규성이 한겨레에 쓴 글에 따르면 “리드기타 신중현, 보컬 서정길, 드럼 권순근, 베이스기타 한영현” 이 아침부터 14곡을 한 번에 끝냈다고 하죠. 음반은 팔리지 않았고, 1966년 밴드를 해산한 그는 미8군 클럽으로 돌아가 1968년 펄시스터즈가 히트할 때까지 10년의 무명을 보냈습니다. 같은 시기 인천 출신의 김홍탁은 1959년 키보이스를 만들어 1964년 정식 1집을 냈고, 1968년에는 기타리스트 조용남의 추천으로 히파이브에, 1970년에는 히식스에 있었습니다. 2024년 12월 부고에서 박성서는 그를 “‘기타의 파이어니어’ 라는 별명” 으로 불렀습니다.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홍탁이 1990년대에 돌아와 세운 것이 서울재즈아카데미인데, 베이스 시리즈에 나온 최인성이 2003년 거기 입시반에 다녔으니 선이 길게 이어집니다.

이 무대의 기타리스트들이 어떻게 뽑혔는지는 최이철이 증언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동네 형들과 마포 길거리에서 연주하다가 오디션을 보라는 말을 들었고, 미8군 출연을 관리하던 ‘유니버설’ 에서 B등급을 받았습니다. “동네 어설픈 연주자 4명이 B등급을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어요. 이 등급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데, A등급 받은 팀도 연습 게을리 하면 바로 D등급으로 추락할 만큼 심사가 엄격했어요.” 한 달 급여가 2만2,500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유니버설 사무실에서 그는 문틈으로 서른 살쯤의 신중현을 봤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씩 연습한다는 말을 들었죠. 천재라도 연습 없이는 안 된다는 걸 알았죠.”

신중현, 1세대의 첫 자리#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 1집과 2집의 Discogs 크레디트는 “Shin Joong Hyun: Guitar”, 베이스 이남이, 드럼은 김호식과 권용남입니다. 1980년 뮤직파워 1집에는 연주자 크레디트가 없지만, 들국화의 최구희가 뮤직파워 출신이라는 서술이 한국어 위키백과에 있어요(위키에만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신중현을 1세대에 넣은 이유는 그가 1970년대 음반의 기타리스트여서만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의 기타리스트들이 그 집에서 나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아들이 그렇습니다. 신대철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웠고(한국어 위키백과가 2011년 뉴스엔을 인용합니다), 신윤철은 2012년 연합뉴스에 “저희 삼형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자, 제자이자, 팬인 셈이죠” 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 드나들던 10대가 또 있었습니다. 손무현이 2026년 YTN 라디오에서 한 이야기예요.

연습실에 가서 만났는데 그게 신윤철 씨라고 신중현 선생님의 차남. 그리고 그 친구랑 친해졌더니 그 윤철이 형, 신대철을 알게 됐고. 그 집에 놀러 갔더니 안방에 신중현 선생님이 계셨어요.

기타로 끝장을 본 사람을 기대하고 갔는데 신중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그때 만들던 노래가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 이었다고 합니다. 훗날 김완선의 음악을 만든 사람이 손무현이니, 본인 말대로 “그 역사에 제가 있었다는 게 너무 행운” 인 장면이죠. 최희선도 2026년 영남일보에서 “신중현 선생님 밴드에서 세컨드 기타를 치기도 했” 다고 했습니다. 1977년 데뷔한 뒤의 일입니다.

이장희의 녹음실, 강근식과 김석규#

Discogs 에 전사된 가장 이른 세션 기타 크레디트는 1973년 이장희 『그건 너!』 의 강근식입니다. 일렉트릭 기타 강근식, 리듬 기타 이장희, 베이스 조원익, 드럼 배수연. 이장희는 2016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강근식을 “최고의 재즈 음악가인 고(故) 정성조를 누르고 재즈 기타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실력파” 라고 소개했고, 쎄시봉 사회자 이상벽의 주선으로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녹음실에는 편곡자가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노래 부르면 조금 있다 강근식이 나타나 기타를 연주하고 그러다가 베이스 조원익이 가세하고 건반이 보태지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곡이 탄생한 거죠. 편곡이 아닌 잼(Jam)하는 형식으로 음악을 완성해갔다고 할까요.

