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laude Opus 5.5 를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

Rogue 의 공식 설명서 “A Guide to the Dungeons of Doom” 에는 저장에 관한 규칙이 하나 적혀 있습니다. 저장해 둔 게임을 다시 불러오면 그 저장 파일은 곧바로 지워집니다. 만든 사람들은 이유도 직접 달아 두었습니다. 위험한 상황 바로 앞에서 저장해 두었다가, 죽으면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 하는 일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로그라이크(roguelike)라는 말은 “Rogue 같은"이라는 뜻입니다. 장르 이름에 게임 한 편의 이름이 박혀 있으니, 정의를 따지기 전에 그 게임부터 보는 편이 빠릅니다. 저장 파일을 지우는 저 한 줄이 그 출발점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1980년 무렵 UC 산타크루즈의 학생 Michael Toy 와 Glenn Wichman 은 둘 다 텍스트 게임 Adventure 에 빠져 있었습니다. 동굴을 글로 묘사해 주면 명령어를 쳐서 퍼즐을 푸는 게임입니다. 퍼즐은 만든 사람이 미리 짜 둔 것이라, 답을 한 번 알고 나면 다시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Toy 는 2009년 Edge 인터뷰에서 텍스트 어드벤처 작가가 겪는 슬픈 발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게임은 답을 다 알기 때문에 정작 자기는 즐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Wichman 이 1997년에 쓴 회고 “A Brief History of Rogue” 는 두 사람이 찾은 해법을 짧게 적습니다. 던전을 사람이 짜지 말고 프로그램이 짓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만든 사람도 매번 처음 보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Wichman 은 이것을 Rogue 의 가장 큰 기여이자 80년대 초에 인기를 끈 이유로 꼽았고, Toy 와 Arnold 의 설명서도 보통의 판타지 게임은 퍼즐을 다 풀면 재미가 사라지지만 Rogue 는 할 때마다 새 던전을 만든다고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림은 글자로 그렸습니다. 버클리 학생 Ken Arnold 가 만든 curses 라이브러리 덕분에 화면의 원하는 칸에 문자를 찍을 수 있었고, 두 사람은 문자와 기호로 지도를 흉내 냈습니다. 플레이어는 @, 몬스터는 알파벳 대문자, 물약은 !, 두루마리는 ?, 계단은 % 였습니다. 명령은 키 하나나 둘, 키를 한 번 누르는 것이 한 턴이었습니다. 던전은 가로세로 세 칸씩 아홉 칸의 격자에 방을 최대 하나씩 놓는 방식으로 정착했습니다. Wichman 은 방이 어디든 몇 개든 놓이는 자유로운 배치를 원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회고했고, 방이 서로 이어지지 않아 계단에 갈 수 없는 버그도 한동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목표는 던전 깊은 곳에서 Amulet of Yendor 를 가지고 살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Yendor 는 Rodney 를 거꾸로 쓴 이름인데, 2009년 Edge 기사에서 Jon Lane 은 Rodney 가 실존 인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Toy 는 처음에 이 부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플레이어들이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것을 보고 이기는 것이 친구에게 자랑할 만한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Toy 는 1982년 버클리로 옮겼고, 거기서 Arnold 가 개발에 합류했습니다. 설명서의 감사 글은 Rogue 를 처음 구상한 사람을 Wichman 과 Toy 로 적고, Arnold 와 Toy 가 인터페이스를 다듬고 기능을 크게 늘렸다고 씁니다. Rogue 는 버클리의 유닉스 배포판 BSD 에 실려 대학가로 퍼졌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판은 1983년 8월의 4.2BSD 이고, Wichman 은 그 뒤 3년쯤 Rogue 가 대학 캠퍼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었다고 썼습니다. 유닉스를 만든 Dennis Ritchie 가 Rogue 를 두고 역사상 가장 많은 CPU 시간을 낭비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Lane 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Rogue 가 무작위 던전을 처음 떠올린 게임은 아닙니다. 1975년 무렵 일리노이 대학의 PLATO 시스템에는 이미 pedit5 와 dnd 같은 던전 게임이 있었고, 1978년 Apple II 용 Beneath Apple Manor 도 던전을 무작위로 만들었습니다. Beneath Apple Manor 를 만든 Don Worth 는 Rogue 를 1983년 무렵에야 봤다며, 양쪽이 서로 모른 채 같은 생각에 닿았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초기 로그라이크 제작자들이 PLATO 게임을 접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장르의 이름이 Rogue 를 따라간 것은, 대학 서버를 타고 가장 멀리 퍼진 게임이 Rogue 였기 때문입니다.

