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션 기타리스트 계보 Part 3: 90년대와 2000년대
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1999년, 군에서 막 나온 스물넷의 홍준호는 IMF 한가운데서 앞날이 막막했습니다. 몇 년간 기타를 못 잡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요제에서 우승하고 프로덕션과 계약했던 경력은 이미 옛날 일이었죠. 그때 김현철이 그를 앨범 세션으로 불렀습니다. 2021년 인터뷰에서 그는 그날을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로 사력을 다해 준비해서 갔어요. 이번이 아니면 끝이라는 각오로 완벽에 또 완벽을 기해가며 목숨 걸고 준비를 할 정도였죠.
김현철은 그를 새로 만든 김현철밴드에 넣었고, 1년 뒤인 2000년부터 세션 의뢰가 여기저기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홍준호는 “(예의상) 절대 거절을 해선 안 된다” 는 철칙으로 전부 받았고, 아침 10시에 시작해 새벽 2~3시에 끝나는 날들이 2010년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2007년에는 월드투어 중 들어온 비(Rain)의 녹음 직전 사흘을 못 자고 작업하다 녹음실에서 기절해 응급실에 하루를 누워 있었고요. 2021년 기준으로 2만5천 곡. 이소라의 「Amen」 과 「제발」, 성시경의 「두 사람」 과 「거리에서」, 김동률의 「출발」, 폴 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이 그 손이었습니다.
이 편은 그 2000년대와, 그 앞의 1990년대를 씁니다. 1990년대에는 함춘호가 있었고 2000년대에는 홍준호가 있었다는 것이 당사자들이 한 말이에요. 그 사이에 밴드에서 세션으로 건너온 사람들과, 유학에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세션에서 다른 곳으로 걸어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1990년대의 A급, 함춘호#
서울경제가 2019년에 세션 시장을 설명하면서 쓴 문장을 다시 옮깁니다. “세션들의 꿈은 ‘A급’ 으로 업계에서 인정받는 것입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럼연주자 강수호처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과 라이브 연주실력을 보유해 인정받은 연주자들을 말합니다.” A급은 3시간 30분 녹음에 30만~50만 원을 받는다고 했죠. 이 기사가 든 기타의 이름이 함춘호 하나였습니다.
채널예스 2015년 인터뷰는 그의 전성기를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말까지” 로 잡고, 매년 차트 20위권 히트작의 기타를 도맡았다고 적습니다. 본인이 꼽은 자리는 이렇습니다. “‘이문세-이영훈’ 시대 앨범을 전부 참여했어요.” 김광석 3집 『나의 노래』 는 앨범 전체, 그중에서도 「나의 노래」. 신승훈의 「미소속에 비친 그대」 는 첫 테이크를 기억한다고 했고, 김종서의 「겨울비」 도 비슷했다고요. 한국어 위키백과의 세션 음반 목록에는 신승훈 1~6집, 김경호, 김원준, 토이의 『YOUHEEYEOL』 부터 『Fermata』 까지, god 와 보아와 박정현과 성시경이 올라 있는데 위키에만 있는 목록이라 그렇게만 적습니다.
Discogs 로 확인되는 것은 세 장입니다. 1996년 이소라 2집 『영화에서처럼』 의 7번과 8번 트랙, 1997년 토이 3집 『Present』 의 2·3·4·6·7·10번, 2001년 박효신 2집 『Second Story』 의 6번과 13번. 토이 음반에서 기타 자리를 나눠 가진 사람이 Sam Lee(9번)와 조삼희(10·12번), 그리고 런던 세션 John Parricelli 였고, 박효신 음반에서는 홍준호가 2·3·9·10·11번을 쳤습니다. 1990년대의 얼굴과 2000년대의 얼굴이 한 음반에 있는 셈이에요. 1990년대 조동익 사단의 기타가 “함춘호(기타), 손진태(기타)” 였다는 김학선의 서술은 Part 2 에 적었습니다.
세션 바깥의 자리도 있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연주자협회 회장을 6년째 맡고 있었고, 모토가 “연주자가 폼이 나야 한다” 였습니다. “힘든 만큼 좌절감에 빠지는 후배들이 많은데 자존감을 잃지 말고 대접받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음악인들도 세션을 돈 주고 쓰는 객체로 여기지 않고 대우해줘야 하고요.” 2021년 KBS 「아침마당」 에서 한영애가 우리나라에서 세션을 제일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공식적으로는 모르겠는데 속으로는 ‘나는 기네스감이다’ 라고 생각한다” 고 답했습니다.