네 사람은 ‘동방의 빛’ 이라는 밴드가 되어 1974년 『별들의 고향』 과 1975년 『바보들의 행진』 의 영화음악을 만들었습니다. 2011년 스포츠경향에 따르면 강근식은 그 뒤 기타 제작사 콜트콜텍의 문화재단 이사가 되어, 울릉도의 초등학교에 동방의 빛 이름으로 기타 25점을 기증했습니다. 베이스 시리즈에서 적은 조원익의 울릉도 이야기와 같은 자리예요.

강근식 옆에 김석규가 있습니다. 1978년 송창식 『사랑이야/토함산』 뒷면에 “김석규, 조원익, 이호준, 배수연의 석기시대” 로 이름이 올랐고(최지선, 한겨레 2006), 위대한 탄생 2기의 기타로 1984년 조용필 6집 크레디트에 “김석규: Guitar” 로 적혀 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그를 파파스밴드의 리드 기타로도 적고 있는데, 인터뷰는 찾지 못했습니다.

최이철과 사랑과 평화#

최이철의 생년은 기사마다 다릅니다. 세계일보는 1952년 부산, 채널예스는 김명곤과 동갑인 1953년생이라고 적었어요. 경력은 또렷합니다. 그룹 ‘아이들’ 에서 치던 기타를 보고 1971년 김대환이 조용필과 함께 김 트리오로 데려갔고, 이용우가 한겨레에 쓴 대로 “이들이 한쪽엔 기타, 다른 한쪽엔 베이스를 메고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는 후일담” 이 전해집니다. 1972년에는 김태욱(베이스), 김명곤(건반), 김태흥(드럼)과 영 에이스로 미8군에 섰고, 1978년 사랑과 평화 1집이 나왔습니다. Discogs 크레디트가 “최이철: Vocals, Electric Guitar”, 드럼 김태흥, 베이스는 사르보예요.

2012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녹음실은 이렇습니다. “그 때는 2채널이잖아. 틀리면 전부 몽땅 다섯 명이 들어가서 다시 연주하고 노래해야했으니까. ‘원 테이크’ 였단 거지.” 「한동안 뜸했었지」 의 편곡은 자기가 했는데 재킷에 잘못 나왔다는 이야기도 거기 있습니다. 이장희에게 따졌더니 판을 다시 찍기 귀찮아 그대로 나왔고, 저작권 협회에는 편곡자로 올라 있다고요. 김학선이 “과거엔 앨범 크레디트에 이름 한 줄 올리기가 어려웠고, 그마저도 틀리게 표기되는 일이 잦았다” 고 쓴 그 시대입니다.

최이철이 말한 자기 연주의 생명이 저는 좋았습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연주하는 것? 나는 음을 많이 나열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마다 느낌이 다른 연주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그래 지금도. 똑같은 노래를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감이 달라.

펑키는 미8군 주크박스에서 배웠습니다. 미군 부대에는 신보가 일주일 만에 들어왔고, 김명곤과 주크박스 양쪽에 앉아 그 자리에서 따서 다음 날 연주했다고 해요. 1983년 대마초 사건으로 1987년까지 음반을 못 내는 동안에도 사랑과 평화 이름으로 업소를 돌았고, 최지선에 따르면 그 사이 “송창식이나 김현식 등의 음반에서 최고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약” 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김현식 6집의 편곡을 “송홍섭, 최이철, 김종진” 으로, 위대한 탄생 3기의 기타로도 그를 적고 있어요(둘 다 위키 서술입니다). 2013년 기준으로 명지전문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포크 쪽의 기타, 이정선과 엄인호#