저장 파일을 지우는 이유#

처음부터 저장 파일을 지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Dungeon Hacks』 를 쓴 David Craddock 에 따르면 Toy 는 게임을 이길 때까지 되풀이하면 되는 수의 나열로 보는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실수를 되돌릴 수 없어야 캐릭터가 도망칠 때를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이 저장 데이터를 복사해 두었다가 죽으면 되살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죽는 즉시 캐릭터를 지우도록 바꿨습니다. 저장 파일을 복사해 되돌리는 이 행동은 나중에 세이브 스커밍(save scumming)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2016년 샌프란시스코의 Roguelike Celebration 무대에 Rogue 를 만든 세 사람이 함께 올랐습니다. Kotaku 의 현장 기사에서 Toy 는 이 장치가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무겁게 만들어 게임을 더 재미있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Wichman 은 퍼머데스(permadeath)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것은 결과가 남는다는 원칙, 그의 말로는 “consequence persistence” 의 한 예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든 예는 감정하지 않은 물약입니다. 마시기 전에 저장해 두고 나쁜 물약이면 되돌린다면, 미지의 물약을 마실지 고민하는 일 자체가 사라집니다.

2020년 Gamereactor 인터뷰에서 Wichman 은 체스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둔 수는 물릴 수 없고, 무작위로 지어진 던전과 정체를 모르는 아이템이 있는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자기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반사 신경을 겨루는 게임에 퍼머데스를 강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의 액션 로그라이크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단서입니다.

죽음에는 점수 규칙도 걸려 있었습니다. 설명서에 따르면 던전에서 죽으면 모은 금의 90%가 유족에게 가고, 10%는 던전의 마법사 Wally the Wonder Badger 가 수수료로 가져갑니다. 스스로 그만두면 금을 전부 가지고 나옵니다. 설명서는 이 규칙이 한 층 더 내려갈지 여기서 멈출지를 고민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더 갈지 멈출지를 고르게 하는 설계는 Push Your Luck 게임 디자인 글에서 다룬 구조와 같은 뿌리입니다.

팔리지 않은 원조#

Toy 는 Jon Lane 과 A.I. Design 이라는 회사를 차려 Rogue 를 IBM PC 로 옮겼습니다. Video Game History Foundation 도서관에는 이 회사가 직접 낸 『Rogue: The Adventure Game』 IBM PC 판 상자와 설명서가 1983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4년부터는 Epyx 가 유통을 맡아 여러 기종 판이 나왔고, 그중 Atari ST 판은 Wichman 이 직접 옮겼습니다.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Craddock 의 책은 PC 판이 겨우 손익을 맞췄다고 쓰고, Wichman 이 받은 돈은 Atari ST 판 로열티 선급금을 다 합쳐 1만 5천 달러였다고 적습니다. 그래픽도 소리도 없었고, 캠퍼스 사람들에게는 이미 공짜로 하던 게임이었습니다. Epyx 는 1989년에 파산했습니다. Rogue 의 판매량을 밝힌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불법 복제에 대한 대응은 이 게임다웠습니다. Lane 은 Edge 인터뷰에서, 복제판을 감지하면 몬스터를 강하게 만들어 3층을 넘기 어렵게 하고 묘비에 “copy protection mafia” 에게 죽었다고 띄웠다고 회고했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Toy 는 Rogue 가 남긴 가장 나쁜 유산으로, 움직이는 것은 다 죽이는 게임 세대를 연 것을 꼽았습니다.

대학 서버의 후손들#

Rogue 에 빠진 사람들 중 일부는 자기 Rogue 를 만들었습니다. 매사추세츠의 Lincoln-Sudbury 고등학교 학생 Jay Fenlason 이 친구들과 1982년에 만든 Hack 이 그런 게임입니다. 지금 Hack 의 소스를 보관하고 있는 Andries Brouwer 는 이 게임을 사실상 Rogue 를 구현한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Robert Alan Koeneke 가 만든 Moria 도 출발이 같습니다.

Koeneke 는 1996년 Usenet 에 올린 글에서 사정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1980년이나 81년에 공대 실습실의 PDP-11 에서 Rogue 를 즐겼는데, 학생 조교로 옮긴 부서의 VAX 에는 게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Rogue 가 없으니 자기 Rogue 를 만들기로 했고, 처음에는 기억나는 Rogue 와 많이 닮은 게임을 VMS BASIC 으로 썼습니다. 1983년 여름 Pascal 로 다시 쓴 것이 Moria 1.0 입니다. 누가 게임을 깨면 그 방법을 알아내 더 어렵게 고쳤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저마다 Rogue 에 무언가를 더했습니다.

