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standalone="yes"?><rss version="2.0"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channel><title>Keyboards on philipjkim</title><link>https://philipjkim.cc/tags/keyboards/</link><description>Recent content in Keyboards on philipjkim</description><generator>Hugo</generator><language>en-US</language><lastBuildDate>Thu, 15 Oct 2026 13:53:00 +0900</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philipjkim.cc/tags/keyboards/index.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item><title>한국 세션 키보디스트 계보 Part 5: 계보도와 네 자리</title><link>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5-lineage/</link><pubDate>Thu, 15 Oct 2026 13:53:00 +0900</pubDate><guid>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5-lineage/</guid><description>&lt;p&gt;&lt;em&gt;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lt;/em&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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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1986년 시인과 촌장 『푸른 돛』 의 크레디트는 기타 함춘호와 이병우, 베이스 조동익, 드럼 김영석, 키보드 한송연입니다. 10년 뒤 1996년 이소라 2집 7번 트랙은 기타 함춘호, 베이스 조동익, 드럼 김영석, 피아노 박용준이에요. 기타리스트 시리즈를 쓸 때 &amp;ldquo;동아기획의 리듬 섹션&amp;rdquo; 이라고 불렀던 세 사람 옆에서 건반만 바뀌었습니다. 한송연에서 박용준으로. 이 편은 그런 네 번째 자리를 앞선 세 시리즈의 표에 얹는 편입니다. 드럼·베이스·기타·건반이 같은 녹음실에 있었던 순간을 음반별로 맞춰 보면, 밴드 한 줄이 통째로 보입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한국 세션 키보디스트 계보 Part 4: 2010년대 이후</title><link>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4-2010s-now/</link><pubDate>Thu, 15 Oct 2026 13:50:00 +0900</pubDate><guid>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4-2010s-now/</guid><description>&lt;p&gt;&lt;em&gt;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lt;/em&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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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2011년 4월 27일, 「나는 가수다」 의 세션들이 중앙대 아트센터에서 기자를 만났습니다. 베이스 서영도·드럼 강수호·기타 홍준호와 정수완·퍼커션 조재범·건반 길은경과 안준영. 서영도가 이렇게 말했어요. &amp;ldquo;긴장감이 대단하다. 한국시리즈 7차전 같은 분위기다. 단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공연이다.&amp;rdquo; 안준영은 공연을 하다 보면 한두 곡쯤 어려운 곡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7곡 전부가 어려운 곡이라 끝나면 기운이 쪽 빠진다고 했습니다. 기사는 이들이 대한민국 음반 작업의 70~80% 에 참여하고 있다고 썼고, 이승환과 이소라의 추천으로 모였다고 했어요. 음악감독으로 영입된 정지찬은 음악감독의 일을 가수가 편하게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라고 했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한국 세션 키보디스트 계보 Part 3: 90년대와 2000년대</title><link>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3-1990s-2000s/</link><pubDate>Thu, 15 Oct 2026 13:46:00 +0900</pubDate><guid>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3-1990s-2000s/</guid><description>&lt;p&gt;&lt;em&gt;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lt;/em&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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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1994년 더 클래식 1집이 130만 장을 팔았습니다. 「마법의 성」 의 그 음반이에요. 30년 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건반이었던 박용준이 그 해를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amp;ldquo;&amp;lsquo;마법의 성&amp;rsquo;은 성공했지만, 살인적인 세션 스케줄 때문에 쪽잠 자며 녹음실을 전전하는 생활이 달라지진 않았다.&amp;rdquo; 밀리언셀러의 멤버가 다음 날 아침 남의 음반 녹음실에 앉아 있는 것. 1990년대 세션 키보디스트의 자리가 이 한 문장에 있습니다. 이 편은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과, 같은 시기에 그 자리를 컴퓨터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예요.&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한국 세션 키보디스트 계보 Part 2: 1970년대와 80년대</title><link>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2-1970s-1980s/</link><pubDate>Thu, 15 Oct 2026 13:42:00 +0900</pubDate><guid>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2-1970s-1980s/</guid><description>&lt;p&gt;&lt;em&gt;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lt;/em&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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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한국 전자음악사를 쓰고 있는 사람이 2026년 9월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말했습니다. 이호준과 김명곤. 한국 신디사이저의 거목인데 두 분 다 돌아가셨고, 그때 기록은 빨리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요. 이 편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이호준은 2012년에, 김명곤은 2001년에, 허성욱은 1997년에, 유재하는 198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사자의 말이 남은 사람은 김광민·정원영·박성식·손무현 정도이고, 나머지는 동료의 회고와 음반 뒷면의 이름으로 적어야 했어요. 그래서 이 편은 다른 편보다 크레디트 이야기가 많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한국 세션 키보디스트 계보 Part 1: 조건과 세 세대</title><link>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1-overview/</link><pubDate>Thu, 15 Oct 2026 13:40:00 +0900</pubDate><guid>https://philipjkim.cc/posts/20261015-korean-keyboardists-01-overview/</guid><description>&lt;p&gt;&lt;em&gt;이 글은 Claude Fable 5.1 을 이용해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이후 퇴고를 거쳤습니다.&lt;/em&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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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2017년 봄, 김광민이 한국일보 기자에게 1980년대 초를 이렇게 돌아봤습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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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그때는 건반 연주자가 귀했어요. 다들 밴드 음악하고 싶어해 기타연주자만 많았으니까.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걸 지인들이 아니까 건반 좀 연주해달라는 부탁이 정말 많았죠.&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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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무역학과 학생이 조동진·양희은·김민기의 음반을 치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들어간 사정이 이 세 문장에 다 있습니다. 기타는 넘치고 건반은 귀했다는 것. 그리고 귀한 쪽에 앉은 사람에게는 연주 말고 다른 일이 따라왔다는 것. 건반 연주자는 코드를 알고 악보를 읽으니 편곡을 맡게 되고, 편곡을 하다 보면 곡을 쓰게 되고, 곡을 쓰다 보면 음반 전체를 맡게 되죠. 한국 대중음악에서 편곡자·작곡가·프로듀서로 불리는 사람의 상당수가 처음엔 녹음실 구석의 건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lt;/p&gt;</description></item></channel></rss>