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1994년 더 클래식 1집이 130만 장을 팔았습니다. 「마법의 성」 의 그 음반이에요. 30년 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건반이었던 박용준이 그 해를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마법의 성’은 성공했지만, 살인적인 세션 스케줄 때문에 쪽잠 자며 녹음실을 전전하는 생활이 달라지진 않았다.” 밀리언셀러의 멤버가 다음 날 아침 남의 음반 녹음실에 앉아 있는 것. 1990년대 세션 키보디스트의 자리가 이 한 문장에 있습니다. 이 편은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과, 같은 시기에 그 자리를 컴퓨터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조동익 곁의 두 건반, 박용준과 김현철#

김학선은 프레시안에서 1990년대의 중심에 조동익이 우뚝 서 있고 그 곁에 “함춘호(기타), 손진태(기타), 박용준(건반), 김현철(건반), 김영석(드럼)” 이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 두 건반부터 적습니다.

박용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누나의 피아노를 어깨너머로 보다가 중2 때 삼익기타를 샀습니다. 기타리스트로서 롤모델이 함춘호였다고 2022년 스포츠한국에서 말했는데, 결국 피아노를 독학했고 총신대 작곡과를 다니다 그만뒀어요. 특이한 건 그다음입니다. SM 이 잠실 삼전동에 있던 시절 한동준 음반 녹음에 서브 엔지니어로 참여했고, 이수만이 열심히 하라며 아타리 ST 컴퓨터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1991년 한동준 앨범을 준비하던 때 이수만의 소개로 김광진을 만났고, 김광진은 그를 “미디, 신디사이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자” 로 기억했습니다. 엔지니어링과 미디를 아는 건반 연주자. 그게 더 클래식이 됐죠.

그런데 본인이 더 길게 말한 건 더 클래식이 아니라 세션이었습니다. 이승환 밴드에서 건반으로 6년을 쳤고, 1990년대 초 대학로 소극장 장필순 공연에서는 연주 중 피아노에서 잠이 들었다고 했어요. 조동익에 대해서는 정말 철학적인 뮤지션이라고 했고, 함춘호에 대해서는 이렇게요. “악보만 주는 데에도 그걸 음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정말 엄청납니다.” 크레디트로 남은 건 1996년 이소라 2집의 1번과 7번(피아노와 펜더 로즈), 1997년 토이 『Present』 의 6번과 7번입니다. 야마하 DX7 을 20년 넘게 썼다고 했고, 일본 장비는 1년쯤 쓰면 톤이 지루해진다고도 했어요. 2024년 더 클래식 30주년 공연의 밴드가 박용준·신석철·이성렬·민재현이었고, 2021년 12월부터는 임영웅 밴드의 밴드마스터입니다. “조동진밴드 멤버에서 임영웅밴드 마스터로, 남들이 보기엔 위치가 달라졌겠지만 음악을 대하는 내 마음은 한결같다” 는 말로 그 인터뷰가 끝납니다.

김현철은 Part 2 끝에서 1989년 스무 살로 등장했고, 1990년대에는 편곡자이자 밴드 리더로 더 자주 나옵니다. 1993년 3집의 편곡이 김현철이고, 1999년 김현철 앨범이 홍준호의 첫 세션 레코딩이었어요. 홍준호는 “정말로 사력을 다해 준비해서 갔어요. 이번이 아니면 끝이라는 각오로” 라고 했고, 김현철은 새로 결성한 밴드에 그를 넣었습니다. 그 김현철밴드의 건반이 대학생 강화성이었다는 게 2021년 강화성 기사에 있어요. 2024년 고영환은 김현철의 곡을 두고 국내 작곡가 중 가장 완벽한 구조를 자랑해서 곡을 바꾸지 않는 게 가장 좋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건반 연주자들이 건반 연주자 출신 작곡가를 평가하는 말이라 더 믿음이 갔어요.

Programmed By, 유희열과 윤상#

1990년대 음반 크레디트에 새 항목이 생깁니다. Programmed By. 1995년 이승환 『Human』 에서 유희열은 9번과 10번 트랙의 편곡자이자 Programmed By 로 적혀 있고, 그 음반의 건반은 Greg Mathieson·Jon Gilutin·Randy Waldman, 베이스는 Leland Sklar, 드럼은 John Robinson 입니다. LA 세션의 연주와 서울의 프로그래밍이 한 음반에 있는 거죠. 1997년 『Cycle』 에서는 Keyboards, Programmed By 로 올라 있고, 같은 해 토이 『Present』 에서는 피아노·키보드·리듬 프로그래밍이 유희열, 세션이 함춘호·조삼희·신현권·이태윤·서영도·김영석·강수호에 건반 박용준(6·7번)과 정원영(10번 피아노와 오르간)입니다.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이 음반을 만들고, 그 위에 세션이 연주를 얹는 구조가 여기서 보입니다.