게임시작만든 사람Rogue 에 더한 것2026년 현재
Hack → NetHack1982 → 1987Jay Fenlason → Mike Stephenson 과 DevTeam상점, 훨씬 많은 몬스터·아이템, 종족과 직업2026년 5월 NetHack 5.0.0
Moria → Angband1983 → 1990Robert Alan Koeneke → 워릭 대학 학생들상점이 있는 마을 층, 톨킨 세계관2025년 12월 Angband 4.2.6
ADOM1994Thomas Biskup지상 지도, 몸을 바꾸는 혼돈의 오염, 여러 결말2015년 Steam 출시
Dungeon Crawl → Stone Soup1997 → 2006Linley Henzell → 커뮤니티그라인딩을 막는 설계, 지루한 이동과 탐험의 자동화2026년 2월 0.34

NetHack 은 Usenet 의 comp.sources.games 로 1987년에 처음 공개됐고, 2022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비디오 게임 컬렉션에 들어갔습니다. 공식 소개문은 다른 판타지 게임과 달리 보이는 대로 다 죽이기보다 던전의 세부를 발견하는 데 무게를 둔다고 쓰면서, 보이는 대로 다 죽이려 들면 빨리 죽는다고 덧붙입니다. 2026년 5월 2일에는 3.7 로 개발되던 판이 NetHack 5.0.0 으로 나왔습니다. 릴리스 노트는 스스로를 Rogue 와 Hack 의 먼 후손이라고 소개하고, 3,100개가 넘는 수정과 변경을 담았습니다. 1.3d 가 처음 공개된 지 39년 만입니다.

Moria 는 처음으로 마을 층을 넣은 로그라이크로 꼽힙니다. 상점이 있는 지상에서 장비를 사고 던전으로 내려가는 구조입니다. 1990년 영국 워릭 대학의 Alex Cutler 와 Andy Astrand 가 Moria 의 C 판을 바탕으로 Angband 를 만들었고, 톨킨 색을 더 짙게 입혔습니다. 100층을 내려가 Morgoth 를 쓰러뜨리는 게임입니다. Koeneke 는 202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Angband 는 2025년 12월에도 새 판을 냈습니다.

Dungeon Crawl Stone Soup 의 공식 설명서에는 “철학” 이라는 장이 있습니다. 거기 적힌 목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실력이 차이를 만드는 무작위 게임과, 같은 일을 되풀이해 이득을 쌓는 스커밍이 통하지 않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상점은 물건을 사들이지 않고, 층은 떠났다 돌아와도 그대로 남습니다. Rogue 가 저장 파일을 지운 것과 같은 고민을 다른 자리에서 한 셈입니다.

턴을 버린 Diablo#

1994년 작은 개발사 Condor 가 쓴 8쪽짜리 기획서가 있습니다. David Brevik 이 2016년 GDC 강연 뒤에 공개한 이 문서에는 “The entire game operates on a turn-based system.” 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게임의 심장은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던전이고, 같은 판은 두 번 나오지 않는다고도 씁니다. 이 게임이 Diablo 입니다. Brevik 은 2014년 RPGFan 인터뷰에서 Diablo 가 Angband 라는 로그라이크를 상당 부분 본떴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GDC 강연을 전한 PC Gamer 기사에 따르면 Brevik 은 Rogue 와 Wizardry 가 주는 긴장, 2주 동안 쌓은 것을 한 번에 잃을지 모른다는 그 손에 땀 쥐는 느낌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퍼블리셔 Blizzard 쪽은 실시간을 원했습니다. Brevik 은 이건 당신들의 전략 게임이 아니라며 맞섰지만, 부엌에 모여 한 투표에서 혼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개발 6개월쯤 되던 때였습니다. 그는 일정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마일스톤 지불을 하나 더 받아 냈는데, 정작 실시간 전환은 어느 금요일 오후 몇 시간 만에 끝났다고 합니다. 턴이 1초에 스무 번 일어나게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Diablo 는 1996년 말에서 1997년 초 사이에 나왔습니다. 무작위 던전과 무작위 전리품은 그대로 두고 턴을 버린 이 게임이 액션 RPG 라는 큰 장르를 열었고, 그 사이 로그라이크라는 이름은 여전히 대학 서버의 아스키 게임들에 붙어 있었습니다.