1970년대 기타의 다른 절반은 포크에 있습니다. 1950년 대구 출생 이정선은 1974년 1집 『섬소년』 을 전곡 작사·작곡·편곡·연주로 냈고,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977년 MBC 대학가요제가 시작된 뒤 “10여년 동안 대부분의 앨범 녹음에 이정선은 편곡, 연주자로 참여” 했습니다. 1985년 『이정선 기타교실』 을 시작으로 교본을 30권 넘게 썼고, 1998년부터 동덕여대 교수였으며, 2004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세션 기타리스트이면서 기타를 가르친 책의 저자라는 점에서 이 세대에 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베이스 시리즈 Part 4 에 나온 윤재원도 독학 교재가 이정선 기타교본이었다고 했어요.

엄인호는 1976년 이광조 1집의 기타·코러스로 시작해(위키 서술) 풍선과 장끼를 거쳐 1986년 4월 신촌의 카페 레드제플린에서 이정선·김현식·한영애와 신촌블루스를 만들었습니다. 2014년 연합뉴스에서 그는 이정선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룹 초반에 이정선 선배가 내 자유분방한 연주를 많이 받아줬다. 선배로서 정말 많이 도와줬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나중에는 ‘이정선 류’ 의 기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음악을 반대해 기타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고, 독립한 뒤 CCR 을 교과서 삼아 흉내 내기로 배웠다고 해요. “통기타를 전자기타처럼 치고, 전자기타를 통기타처럼 친다” 는 평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1988년 신촌블루스 1집의 크레디트가 엄인호(일렉·어쿠스틱), 이정선(일렉·하모니카), 윤명운(슬라이드), 베이스 김영진, 드럼 정태국이고, 1989년 2집은 이정선·엄인호, 베이스 이원재, 드럼 정태국입니다.

위대한 탄생의 기타 의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 자리는 베이스 자리보다 자주 바뀌었습니다. 스포츠동아 2018년 기사의 1기 라인업은 “곽경욱(기타), 김정수(기타), 김택환(베이스), 김청산(건반), 이건태(드럼)” 이고, 1982년 4집 크레디트가 “곽경욱: Guitar” 입니다. 1984년 6집은 김석규, 1985년 7집은 최진영. 한국어 위키백과의 3기 명단에는 박청귀·최이철·유영선·김종진이 기타로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1993년부터 지금까지가 최희선입니다. 조용필 자신이 기타리스트로 출발한 사람이라 4집과 6집, 7집 크레디트에 “Cho Yong-Pil: Guitar” 가 같이 적혀 있는 것도 이 밴드의 특징이에요.

박청귀는 이 세대에서 가장 적게 남은 이름입니다. ‘아라이’ 로 더 알려진 그는 2024년 매경이코노미에 실린 가수 김태욱의 회고에 따르면 “1984년 도쿄에서 조용필의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서 활동” 했고, 2002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학선은 프레시안에서 “1980년대 후반 송홍섭이 편곡을 맡은 작품에는 어김없이 박청귀(아라이), 이병우 등이 기타 연주를 했다” 고 썼고, 경향신문의 100대 명반 글은 1988년 한영애 2집 『바라본다』 에 대해 “이젠 고인이 된 박청귀(‘아라이’ 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는 이 앨범의 연주부터 시작해 그 유명했던 기타 세션맨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고 적었습니다. 베이스 시리즈에서 적은 송홍섭 사단의 리듬 섹션(김희현·배수연)에 기타는 박청귀와 이병우였던 셈입니다.