유희열이 세션 키보디스트였다는 기사는 못 찾았습니다. 2021년 오마이뉴스가 그를 김장훈이 결성한 밴드 한국사람의 멤버였다고 썼고,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에서 세션맨들을 무대 앞에 세우며 본인이 “역시 세션으로 음악을 시작한” 사람으로 소개된 정도예요. 그래도 그가 편곡자로 일하는 방식은 송성경이 2021년에 전했습니다. 편곡의 지루함을 특히 싫어해서 이어지는 연주 중 잠시라도 변화를 줘야 하고, 디테일이 엄청 강하며, 지금도 태블릿이 아닌 종이 오선지에 악보를 그려 와서 주문한다고요.

윤상은 미디 1세대로 불립니다. 전자음악사 저자가 “한국 전자음악 1세대라고 하면 보통 1990년대 윤상, 서태지 같은 미디 1세대를 얘기하는데” 라고 했고, 1987년 50만 원짜리 중고 카시오 CZ-5000 이 첫 신디사이저였다는 이야기는 앞 편에 적었어요. 1980년대 말 김완선 4집의 백밴드 실루엣에서는 베이스였고(기타는 손무현), 크레디트로 확인되는 건 2001년 박효신 『Second Story』 의 2번 트랙 “Arranged By, Computer, Keyboards: 윤상” 과 3번의 작곡·편곡·컴퓨터·베이스·키보드입니다. Computer 가 악기 이름처럼 크레디트에 적히는 시대였습니다.

이 변화를 당대에 기록한 기사는 찾지 못했고, 당사자들의 회고는 2010년대 이후에 나옵니다. 이근형은 1992년 신성우 1집의 「내일을 향해」 를 미디로 찍어서 만들었다고 2023년에 말했고, 손무현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 사람이 연주하는 게 거의 없다고 했죠. 신현권은 2016년 스포츠경향에서 “컴퓨터 음악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미디’의 유행으로 연주자의 설 자리가 차츰 줄어드는 것이 요즘의 음악계” 라며, 지금의 진짜 연주는 비용이 들고 불편한 것일 뿐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태윤은 2024년에 “거의 모든 작업방식이 컴퓨터 위주라 아쉬움도 있죠” 라고 했고요. 건반 쪽에서는 강화성의 말이 제일 구체적이었습니다. 기타 솔로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음을 하나하나 찍어서 세션맨에게 의뢰할 만큼 꼼꼼하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편곡자는 미디보다 기타·피아노 같은 실제 악기를 다루며 곡을 쓰는 연습을 하라고 했거든요. 음을 찍는 사람이 악기를 치라고 하는 것. 1990년대 이후 건반 자리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위대한 탄생 5기와 6기#

1994년 조용필 15집의 크레디트는 Keyboards 한정호, Piano 최태완, Bass 이태윤, Drum 김희현, Guitar 최희선입니다. ize 는 2024년에 이 음반을 “밴드로서 협업” 을 들려준 15집이라고 했어요. 한정호는 이 둘 말고는 자료가 없는 이름입니다. 1998년 무렵 이종욱이 들어와 최희선·이태윤·최태완·김선중·이종욱의 6기가 됐고, 스포츠동아는 2018년에 이 다섯이 20년째 현역이라고 썼습니다. 2005년 평양 공연 기사에 “건반 이종욱, 드럼 김선중, 피아노 최태완, 베이스 이태윤” 이 있고, 2023년 55주년 공연과 2024년 공연에도 같은 두 건반이 있어요. 조용필의 밴드는 피아노와 키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둘로 나눠 앉혔습니다.

최태완은 밴드 밖에서도 보입니다. 2005년 유열 리메이크 음반의 세션에 배수연·신현권·강수호와 같이 있고, 2020년 이성렬 『Color of Dream』 의 건반이 최태완과 길은경이에요. 융스트링 악장 김미정은 2024년에 “김형석, 최태완, 박인영 등이 편곡한 악보는 지금도 여전히 훌륭합니다” 라고 했고, 최태완이 호텔에서 건반 없이 오선지에 4성부를 그려 가며 편곡한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탄생의 피아노가 편곡자였다는 이야기라서 Part 1 에 먼저 썼습니다.