최희선, 1993년부터의 자리#
1993년 최희선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들어갔습니다. 1994년 15집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의 크레디트가 기타 최희선, 베이스 이태윤, 드럼 김희현, 키보드 한정호, 피아노 최태완이에요. 베이스 시리즈에서 이태윤이 1993년부터 지금까지라고 적었는데, 기타 쪽 이태윤이 최희선입니다. 2013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내 청춘을 다 바친 밴드죠. 얻은 게 너무 많아, 기타리스트로서 난 참 행복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해요” 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 밴드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는 2026년 영남일보에 있습니다.
예전엔 ‘잘 치는 기타리스트’ 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리도 세고, 빠르고, 정확하고 완벽해야 했어요. 제 별명이 ‘면도날 오차’ 도 허용하지 않는 기타리스트였으니까요.
이전의 연주가 서슬 퍼런 날 선 칼이었다면 조용필을 만난 뒤 그 칼을 쓰는 법을 배웠다고, 목표로 하는 지점을 정확히 찌르는 절제의 미덕을 깨달았다고 그는 이어 말했습니다.
1980년대에 하루 20시간 녹음실에 있던 사람이 1990년대에 한 밴드의 기타로 자리를 옮기면서 절제를 배웠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절제가 어떤 것인지는 공연 뒤의 ‘복기’ 와 “아무리 연주가 뛰어나도 그걸 듣는이에게 배달하는 음향 전반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말짱 꽝” 이라는 말이 설명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26년 동안 조용필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몇 번밖에 없다고 했고, 교수직 제안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건 곧 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이라는 이유였어요. 2005년과 2018년의 평양 공연에 모두 섰고, 2009년부터 길모어의 시그니처 기타가 다섯 종 나왔습니다.
밴드에서 세션으로#
1990년대 세션 기타의 상당수는 1980년대 록 밴드에서 왔습니다. 길은 제각각이에요.
이근형은 작은하늘과 카리스마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2023년 뉴시스 인터뷰에서 세션의 계기를 두 번 말했어요. 하나는 1992년 신성우 1~3집의 제작을 총괄하면서 “신성우의 인기로 이근형에게 세션 제안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는 것(이건 스포츠한국의 서술), 다른 하나는 본인 말로 “세션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작곡가 윤일상 씨에요. 일상 씨가 김태영 씨의 곡을 썼고 제가 기타 솔로 부분을 연주했거든요” 입니다. 그 뒤가 임재범의 「고해」 와 「너를 위해」, 김범수의 「보고 싶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 김건모의 「서울의 달」, 윤도현의 「오 필승 코리아」. 모두 기사 서술이고 크레디트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자기 자리를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제 위치가 록 연주자와 세션 연주자들 사이에 있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제 색깔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어요. 복잡한 테크닉을 연주하는 사람은 가요의 간략하고 담백한 걸 갈망할 때가 있고, 가요 연주자들은 반대로 테크닉을 갈망하죠.
스튜디오 뮤지션들이 펜더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는 말도, 공연 세션은 “가수 뒤에 병풍처럼 서서 연주한다는 게 싫어서” 줄곧 고사한다는 말도 2020년 스포츠한국에 있습니다. 그 세션 기타리스트가 베이시스트 장태웅의 스승이고(베이스 시리즈 Part 4), 2013년에는 신현권·김민기와 S.L.K 를 만들었습니다.
신대철은 반대로 갔습니다. 1990년 시나위 4집 『Four』 의 크레디트가 기타·키보드 신대철, 베이스 서태지, 드럼 오경환이고, 그 밴드가 해체된 뒤 1990년대 초에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기타 세션을 시작” 했습니다. 하루에 세 군데에서 연주할 만큼 잘 팔렸고 밴드 때보다 돈을 더 벌었는데, Part 1 에 옮긴 대로 라디오에서 자기 기타를 듣고 기억이 안 나는 날 그만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기타 세션이었다는 서술은 위키에만 있습니다.