최희선의 1980년대는 2019년 「기타신공」 에 한 문단으로 있습니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기타리스트이자 편곡/믹싱 전문가로 심신 ‘욕심쟁이’ 등등 수많은 유명 가수들의 음반 녹음에 관여했다. 일 평균 20시간 이상 레코딩 스케줄을 소화할 만큼 잘 나가는 연주자/편곡자/음반 디렉터였던 것이다.” 심신 1집은 Discogs 에 크레디트가 없어 이 서술은 기사에만 있습니다. 1961년 상주에서 “상주에서 유일하게 기타가 있는 집” 에 태어나 네 살에 기타를 잡았고, 1977년 클럽에서 프로로 시작했으며, 1987년에는 송골매의 김상복, 블랙테트라의 오승동과 밴드 ‘신’ 을 했습니다(연합뉴스 2013). 위대한 탄생 이후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동아기획의 기타, 함춘호·이병우·손진태#

함춘호는 1979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전인권과 듀오로 시작했습니다. 뉴시스 2020년 기사에 따르면 “1981년 이광조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 음반에 참여하며 기타 세션으로 첫 발을 내딛었” 고, 1984년 시인과 촌장에 들어가 1986년 2집 『푸른 돛』 으로 공식 데뷔했습니다. 그 음반의 Discogs 크레디트가 재미있어요. 어쿠스틱·일렉트릭 기타 함춘호, 일렉트릭 기타 이병우, 어쿠스틱 하덕규, 베이스 조동익, 드럼 김영석. 1980년대 후반 동아기획 녹음실의 기타 둘과 리듬 섹션이 한 장에 다 있습니다. 하덕규는 함춘호를 두고 “내가 끼적거린 시를 연주로 풀어준 사람이지” 라고 했다고 본인이 전했습니다.

그 뒤의 크레디트가 Part 1 에서 적은 대로 이어집니다. 1987년 이문세 4집(함춘호, 김광석, 이유신), 1989년 김현철 1집(함춘호·손진태), 이원재 1집(함춘호), 장필순 1집(함춘호·손진태·김의석). 김학선은 1990년대 조동익 사단의 기타를 “함춘호(기타), 손진태(기타)” 로 적었는데, 그 짝은 이미 1989년에 만들어져 있었던 거죠. 함춘호가 2015년에 꼽은 자기 세션의 정점이 김광석 3집 『나의 노래』 전체와 신승훈의 「미소속에 비친 그대」 첫 테이크였다는 것, 그리고 “‘이문세-이영훈’ 시대 앨범을 전부 참여했어요” 라는 말은 1990년대 편에서 다시 적겠습니다.

이병우는 같은 녹음실에서 다른 쪽으로 걸어 나간 사람입니다. 1965년생, 1986년 스물한 살에 조동익과 어떤날을 만들었고 『어떤날 I』 의 크레디트가 “이병우: Acoustic Guitar, Electric Guitar, Percussion, Vocals” 예요. 1989년 『어떤날 II』 에도 기타는 이병우뿐이고, 같은 해 7월 솔로 1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 航海』 를 냈습니다. 그 사이 송홍섭 사단의 세션 기타였다는 것이 김학선의 서술이고요. 빈 국립음대에서 클래식 기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96년 『세 친구』 부터 영화음악으로 간 뒤의 이야기는 Part 3 에 있습니다.

손진태는 들국화 2집(1986)의 일렉트릭 기타로 처음 크레디트에 나타납니다. 최구희와 함께요. 그다음이 김현철 1집과 장필순 1집이니, 밴드의 기타에서 동아기획 세션으로 옮겨 간 가장 짧은 경로입니다. 인터뷰는 찾지 못했습니다.

들국화의 기타, 조덕환과 최구희#

1985년 9월 들국화 1집 『행진』 의 기타는 조덕환이었습니다. 「세계로 가는 기차」 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를 만든 사람이고, 1집 뒤 탈퇴해 1987년 미국으로 건너가 20년을 살다 2009년 돌아왔으며, 2016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한겨레 부고). 그 1집의 녹음에 ‘믿음 소망 사랑’ 에서 활동하던 주찬권과 최구희가 세션으로 참여했고, 「그것만이 내 세상」 의 기타 솔로가 최구희의 것입니다. 2026년 8월 최구희가 제주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최성원이 SNS 에 쓴 말을 뉴시스가 옮겼습니다.