피아노 세션에서 작곡가로, 김형석과 그 뒤#

김형석은 2020년 「라디오스타」 에서 김광석의 「너에게」 를 작업하며 처음으로 피아노 세션에 참여해 어려움을 겪었고, 김광석에게 음악을 포기할까 보다,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고 했습니다. 김광석의 답이 “그래 늦지 않게 다른 거 해 봐” 였다고요. 그 사람이 1989년 인순이의 「이별연습」 으로 작곡을 시작해 1990년대 발라드의 작곡가가 됐고, 2009년 연합뉴스에서 작곡가 이현승은 어린 시절 산 음반 재킷 크레디트에 “작곡, 피아노 모두 김형석이라는 이름이 빼곡했다” 고 했습니다. 1996년 이소라 2집 3번 트랙의 피아노와 신디사이저가 김형석이고, 1994년 전람회 1집을 유재학·신해철과 공동 제작했다는 건 위키백과에 있어요. 박진영의 스승으로도 불립니다.

김동률은 전람회의 피아노였지만 Discogs 에는 전람회 1·2집도 솔로 음반도 연주자 크레디트가 없어서, 이 시리즈에서는 피아노 치는 싱어송라이터로만 적습니다. 1997년과 1998년 자화상의 건반은 나원주였고, 나원주는 2005년 유열의 「그대와 영원히」 를 편곡했으며 2018년 기사에는 “현재 한국 최고의 스튜디오 세션” 으로 어쿠스틱 피아노를 친다고 나옵니다. 2014년 김동률 6집 「동행」 의 피아노가 나원주였다는 것도 김동률의 작업기를 인용한 기사에 있어요. 자화상의 다른 한 사람 정지찬은 2011년 「나는 가수다」 의 음악감독이 됐는데 건반 연주자라는 기록을 못 찾아 명단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1988년부터 세션을 한 김우진이라는 이름도 적어 둡니다. 2026년 10월 스포츠경향이 첫 솔로 음반 소식을 전하면서 40년간 500곡을 작사·작곡·편곡하고 키보디스트로 1,500곡의 실연에 참여했다고 썼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과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편곡이 그의 것이라고 했어요. 1990년대 댄스 음악의 편곡자 중에도 건반 연주자가 있었다는 증거로 남겨 둡니다.

중학생 정재일#

정재일은 1982년생입니다. 1995년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재즈아카데미 1기생으로 들어갔고, 가계를 도와야 해서 한상원의 제안으로 한상원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1997년 「나쁜 영화」 OST 세션, 1998년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OST 에서 건반과 기타 세션, 같은 해 언니네 이발관 2집 『후일담』 의 키보드와 베이스. 1999년 열일곱에 이적·정원영·한상원이 있던 긱스의 베이시스트가 됐습니다. 2023년 데카에서 음반을 내며 기자회견을 했을 때 뮤지션을 꿈꾼 적은 없다고 했어요. “그저 중학생이 경제생활을 하기가 힘든데 어떤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잡고 싶은 절실함이 (당시)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요.

음악을 사랑했으나 시작은 노동이었다. 지금도 예술이라는 게, 수많은 노동 중의 하나라고 본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결여된 근면함이나 책임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해 국민일보에서는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잠깐 다닌 뒤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며 “근본 없이 음악을 했기 때문에 새롭게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고 했습니다. 2003년 싱어송라이터로 낸 「눈물 꽃」 이 역량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했고 그 뒤 20년을 다른 예술가들을 보필하는 역할로 보냈다고요. 긱스에서 같이 한 정원영이 1980년의 석기시대 사람이니, 1990년대 말 열일곱의 정재일은 1세대와 한 무대에 있었던 셈입니다. 요즘 제가 눈여겨보는 건반 연주자가 이 사람인데, 그 이야기는 Part 4 에서 합니다.

2000년대, 가수의 밴드로#

2000년대 건반 연주자들의 이력에는 공통된 문장이 있습니다. 누구의 밴드에 들어갔다. 고영환은 서울예대 95학번으로 재학 중 봄여름가을겨울 공연 세션으로 데뷔했고, 제대 후 송홍섭의 「송2」 로 레코딩 세션을 시작한 뒤 2001년 이승환 밴드에 막내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뮤지션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팀이었다고요. 2006년 조성모 밴드의 밴드마스터와 비의 투어 건반, 2007년 박진영 밴드. 비의 라스베이거스 리허설에서 박진영을 처음 만났고 밴드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2024년에 말했습니다. 장지원은 1996년 서울예대에 들어가 1학년 때부터 조규찬이 진행하던 EBS 프로그램의 하우스밴드로 2년을 쳤고, 김도균·신대철·김태원의 G3 프로젝트에 건반으로 들어간 걸 계기로 부활의 건반이 돼 20년을 넘겼습니다. 「생각이 나」 의 전주와 후주는 김태원이 아련한 느낌이 묻어나게 알아서 해 보라고 해서 자기가 만든 거라고 했어요.