손무현은 세션에서 프로듀서로 갔습니다. 1987년 외인부대로 데뷔해 1990년 김완선 5집을 만들었고, 2026년 YTN 에서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 는 “제가 직접 프로그램을 해가지고 제가 기타만 좀 친 것밖에 없어요” 라고 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내 모든 것」 을 쳤고 「난 알아요」 도 쳤는데 “그게 썼는지 안 썼는지 모르겠는데” 라고요. 1999년 『주유소 습격 사건』 부터 영화음악을 했고, 20년 동안 실용음악과에서 가르쳤습니다.
김세황은 1994년 N.EX.T 에 들어가 1997년까지 있었고 1999년 김영석·이수용과 노바소닉을 만들었습니다. 1990년대 세션으로 이소라 2·3집, 전람회 2집, 김동률 1집, 신승훈 6집이 위키의 목록에 있는데, Discogs 로 확인되는 것은 이소라 2집 2번 트랙의 “Kim Sehwang: Electric Guitar” 하나입니다. 신윤철은 1988년 1집, 1994년 송홍섭의 송스튜디오에서 만든 3집 『명태』, 1995년 한영애의 『불어오라 바람아』 를 거쳐 원더버드와 서울전자음악단으로 갔습니다. 세션 기록은 위키 말고는 없어요.
박창곤·노경환·이성렬은 1990년대에 들어와 2000년대에 가수 밴드의 기타가 된 사람들입니다. 박창곤은 1993년 김민석의 「거리에서」 앨범으로 녹음 세션을 시작해 1997년 김경호밴드, 2003년부터 이승철밴드의 기타이자 밴드마스터가 됐고, 좌우명이 “항상 준비하자” 입니다. 김경호밴드에 들어갈 때 공연이 열흘도 안 남은 상태에서 30곡 가까이를 카피해 외웠다고 해요. 노경환은 1994년 제1회 MBC 록 콘테스트 대상, 1995년 2000K 데뷔, 1998년 안재욱 3집과 삼성 매직스테이션 광고로 세션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친구 타미킴이 “이번 주는 크래쉬, 다음 주는 이현우밴드, 또 다음 주는 포지션” 으로 뛰는 걸 보며 메틀과 가요를 같이 하기로 했다고요. 이성렬은 1991년부터 생활을 위해 밤무대에 섰고, ‘사군자’ 라는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선배가 추천해 푸른하늘 공연의 세션이 됐으며, 1992년 푸른하늘 음반이 첫 녹음 세션이었습니다. 1999년까지 1년간 이승철 밴드에 있었고, 세션이 많을 때는 하루 4프로, 1프로당 3시간 반이니 14시간을 녹음실에 있었습니다. “집중하고 정성이 들어가야 함에도 양적으로 많아지다 보니, 결국 일을 줄이게 됐어요. 하루 2프로까지만 하자고 다짐한 거죠.”
유학과 재즈에서 온 사람들#
1990년대에 이 세대의 한 갈래가 미국으로 갔습니다. 정수욱은 1992년 건너가 1993년 버클리에 들어갔고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믹 굿릭과 존 애버크롬비에게 배웠습니다. 돌아와 엔이큐 같은 밴드를 하면서 신효범·전제덕 등 500곡 넘게 세션을 했고 2015년부터 호원대 전임교수예요. 베이스 시리즈에서 서영도의 오랜 동료로 나온 그 기타리스트입니다. “기타는 앰프에 연결해 쳐야 한다” 는 말이 2020년 인터뷰에 있습니다.
찰리정은 1999년 LA 로 가 2000년 GIT 에 들어갔고, 2003년부터 2년 동안 테드 그린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음악적 정신적인 차원에서 그분은 내 음악 인생 유일의 멘토입니다.” 테드 그린이 레슨비 25달러를 고집했다는 이야기, 그 마음을 자기도 모르게 지키게 됐다는 이야기가 2019년 기사에 있어요. 조윤성 트리오를 거쳐 2006년 돌아와 서울재즈아카데미와 호원대에서 가르쳤습니다.