이펙터를 거의 쓰지 않고 마샬 앰프 볼륨을 찌그러뜨려 내는 그 생톤의 매력은 너 이후로 아직 보지 못했다.

기타를 치는 사람으로서 이 한 줄이 1980년대 한국 록 기타의 톤을 가장 정확하게 적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구희는 1986년 조덕환이 나간 뒤 주찬권·손진태와 함께 정식 멤버가 되어 2집을 냈고, 2집의 크레디트가 “최구희: Electric Guitar”, “손진태: Electric Guitar” 입니다.

1986년, 밴드 기타의 해#

같은 1986년에 부활·시나위·백두산의 1집이 나왔습니다. 세션 계보에서 이 세 밴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했는데, Part 1 에 적은 대로 넣기로 했습니다. 부활 1집의 Discogs 크레디트는 리드 기타 이지웅, 베이스 김병찬, 드럼 황태순이고 김태원의 이름은 작곡자 쪽에 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중학교 3학년 때 레드 제플린을 6개월 연습했고 학원은 한 달만 다녔다는 그의 입문과, 1985년 시나위와 같은 무대에서 겨룬 뒤 “기타실력보다는 작곡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을 했다는 일간스포츠 기사를 적고 있어요. 시나위 1집(2012년 재발매반 크레디트)은 기타 신대철, 베이스 박영배, 드럼 강종수. 백두산 1집은 Discogs 에 없지만, 1981년 대구 클럽에서 시작한 김도균이 유현상에게 발탁돼 1985년 말 가입했다는 것이 위키의 서술입니다. 조성진은 2017년 글에서 김도균이 “데뷔 이래 줄곧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였다고 썼습니다.

이 세 사람이 1990년대에 어떻게 세션과 만나는지가 다음 편의 한 축이에요. 신대철은 세션으로 돈을 벌다 라디오에서 자기 기타를 듣고 그만뒀고, 김도균은 작은하늘의 이근형을 서라벌레코드에 소개했으며, 손무현은 1987년 외인부대로 데뷔해 1990년 김완선 5집의 프로듀서가 됐습니다. 손무현의 말을 하나 미리 옮겨 두면,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 는 “사실 사람이 연주하는 게 거의 없어요. 제가 직접 프로그램을 해가지고 제가 기타만 좀 친 것밖에 없어요” 였습니다. 1989년과 1990년의 일이에요. 세션 기타리스트가 미디로 자기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크레디트로 확인된 음반#