바다 건너의 불가사의 던전#

일본에서는 다른 길로 Rogue 가 들어왔습니다. 2016년 덴파미니코게이머의 대담에 따르면, 춘소프트가 첫 자사 브랜드 게임 『오토기리소(弟切草)』 를 낸 1992년 무렵 회사는 다음 작품 아이디어를 사내에서 모았습니다. 경영기획실에 있던 나가하타 세이이치로(長畑成一郎)가 꼭 Rogue 를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대학 연구실에서 Rogue 에 빠졌는데, 들어와 보니 콘솔로 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춘소프트를 이끌던 나카무라 코이치(中村光一)는 그때 Rogue 를 처음 들었습니다. 2014년 파미통 인터뷰에서 그는 감정하지 않은 아이템이 무엇인지 몰라 2~3일을 헤맸다고 털어놨습니다. 똑같이 생긴 미확인 아이템 두 개 중 하나를 쓰면 남은 하나의 정체도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이해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할수록 요령이 늘고 외워서는 안 되는 게임이라는 점에 끌렸습니다. 나가하타는 드래곤 퀘스트 같은 RPG 보다 그래픽 공수가 덜 들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며 웃었습니다.

춘소프트는 낯선 Rogue 를 익숙한 세계에 넣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의 호리이 유지(堀井雄二)에게 부탁해 드래곤 퀘스트의 상인 토르네코를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약초를 먹으면 HP 가 찬다는 것을 누구나 아니까 설명이 필요 없었다고 나카무라는 말합니다. 호리이의 조언으로, 갑자기 이해하기 어려운 미확인 아이템 체계는 엔딩 뒤에 열리는 던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했습니다. 마을에 상점을 두어 아이템을 던전으로 들고 갈 수 있게 한 것을 나카무라는 넓은 층이 이 게임을 즐기게 된 큰 변화로 꼽았습니다. 조작감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슈퍼패미컴 패드의 B 버튼으로 대시하게 했고, 아이템 창은 반투명으로 만들어 열어 둔 채로도 던전이 보이게 했습니다. 나카무라는 그만큼 빠르게 던전을 도는 Rogue 계열 게임은 그때까지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토르네코의 대모험: 이상한 던전』 은 1993년 9월 19일에 나왔습니다. 광고 문구는 “천 번 놀 수 있는 RPG” 였습니다. 일본에서 약 80만 장이 팔렸다고 전해지지만, 회사가 공식으로 밝힌 숫자는 찾지 못했습니다. 1995년의 『풍래의 시렌』 은 춘소프트가 직접 만든 방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나카무라는 던전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스릴을 넣고 싶었는데, 상인 토르네코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설정에 맞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불가사의 던전은 그 뒤 하나의 시리즈 이름이 되었습니다. 2005년 춘소프트가 개발한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은 위키백과가 닌텐도 자료를 인용해 정리한 바로는 두 판을 합쳐 525만 장 넘게 팔렸고, 2007년 8월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파랑 구조대』 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정식 발매됐습니다. 이 계보에서 한국어판이 나온 것은 포켓몬 쪽뿐입니다. 시렌 시리즈는 2026년 2월 전 세계 누적 300만 장을 넘었고, 2024년의 『풍래의 시렌 6』 은 일본에서 2주 만에 20만 장을 넘겨 시리즈에서 가장 빨리 팔렸습니다. 쓰러지면 아이템을 모두 잃고 레벨 1로 돌아가는 규칙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2026년 9월 9일에는 스퀘어 에닉스가 토르네코의 대모험 리마스터를 발표와 동시에 내놓았습니다. 토르네코 시리즈로는 2004년 이후 처음입니다.

서구의 로그라이크와 견주면 불가사의 던전은 런 바깥에 무언가를 남기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토르네코는 마을 상점에서 산 아이템을 들고 들어가게 했고, 시렌은 창고에 맡겨 두게 했습니다. 포켓몬 쪽은 아예 레벨이 다음 모험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던전 안에서 쓰러지면 그 판에 쥔 것을 잃는다는 원칙은 남겨 두었습니다. 무엇을 잃게 하고 무엇을 남길지는 훗날 로그라이트를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오는 문제입니다.

flowchart TB
    ADV["Colossal Cave Adventure<br/>D&D"] --> ROGUE["Rogue<br/>1980 무렵"]
    ROGUE --> HACK["Hack<br/>1982"]
    HACK --> NH["NetHack<br/>1987"]
    ROGUE --> MORIA["Moria<br/>1983"]
    MORIA --> ANG["Angband<br/>1990"]
    ANG -.-> DIABLO["Diablo<br/>1996"]
    ROGUE --> TORNEKO["토르네코의 대모험<br/>1993"]
    TORNEKO --> SHIREN["풍래의 시렌<br/>1995"]
    TORNEKO --> PMD["포켓몬 불가사의 던전<br/>2005"]
    style ROGUE fill:#FFD700,color:#000000
    style DIABLO fill:#87CEEB,color:#000000

실선은 만든 사람이 영향을 밝혔거나 같은 시리즈로 이어진 관계이고, 점선은 Brevik 이 Angband 를 본떴다고 말한 Diablo 입니다.