박주원은 국내에서 자란 쪽입니다. 1999년 서울예대에 들어가 한상원에게 배웠고, 해군 홍보단 복무 중이던 2004년 말년 휴가에 송홍섭을 만났습니다. 임재범 컴백 공연의 기타를 찾던 송홍섭이 첫 만남에 그를 낙점했고, 제대와 동시에 그해 10월 임재범 복귀 공연에 섰어요. 2005년 『맘마미아』, 2006년 조성모 일본 공연, 2007년 성시경 투어, 2008년 신승훈 세션. 그리고 2009년 첫 솔로 『집시의 시간』 을 내고 마포아트센터의 첫 공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대에선 프론트맨(메인)과 사이드맨(보조)의 거리가 불과 3m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저는 사이드맨에서 메인으로 가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세션에서 앞으로 나간 사람의 말로 이만한 문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병우는 더 멀리 갔어요. 1996년 『세 친구』 이후 『마리이야기』, 『장화, 홍련』, 『왕의 남자』, 『괴물』, 『마더』 까지 30편 가까운 영화의 음악감독이 됐고(연합뉴스 2024), 2010년 성신여대 교수가 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 송홍섭 사단의 세션 기타가 1990년대에는 기타를 들고 영화관으로 간 거죠. 예레미의 조필성이 2020년에 한 말도 여기 둡니다. “기타리스트가 좀 더 전면(프론트)에 나섰으면 좋겠어요. 모두 가요 세션 등을 이유로 뒤에 숨어서 연주하고 있는 거죠.”
녹음실의 다른 손들#
크레디트를 읽다 보면 인터뷰가 없는 이름이 더 많습니다. 이소라 2집의 기타는 함춘호만이 아니라 1·5번의 조규만, 4번의 한상원, 6번의 조규찬, 9번의 이태준이었고, 조규만과 조규찬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로 홍준호가 “디테일의 중요성을 느끼고 또 느끼게” 해 준 두 사람입니다. 토이와 박효신 음반의 Sam Lee, 박효신 음반 1·7번의 Tony Maiden 과 Michael Thompson, 1995년 이승환 『Human』 과 1997년 『Cycle』 의 Dean Parks 와 Michael Thompson 은 해외 세션이에요. 1990년대 A급 가수의 음반에서 기타 자리가 국내 세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기록입니다.
2026년 6월 세상을 떠난 이정우(JW)의 부고도 적어 둡니다. 데일리안에 따르면 1971년생인 그는 “스무살 때부터 이문세 이승철 김건모 등의 세션맨으로 활동했고” 밴드 쿠바를 이끌었으며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최고의 세션맨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부고 하나뿐이라 이 이상은 모릅니다. 이런 이름이 이 시대에 더 있을 겁니다.
크레디트로 확인된 음반#
| 연도 | 음반 | 기타 | 베이스 | 드럼 | 출처 |
|---|---|---|---|---|---|
| 1990 | 시나위 『Four』 | 신대철 | 서태지 | 오경환 | Discogs 7348407 |
| 1994 | 조용필 15집 | 최희선 | 이태윤 | 김희현 | Discogs 17801476 |
| 1995 | 이승환 4집 『Human』 | Dean Parks, Michael Thompson | Leland Sklar, Freddie Washington | John Robinson, Ed Greene | Discogs 14540161 |
| 1996 | 이소라 2집 | 조규만 (1·5), 김세황 (2), 한상원 (4), 조규찬 (6), 함춘호 (7·8), 이태준 (9) | 조동익 · 이태윤 · 최원혁 · Chris Banks | 김영석 외 | Discogs 5930061 |
| 1997 | 이승환 5집 『Cycle』 | Dean Parks, Michael Thompson | Leland Sklar, Neil Stubenhaus | Carlos Vega 외 | Discogs 14531799 |
| 1997 | 토이 3집 『Present』 (2001 재발매반) | 함춘호 (2·3·4·6·7·10), Sam Lee (9), 조삼희 (10·12), John Parricelli | 신현권 · 이태윤 · 서영도 · Phil Mulford | 김영석 · 강수호 · 이상훈 · Brett Morgan | Discogs 6340726 |
| 2001 | 박효신 2집 『Second Story』 | 홍준호 (2·3·9·10·11), 함춘호 (6·13), Sam Lee (4·5·8·12), Tony Maiden · Michael Thompson (1·7) | 이태윤 (2), 윤상 (3·10), 신현권 (4·6·8·12·13), Larry Kimpel, Nathan East | 강수호 (2·3·6·9·10), Ricky Lawson | Discogs 14707237 |
| 2009 | 박주원 『집시의 시간』 | 박주원 | — | — | 스포츠한국 2018 |
1990~2000년대의 다른 음반들, 이승환 1~3집, 장필순 4·5집, 시나위 2집, 이승철 2집, 김동률 1~3집, 015B, 김현철 2·3집, 전람회, 신윤철 3집에는 Discogs 에 연주자 크레디트가 없습니다. 함춘호의 “이문세-이영훈 시대 앨범 전부”, 이근형의 「고해」, 홍준호의 「두 사람」 은 당사자의 말로만 남아 있어요.