강화성은 서울예대 2학년 때 작곡한 「낯선 시간 속의 너」 가 SBS 드라마 「해피 투게더」 OST 에 들어갔고 대학생으로 김현철밴드의 건반이었습니다. 2001년 밀크의 「Come to Me」 를 썼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My Angel」 이 분기점이 됐으며, 2007년부터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프로듀서이자 편곡자예요. 나얼의 「기억의 빈자리」 에서 시카고 사운드를 응용해 4마디 신스 브라스 솔로를 넣었고 나얼이 처음 듣고 너무 좋아했다는 일화가 2021년 기사에 있습니다. 이환은 1980년생으로 22살에 클래식에서 대중음악 피아노로 전향해 채수영의 저스트블루스로 데뷔했고, 2004년 심신 콘서트 반주로 세션을 시작해 전인권·들국화·박창근·조성모의 밴드를 거쳤습니다. 레코딩보다 공연 세션을 많이 하는 현장형 연주자라고 2025년 기사가 소개했어요.

2000년대 끝에 송성경이 있습니다. 1986년생, 아버지는 MBC 관현악단 기타리스트 송만호. 중3 때 딥 퍼플 라이브의 존 로드를 듣고 키보디스트가 되기로 했고 150만 원짜리 하몬드 오르간을 샀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 정원영에게 개인 레슨을 받으며 빌리 프레스턴을 알게 됐고, 2005년 서울예대 전체 수석으로 입학해 같은 해 열아홉에 김조한 무대에서 건반 세션으로 데뷔했어요. 2006년 산울림 공연 세션, 2009년 비의 아시아 투어. 24곳을 도는 그 투어가 건반 두 대에 기타·베이스·드럼·코러스까지 100% 리얼 연주를 고집해 화제가 됐다고 본인이 말했습니다. 미디로 반주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에 리얼 연주를 고집하는 게 뉴스가 되는 것, 그게 2009년의 자리였습니다.

음반연도건반프로그래밍·편곡
조용필 151994한정호 (키보드)·최태완 (피아노)
이승환 『Human』1995Greg Mathieson·Jon Gilutin·Randy Waldman·이승환유희열 (9·10 편곡, Programmed By)·남정호·최진우
이소라 2 『영화에서처럼』1996박용준 (1·7)·김광민 (2)·김형석 (3)·조규찬 (5)·박혜성 (9)원창준·최정현 (프로그래밍)
이승환 『Cycle』1997유희열·남정호·최진우·이승환·Jon Gilutin유희열 (Programmed By)
토이 『Present』1997유희열·박용준 (6·7)·정원영 (10)유희열 (리듬 프로그래밍)
박효신 『Second Story』2001윤상 (2·3 Computer, Keyboards)·이승환·박성일·최재은·홍성규윤상

자료에 대해#

1990년대 음반은 속지에 이름이 있어도 Discogs 에 없는 게 많습니다. 토이 1집, 전람회 1·2집, 김동률 솔로, 윤상 1집, 정원영 1집, 김광민 1집, 김현철 3집은 연주자 크레디트가 없어서 당사자의 말로만 적었고, 그래서 유희열과 윤상의 1990년대는 1995년과 2001년의 크레디트로 앞뒤를 짚었습니다. 한정호는 Discogs 와 ize 기사 외에 자료가 없고, 이종욱은 라인업 기사만 있어 합류 연도를 “20년째(2018)” 에서 역산했습니다. 김형석의 「너에게」 일화는 방송 발언을 요약한 기사라 2차 자료예요. 김현철밴드 1999년 건반이 강화성이었다는 건 연도가 기사에 명시되지 않아 “대학생 때” 로만 썼습니다. 미디가 세션을 대체했다는 1990년대 당대 기사는 찾지 못해, 그 이야기는 전부 2016년 이후의 회고입니다. 황성제처럼 편곡자로는 자주 꼽히지만 건반 연주자라는 확인이 없는 이름은 넣지 않았습니다.

편주제
Part 1조건과 세 세대
Part 21970년대와 80년대
Part 3 (이 글)1990년대와 2000년대
Part 42010년대 이후
Part 5계보도와 네 자리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