연도음반기타베이스드럼출처
1964애드포 1집신중현한영현권순근최규성, 한겨레 (음반에 이름 없음)
1973이장희 『그건 너!』강근식 (일렉), 이장희 (리듬)조원익배수연Discogs 8810022
1974신중현과 엽전들 1·2집신중현이남이김호식 / 권용남Discogs 11232949 · 14337582
1974검은나비 1집김기표이태현문영배Discogs 2764403
1977산울림 1집김창완김창훈김창익Discogs 3568341
1978사랑과 평화 1집최이철Sarvo김태흥Discogs 8480322
1978송창식 『사랑이야/토함산』김석규조원익 · 사르보배수연최지선, 한겨레 (LP 뒷면)
1979사랑과 평화 2집최이철송홍섭김태흥Discogs 9801016
1979이정선 4집이정선 · 엄인호 · 최춘호 (어쿠스틱)서정필박성기Discogs 20697916
1979송골매 1집지덕엽이응수배철수Discogs 5540964
1982조용필 4집곽경욱, 조용필김택환이건태Discogs 14959701
1982송골매 2집김정선, 배철수김상복오승동Discogs 5642326
1983조동진 『Golden Album』이영재 (일렉), 최성원·조동진 (어쿠스틱)조원익유영수Discogs 8875287
1983불나비김기표조용남문영배Discogs 20000224
1984조용필 6집김석규, 조용필송홍섭백천남Discogs 14873596
1984노래를 찾는 사람들 1김광민, 노승종조원익안기승Discogs 9243035
1984따로또같이 II이영재 (일렉) 외조원익안기승Discogs 11962391
1984윤수일 Band III박성호조용식이건태Discogs 18247741
1985조용필 7집최진영, 조용필송홍섭김정위Discogs 14959991
1985들국화 『행진』조덕환, 최구희최성원주찬권한국어 위키백과 (음반 크레디트 전재)
1986한영애 1집오세은, 윤승태, 이정선, 김광석이수영배수연Discogs 15066362
1986들국화 2집최구희, 손진태 (일렉)최성원주찬권Discogs 6975761
1986어떤날 I이병우조동익안기승Discogs 9242435
1986시인과 촌장 『푸른 돛』함춘호, 이병우, 하덕규조동익김영석Discogs 6215869
1986부활 1집이지웅 (리드)김병찬황태순Discogs 8866692
1986시나위 1집 (2012 재발매)신대철박영배강종수Discogs 14341185
1987이문세 4집함춘호, 김광석, 이유신이수용배수연Discogs 33154440
1988신촌블루스 1집엄인호, 이정선, 윤명운김영진정태국Discogs 9242143
1988한영애 2집 『바라본다』박청귀, 엄인호송홍섭김희현경향신문 2007 (기사 서술)
1989이문세 6집김광석, 이유신이수용배수연Discogs 11366503
1989김현철 1집함춘호, 손진태조동익김희현Discogs 11145824
1989이원재 『혼자 내리는 비』함춘호, 윤명운, 이원재조동익김희현Discogs 24331718
1989장필순 1집함춘호, 손진태, 김의석송홍섭 · 조동익김희현 · 배수연Discogs 11497777
1989어떤날 II이병우조동익배수연 · 유영수Discogs 9242446 + 위키
1989신촌블루스 II이정선, 엄인호이원재정태국Discogs 9242519
1989김수철 『황천길』김수철신현권배수연Discogs 6215995
1989유영선 『And Connection』유영선—문영배Discogs 21554716

이문세 4집과 6집의 “김광석” 은 Discogs 가 “Kim Kwang Seok (2)” 로 구분한 다른 사람이라 가수 김광석과 다릅니다. 표에 없는 큰 음반이 많습니다. 김현식 1~5집, 조용필 1·2·3·5·8집, 봄여름가을겨울 1·2집, 빛과 소금 1집, 변진섭·이승철·동물원의 1집에는 기타 크레디트가 전사되어 있지 않아요. 최희선이 1980년대에 하루 20시간 있었다는 녹음실의 음반이 어느 것인지, 이 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자료에 대해#

이 편에서 가장 많이 기댄 것은 세 인터뷰입니다. 최이철의 2012년 채널예스와 2013년 세계일보, 함춘호의 2015년 채널예스, 그리고 손무현의 2026년 YTN 라디오예요. 최이철의 생년은 기사마다 달라 둘 다 적었고, 강근식의 생년은 2017년 아시아경제가 적은 나이 71세에서 역산한 것이라 “무렵” 을 붙였습니다. 위대한 탄생 3기 명단, 최구희의 뮤직파워 경력, 김태원의 1985년 이야기, 김도균의 발탁 경위는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있어 그렇게 밝혔습니다. 박청귀에 관한 기사는 두 건뿐이라 생년도 못 찾았고요. 곽경욱·김정수·손진태·김석규·이유신은 크레디트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녹음실의 기타리스트 가운데 가장 많이 친 사람이 가장 적게 남았을 가능성을 저는 배제하지 못합니다.

편주제
Part 1조건과 세 세대
Part 2 (이 글)1970년대와 80년대
Part 31990년대와 2000년대
Part 42010년대 이후
Part 5계보도와 리듬 섹션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