자료에 대해#
이 편의 뼈대는 스포츠한국 「기타신공」 의 인터뷰들입니다. 홍준호(2021), 이근형(2020), 최희선(2019), 이성렬(2023), 노경환(2024), 박창곤(2019), 정수욱(2020), 찰리정(2019), 박주원(2018), 조필성(2020). 여기에 함춘호의 2015년 채널예스, 이근형의 2023년 뉴시스, 신대철의 2011년 방송, 손무현의 2026년 YTN 을 더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본인이 말한 세션 곡은 크레디트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라 전부 본인 진술이나 기사 서술로 읽어 주셔야 합니다. 함춘호와 김세황의 1990년대 세션 음반 목록, 신대철의 서태지와 아이들 세션, 신윤철과 이상순의 활동은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있어 그렇게 적었습니다. 토이 『Present』 는 1997년 음반인데 Discogs 에는 2001년 재발매반만 크레디트가 있어 둘 다 적었습니다.
| 편 | 주제 |
|---|---|
| Part 1 | 조건과 세 세대 |
| Part 2 | 1970년대와 80년대 |
| Part 3 (이 글) | 1990년대와 2000년대 |
| Part 4 | 2010년대 이후 |
| Part 5 | 계보도와 리듬 섹션 |
References#
- 조성진, 「홍준호, ‘타고난 DNA’ 뼛속까지 세션맨」, 스포츠한국 (2021-03-05)
- 한민구, 「‘A급’ 세션 맨을 향해」, 서울경제 (2019-07-27)
- 임진모·이기찬, 「기타리스트 함춘호 인터뷰」, 채널예스 (2015-11-17) · 전예슬, 「‘아침마당’ 함춘호 “난 기네스감”」, 셀럽미디어 (2021-10-26)
- 이연정, 「‘가왕’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연합뉴스 (2013-03-22) · 조성진, 「최희선」, 스포츠한국 (2019-10-17) · 이하수, 영남일보 (2026-05-02)
- 이재훈, 「신대철·김도균·김태원 그리고 이근형이 있었다」, 뉴시스 (2023-04-02) · 조성진, 「이근형」, 스포츠한국 (2020-08-17)
- 방정훈, 「‘놀러와’ 신대철」, 엑스포츠뉴스 (2011-10-04)
- 김세령, 「손무현 교수 인터뷰」, YTN 라디오 (2026-07-01)
- 조성진, 「‘이승철밴드’ 박창곤」, 스포츠한국 (2019-12-05) · 「노경환」 (2024-08-23) · 「이성렬」 (2023-05-11)
- 조성진, 「정수욱, ECM이 인정한 ‘월드 클래스’ 기타리스트」, 스포츠한국 (2020-11-10) · 「찰리정」 (2019-12-22) · 「박주원, 클래식 기타와 집시의 만남」 (2018-04-04) · 「조필성」 (2020-02-01)
- 최재서, 「기타리스트 이병우, 뉴욕 공연」, 연합뉴스 (2024-02-27)
- 유명준, 「기타리스트 이정우(JW) 별세」, 데일리안 (2026-06-05)
- 김학선, 「80년대 한국 가요를 떠받친 위대한 편곡가 이호준」, 프레시안 (2024-03-09)
- 한국어 위키백과, 함춘호 · 김세황 · 신대철 · 신윤철 · 손무현 · 이병우 · 이상순
- Discogs, 시나위 『Four』 · 조용필 15집 · 이승환 『Human』 · 이소라 2집 · 이승환 『Cycle』 · 토이 『Present』 · 박효신 『Second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