가장 덜 나쁜 이름#

1993년 초까지 Usenet 에는 Rogue, Hack 과 NetHack, Moria, Angband 의 게시판이 게임별로 따로 있었습니다. 이 게임들을 한꺼번에 부를 때는 rogue-type, dungeon-type, rogue-like 같은 말을 그때그때 썼습니다. Santiago Zapata 가 Usenet 원문을 날짜별로 모아 정리한 글에 따르면, 1993년 6월 Aliza Panitz 가 이 게시판들을 rec.games.dungeon 아래로 묶자고 제안하면서 이름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dungeon 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Zork 처럼 던전이 나오지만 Rogue 와는 전혀 다른 게임에도 맞는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rogueish, hacklike, morialike, ascii-dungeon 같은 후보가 오갔고, 7월 20일의 세 번째 제안서가 roguelike 를 골랐습니다. 가장 덜 나쁜 선택이라는 이유였고, Rogue 가 그중 가장 오래된 게임이라 기준으로 삼기 좋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8월 18일 337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rec.games.roguelike.announce 와 rec.games.roguelike.misc 가 통과했습니다. 정작 roguelike 아래로 옮길 게임별 게시판 moria, nethack, rogue 는 찬성이 더 많았는데도 통과 기준에 못 미쳐 떨어졌고, 이듬해 5월에야 통과했습니다.

10월에 Panitz 가 올린 짧은 FAQ 는 이 게시판이 다루는 게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혼자 하는 판타지 게임이고, 대개 무료이며, 던전이 무대이고, 그래픽이 단순하다. Ultima 나 Wizardry 같은 상용 게임은 빠졌고, MUD 와 텍스트 어드벤처도 제외됐습니다. 로그라이크의 첫 정의는 장르 이론이 아니라 어느 게시판에 글을 올릴지를 가르는 실무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그 투표 결과가 나오고 한 달 뒤에 일본에서 토르네코의 대모험이 나왔습니다. 무료도 아니고 아스키 그래픽도 아닌 콘솔 게임이었습니다.

Wichman 은 2020년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이런 장르가 있는 줄도 거의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로그라이크라는 말이 절차적 생성과 퍼머데스를 뜻하게 됐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합니다. 자기 게임의 이름이 장르가 된 것을, 만든 사람은 20년 뒤에야 알았습니다.

자료에 대해#

Rogue 의 탄생은 1980년 무렵이라는 데까지만 자료가 일치합니다. BSD 의 어느 판에 처음 실렸는지는 개발자 회고, 단행본, 유닉스 개발자 메일링 리스트의 기억이 저마다 달라서, 가장 널리 알려진 1983년 4.2BSD 만 적었습니다. 상업판도 A.I. Design 판 실물 기록은 1983년인데 개발자 회고에는 1984년이 나옵니다. Rogue 의 판매량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pedit5 와 dnd 는 어느 쪽이 먼저인지 당사자들의 회고가 엇갈립니다. Diablo 의 출시일은 Blizzard 보도자료의 1997년 1월 3일과 일부 매장이 먼저 팔았다는 1996년 12월 31일이 함께 쓰입니다. 토르네코의 80만 장과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의 판매량은 회사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보도와 위키백과 인용을 따랐습니다. 토르네코의 대모험과 풍래의 시렌은 한국어 정식판이 없어서 국내 매체가 쓰는 관용 제목을 썼습니다. 개발자 이름은 원어 표기를 따랐습니다. 날짜와 판 번호는 2026년 10월 30일 기준입니다.

로그라이크 연대기#

편다루는 것
Part 1: 1980년의 던전Rogue, Hack 과 NetHack, Moria 와 Angband, ADOM, Dungeon Crawl, Diablo, 불가사의 던전, 이름의 유래
Part 2: 베를린 해석과 인디의 귀환베를린 해석, 로그라이트 논쟁, Spelunky, The Binding of Isaac, FTL, Rogue Legacy, 데드 셀, ‘-like’ 작명법
Part 3: 히트작과 갈래들Hades, Vampire Survivors, 파생 장르의 계보, 대형 스튜디오가 빌려 간 로그라이크
Part 4: 한 판만 더로그라이크가 끌리는 이유, 1인 개발과 AI, 쏟아지는 출시작

References#

Rogue#

후손들#

Diablo#

불가사의 던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